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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장 예수님을 핍박하는 유대인들
출처 크리스챤 신문 [요한복음 강해(20) ] 날짜 2019.11.06 조회수 146
 
  1.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라 하여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5:16~18)
선한 사람은 함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신 예수님에게 시비를 걸며 핍박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답변하며 결코 자기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말에 유대인들은 더욱 격분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긴 것도 모자라 하나님을 친아버지라고 하며 스스로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근본 하나입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는지 보았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보고 알기 때문에 그대로 하나님 뜻을 좇아 행하셨고 그에 어긋난 일은 한 가지도 없었습니다. 영적인 소경인 유대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깨우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이면에는 자신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여 많은 사람의 칭송을 받으시는 예수님에 대한 시기 질투가 있었습니다.

2. 유대인들을 깨우쳐 주시는 예수님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5:19~20)
만약 대기업을 이끄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 한다면 모든 경영 비법을 숨김없이 알려 주고 가르칠 것입니다. 하나님도 아들인 예수님을 사랑하여 태초부터 함께하시며 천지 창조와 인간 경작을 비롯한 모든 섭리와 비밀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이고 알려 주신 것을 이 땅에 와서 베푸신 것입니다. 병든 사람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며 바람과 물결을 잠잠케 하는 등 놀라운 일을 나타내셨습니다(눅 8:24). 놀라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보다 더 큰일을 나타낼 것이라고 하시며 그들이 기이하게 여길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 처형을 받아 장사된 뒤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이 승천하실 것도, 또 앞으로 정한 때가 되면 다시 오실 것과 마지막 때 나타날 일들이 모두 기이한 일입니다.

3.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5:21~23)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들인 예수님께도 이러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린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을 마음대로 살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뜻이 곧 예수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심판을 맡겼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하신 대로 아담의 범죄 후 모든 사람이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롬 3:10, 6:23).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믿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갑니다. 이를 가리켜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5장 1절에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하신 대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하는 믿음의 다리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공경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알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 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5:24~27)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보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갑니다.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입술로만 “믿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행하는 영적 믿음을 말합니다(약 2:22).
‘죽은 자들’이란 실제 목숨이 끊어진 사람이 아니라, 영이 죽은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영과 혼과 육을 가진 생령으로 만드셨는데,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가 들어와 영이 죽었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원죄를 갖고 태어난 모든 사람도 영이 죽었지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죽은 영이 살아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행하는 만큼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하는데, 이것이 곧 하나님 아들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바로 지금이 그때라 하십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생명은 썩지 않으며 영원한 영적 생명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 역시 그 안에 생명이 있으므로(요 14:6) 그분을 믿고 영접하면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인자 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 했는데 심판은 생명에 준하여 이루어집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가진 사람은 천국으로, 생명을 갖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갑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게를 알기 위해서는 저울에 달아 보아야 하듯이 생명이 있는지를 심판하기 위해서도 기준이 필요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생명의 저울이며 심판의 기준입니다. 예수님만이 생명 곧 진리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판하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5.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5:28~30)
생명과 심판이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는다는 말을 듣고 기이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고 의문을 갖는 것입니다. 이를 안 예수님은 “기이히 여기지 말라” 하시며 양심 심판이 있음을 알려 주셨지요.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들어온 지 백여 년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러면 백 년 전 사람이나 주님이 오시기 전 구약 시대 사람은 어찌 되겠습니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 하여 모두 지옥에 보낸다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라 하겠습니까.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선한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살아 있을 때에 선을 쌓으면 생명의 부활로, 악을 쌓으면 심판의 부활로 나오는 것입니다(롬 2:14∼16).
이처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살았던 구약 시대의 사람이나 신약 시대라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열어 두신 길이 바로 ‘양심 심판’입니다.
비록 복음을 듣지 못했다 해도 하늘을 두려워하여 선하고 의롭게 살려고 힘쓰며 어느 정도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전 3:11 ; 롬 1:20). 나라를 위해, 혹은 부모나 친구를 위해 대신 생명을 버리는 사람도 있지요. 참으로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만일 그들이 복음을 들었다면 당연히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양심 심판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지옥」 책자 참조). 공의로운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심판하시지요.
예수님이 심판에 대해 말씀하시니 듣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엄습하면서 ‘과연 어떻게 심판할까?’ 궁금해합니다. 그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오직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고 알려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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