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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장 베데스다 못가의 표적
출처 크리스챤 신문 [요한복음 강해(19)] 날짜 2019.10.13 조회수 71
 
  갈릴리에서 두 번째 표적을 나타낸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유대의 모든 성인 남자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지켜야 할 명절이 있는데, 바로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인 유월절, 칠칠절(맥추절), 초막절이지요.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뜻에 따라 가셨습니다.

1. 베데스다 못가에 몰려든 사람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1~4)
예루살렘 성전은 여러 개의 문이 있습니다. 그중 북동쪽에 있는 문을 ‘양문’이라고 불렀습니다. 일찍이 느헤미야 시대(기원전 445년)에 건축된 것으로(느 3:1), 밖에 가축 시장이 있어 희생 제사에 필요한 양을 들여왔기 때문에 붙인 이름입니다.
양문 곁에는 히브리어로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습니다. 이 못은 성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빗물을 받아 놓는 일종의 저수지입니다. 신기한 것은 바닥 깊은 곳에서 이따금 맑은 샘물이 솟아올라 움직였는데, 사람들은 천사가 내려와 그런다고 여겼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못에 들어간 사람은 어떤 병이든 낫는다는 소문 때문에 못 주변에는 늘 환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사람 등 온갖 병을 가진 사람들이 이제나 저제나 물이 움직이길 기다렸지요.
고대 성경 사본에는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는 내용이 없습니다. 후대 사본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당시 사람들 사이에 퍼진 민간신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으로 일점일획도 틀림없지만 간혹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시의 상황을 느낄 수 있도록 그에 맞게 기록한 경우가 있습니다.

2. 안식일에 치료받은 38년 된 병자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5:5~9)
베데스다 못가에는 늘 수많은 환자로 장사진이었습니다.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가기 위해 어찌하든 못 가까이 자리를 잡으려 애썼습니다. 그곳에는 38년 된 병자도 있었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병에 걸린 지 38년이라면 이미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이 없는 처지일 것입니다.
그는 큰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지금까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못가를 떠나지 않았지요. 예수님은 소망을 버리지 않고 기다린 그의 마음을 아시고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그에게 다가가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오랜만에 들어보는 따스한 말에 그는 안타까운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합니다. 간혹 물이 움직인다 해도 거동이 불편한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작은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그에게 뜻밖의 답변이 들려왔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오랜 투병 생활을 한 사람에게 예수님의 말은 어찌 보면 황당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몸에 알 수 없는 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단지 말씀만 하셨는데 38년간이나 그를 괴롭히던 질병이 떠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나 치료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행함을 보고 합당한 사람에게 역사하셨지요. 대개 병이 깊고 오래되면 포기하기 쉬운데 이 병자에게는 오랜 세월 소망을 버리지 않고 인내한 선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3. 안식일의 참 의미를 모르는 유대인들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5:10~13)
38년 된 병자는 그곳에 더 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가는데 유대인들이 그를 불렀습니다. 그가 치료된 날은 안식일로, 이날에는 물건을 이동하는 것조차 엄격하게 금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인 율법을 어길 때마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 다스릴 때에는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렸지만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할 때에는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고 포로로 잡혀 가기도 합니다. 따라서 백성이 철저히 지키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더욱 세밀하게 율법을 규정했습니다. 이것이 장로의 유전입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신 말씀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안식일의 금기 사항을 여러 가지로 세분화합니다. 안식일에 씨 뿌리거나 밭 갈지 말 것, 반죽하거나 굽지 말 것, 빨래하지 말 것, 두 글자를 쓰거나 지우지 말 것, 빗질하지 말 것, 물건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 것 등 세부 조항을 만들어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지 말라’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한 날로 정하고 복 주기 위해 지키도록 하셨는데, 이런 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유대인들은 스스로 세세한 규율을 정하여 힘든 날로 만든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가 치료됐다면 함께 기뻐해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오히려 이 일을 잘못되었다 정죄합니다. 심기가 불편해진 유대인들은 누가 자리를 들고 가라고 했느냐며 끝까지 물고 늘어졌습니다.
다행히 예수님은 이미 그 자리를 피하신 뒤였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준 일 때문에 유대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힘이 없거나 능력이 없어 피하신 것이 아닙니다. 애매히 고난당할 때에도 오직 정도만을 걸으셨지요.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뜻을 이루는 데 해가 될 일은 결코 하지 않으셨습니다.

4. 네가 나았으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5:14~15)
그 후 예수님이 38년 된 질병을 치료받은 사람을 성전에서 다시 만나자, 한 가지 당부를 하십니다.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지만 말씀대로 살지 않고 다시 죄를 지으면 전보다 더 심한 병이 생길 것을 알려 주셨지요.
여기서 우리는 죄 때문에 질병이 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그 뜻대로 살면 질병이 틈타지 않을 뿐 아니라 범사에 형통한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질병이나 각종 인생의 문제로 고통당합니다(신 28장).
흔히 사람들은 운이 나빠 병에 걸렸다거나 부주의해서 질병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주의로 생긴 병도 근본은 하나님 말씀을 좇아 살지 않은 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만일 불규칙하게 식사하거나 폭식하는 습관이 있다면 나중에 위장뿐 아니라 신체 각 기관이 약해집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몸을 잘 관리하지 못한 탓이니 말씀에 순종치 않은 것과 같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는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질병을 치료해 주시고 온전케 하십니다(마 8:17 ; 사 53:5).
이제까지 자신의 병을 치료해 준 분이 누군지 알지 못했던 병자는 예수님을 다시 뵙고 기뻤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을 고친 사람이 예수라고 알렸습니다. 그 말이 예수님께 해가 됨을 알지 못했지요.
예수님께서는 치료하신 후 그 사실을 일가친척에게 전하라 하신 경우도 있고, 전하지 말라고 하신 경우도 있습니다(마 8:4 ; 눅 8:56). 만일 듣는 사람이 선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믿을 수 있다면 전하라 하셨지만, 반대로 핍박하고 해를 가할 사람이라면 잠잠하라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지혜롭게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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