주일 저녁 예배

제목 욥기 강해 (41)   [욥 16:10-13]
설교자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3.03.26
지난 시간에 이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 회개하고 돌이킬 때 신속히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할 수 있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자격지심 가운데 친구들과 하나님을 오해하는 욥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나를 천대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욥 16:10)
여기서 무리들이란 욥의 친구들을 가리킵니다. 친구들이 욥 자신을 향하여 입을 벌린다는 것은, 좋은 의미가 아닌 부정적인 표현입니다. 지금까지 친구들의 말이 욥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번뇌케 하고 상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자기를 천대한다고 표현한 것도, 그동안 그들이 욥을 공격하고 상처를 주는 엄청난 말들을 했기 때문입니다. 또 친구들이 실제로 욥의 뺨을 친 것은 아니었지만, 욥은 친구들의 말을 들을 때 매우 모욕스러웠고 고통이 극에 달했으므로 이에 대해 뺨을 쳤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욥은 현재의 낮아진 위치가 아닌, 옛날 영화로웠던 시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친구들이 자기를 우러러보고 사랑해 주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우습게 보는 것 같고 괄시하는 것처럼 느껴졌지요.
하나님에 대한 욥의 느낌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은 예전에 사랑받고 축복받았던 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현실 속에서 주눅이 들어 있기 때문에, 괜히 하나님이 날카로운 눈으로 보는 것 같고 자기를 찢고 군박하며 이를 가는 것같이 느끼는 것입니다(욥 16:9).

만일 여러분이 사업하다가 부도가 나거나 갑자기 직장을 잃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합시다. 이때 주변 사람들이 은근히 나를 괄시하는 것 같고 피하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상대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스스로 자격지심 가운데 상대를 예전과 같지 않다고 느끼며, 오해하고 판단하여 고통 속에 지내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다른 예로, 직장에서 같이 평사원으로 있던 동료가 어느 날 승진을 했다고 합시다. 나는 아직도 말단인데 동료는 먼저 승진을 해서 부럽기도 하고 왠지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그런데 승진한 동료가 왠지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힘이 빠지고 일할 의욕까지 상실하지요.
또 학생들의 경우, 친구는 좋은 대학에 합격했는데 자신은 재수하게 되었을 때 마음이 어떠합니까? 친구는 예전과 동일하게 나를 대하는데, 내 느낌 가운데 친구가 왠지 나를 얕보는 것 같아서 친구를 멀리한다면 이 또한 나의 판단이며 자격지심이지요.
이처럼 부부간이나 친구 간에, 또 이웃 간에도 내 느낌 속에서 판단하며 오해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는 신앙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일꾼이 인정받고 칭찬받으니 나는 힘들고 지칩니다. 자신과 비교하며 ‘저 사람은 물질도 있고 학식도 있으니 인정받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하며 스스로 힘을 잃습니다. 더 나아가 칭찬받은 상대가 나를 무시하는 것같이 느껴져서 불편합니다. 모두 내 악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이지요.


2. 문제의 원인을 잘못 찾아 해결받지 못하는 경우

욥은 비참해진 현실로 인해, 자신의 악으로 인해 하나님을 오해하니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 안에서 문제의 원인을 잘못 찾아 해결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판단 정죄, 수군거림으로 시험거리를 만드니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그를 불편해하고 싫어합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내가 애매히 욕을 받으니 선으로 잘 참아야지’ 생각한다면 아무리 기도하고 충성한다 해도 문제 해결을 받을 수 없지요.
또 자기가 진리 안에 살지 못하여 문제가 생겼는데도, “하나님이 나에게 큰 축복을 주시려고 연단하시는 것이다”라고 착각하며 원인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탓,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면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기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서 1:13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신 경우처럼, 축복 주시기 위해 시험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살았는데도 시험이 왔다면, 기뻐하고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더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시지요.
그러나 본인의 잘못으로 인해 겪는 환난을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연단인 양 오해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3. 진정한 축복을 주기 위해 연단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나를 경건치 않은 자에게 붙이시며 악인의 손에 던지셨구나”(욥 16:11)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경건치도 않고 악한 친구들에게 붙여 괴롭게 하신다고 말하는데, 이 또한 문제의 원인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경건치 않은 자에게 붙이신 일도 없고, 악인의 손에 던진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의 송사를 허락하신 것은 욥의 소유물과 악창뿐입니다. 이렇게 사단의 송사를 허락하신 뒤로는 하나님께서 손을 떼고 지켜보고만 계시는 상황이지요.
하나님께서 욥을 괴롭게 하신 것이 아니라 연단을 통해 욥의 감추어진 악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이를 계기로 욥이 악을 벗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니 욥을 연단하신 것입니다.
욥은 선진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듣기만 했지 하나님을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연단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면 이제는 머리로 들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마음에서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에 대해 들음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과, 직접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사랑을 체험함으로써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큰 차이가 있음을알아야 합니다.
욥이 만일 이러한 시험을 겪지 않았다면 예전에 살아갔던 대로 육적인 복은 받았을 것입니다. 그의 행함을 보면,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번제를 드리며 이웃에게 덕과 선을 베푸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밝히 알고 죄를 발견하여 싸워 버려 나감으로 성결되는 영적인 축복은 받을 수 없지요.
욥은 시험을 겪은 후 죄성을 발견하고 온전히 벗어 버림으로써 진정한 축복을 받을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어야 이 땅에서도 더 큰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시험이나 연단을 빨리 끝내려면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셨을 때, 이 시험이 빨리 끝나느냐 계속되느냐, 연단을 크게 받을 것이냐 작게 받을 것이냐는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얼마나 선하고 악한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악이 많이 있다면 시험이 왔을 때 그 악을 드러내게 되니 시험이 오래 가고 연단이 길어집니다. 반대로 마음이 선하여 내가 어떤 형편에 있다 하더라도 믿음을 내보이고 기뻐하며 기도하고, 감사하며 변치 않는 충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나간다면, 하나님께서 신속하게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리고 축복을 주십니다.
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시험이나 연단 중에 참 믿음을 내보이지 못하고 원망 불평하며 미워하고 다투는 등 악을 발하기도 합니다. 이때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연단을 통해 변화되기까지 참고, 참고 또 참아 주시는 분입니다.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말씀대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때로는 부족하여 넘어질 때도 있고 시험들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너는 죄 있다”라고 바로 심판하신다면 과연 구원받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돌이켜 진리 가운데 살아가기를 오래 참고 기다리십니다. 베드로후서 3:9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이때 성령께서도 자꾸 마음을 두드리시며 진리로 이끄시니 혹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는 곤고함이 찾아오고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순종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시험 환난이 오는 것이고, 이러한 연단을 통해서 더 정금같이 나오게 해 주시는 것이지요.
따라서 연단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범사에 진리로 분별하며, 문제의 원인을 상대에게 돌리지 말고 자기에게서 찾아서 하나님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욥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헤아리지 못하므로 원망과 오해가 끝이 없습니다.
처음에 친구들이 욥에게 권면했을 때 욥이 “그래, 너희들의 말이 옳다. 시험 환난이 온 것은 분명히 나에게 원인이 있을 것이다. 내가 너희들의 말대로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의 잘못을 발견하겠다.”라고 대답했다면 친구들이 욥을 그처럼 공박했겠습니까? 욥이 스스로 의롭다 하며 친구들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대적해 나가니 친구들이 감정이 나서 욥을 공격하게 된 것이지요.
만일 욥이 친구들의 권면을 받아들였다면 친구들은 욥을 더 사랑하고 위로해 주었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욥을 친구들 손에 붙이신 것이 아니라 욥이 악 속에서 스스로 그 자리에 빠져 들어갔던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의 말에 감정을 담아 대항하니 욥이 점점 마음 문을 닫게 되었지요. 결국 욥과 친구들은 서로의 악함 속에 서로가 빠져 들어간 것입니다.
만일 욥이 자신을 발견하고 돌이키려 했다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깨우치고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능력을 주셨을 것입니다. 욥의 온몸이 악창으로 엉망이 되었다 해도 하나님은 순간에 치료해 주시고 축복으로 역사해 주셨을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원인을 상대에게 돌리지 말고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중심에서 회개하고 돌이킬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만나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 신속히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오직 믿음의 고백, 감사의 고백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끌어내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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