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바로가기복사 PDF
제목 중심
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삼상 1:26-28 날짜 2013.05.26
2013년도 기도제물 헌신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교회와 목자와 성도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해 오신 헌신자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중심이 무엇인지 세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매일 중심의 기도를 올려야

똑같은 아침을 맞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아이구, 오늘도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구나.’ 하며 힘겹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음을 감사해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저의 삶을 아버지께 맡겨드립니다.” 고백하며 아침을 맞이하지요. 이처럼 누구에게나 오는 아침이지만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는 달라집니다.

하루가 마쳐지는 순간까지도 모든 삶의 중심이 하나님께 향해 있다면 똑같은 환경에 있다 할지라도 날마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요. 그렇다면 여러분 각자의 중심을 얼마나 하나님 앞에 드리고 계십니까? 앞으로 크고 놀라운 일들을 이뤄야 할 특별한 사명을 받은 기도제물로서 매일 중심의 기도를 올려 드리고 계시는지요? 오늘 말씀을 통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진정 인정받아 기둥과 같이 쓰임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중심이란?

첫째, 변개함이 없는 중심입니다.
요즘 많은 성도님이 믿음의 반석을 이루기 위해 이 변개함 하나만 두고도 치열한 영적 싸움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삼가 입술을 지켜 가볍게 말을 하지 않는다거나 자신이 결정한 바를 임의대로 바꾸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또 명심하고 있지요. 하물며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의 제물이라면 어떠하겠는지요? 더욱 정결하고 깨끗하며 흠 없는 제물로서 하나님께서 ‘참된 제물이다.’ 인정해 주셔야 하지 않겠는지요?

처음 기도제물의 사명을 받고 무릎을 꿇어 기도했을 때에 여러분의 마음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명, 영화롭고 복되며 숭고한 사명을 온전히 이루겠습니다.” 눈물로 고백하며 중심을 다해 부르짖은 여러분의 기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도 변함없이 무릎을 꿇고 그때와 같은 중심의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까? 또한 기도제물로서 채워야 할 기도의 시간을 어기지 않고 지켜 행하고 계시는지요? 그런데 이 시간마저도 쉽게 어기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재차 이 부분을 짚어 주셨습니다.

예전의 모습과 달리 해이해진 마음으로 기도 시간에 늦는다거나 사적인 일로 결석을 한 번, 두 번 합니다. 때로는 죄송한 마음에 못다한 기도 시간을 채우고 갈 때도 있지만 나중에는 민망한 마음도, 부끄러운 마음도 쉽게 사라져 버리지요. 또한 개인적인 응답을 받고자 작정한 기도 시간은 정성을 다해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작정한 시간은 가볍게 여기지요. 이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는지요?

기도제물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온전히 드린 제물입니다. 기도 시간도 흠이 없도록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지요. 물론 “저는 제 자리를 변함없이 지켰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약속된 기도의 양을 채웠습니다.” 당당히 고백할 수 있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10년, 20년 수많은 세월 동안 하나님께 쌓아온 기도를 얼마나 자신에게 적용시켜 행해 나가고 있습니까?

예를 들어 “감정을 버리겠습니다.”, “남편을 사랑으로 섬기겠습니다.”, “선한 입술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변화되겠습니다.”라는 기도를 수도 없이 올려드렸지요. 그러나 입술로는 하나님 앞에 많은 것을 약속하지만, 막상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기도로 어떤 약속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중심을 다해 기도했다면, 변함없이 그 기도의 내용을 지키고자 노력했을 것입니다. 지금쯤 변화의 열매도 급속도로 맺었을 것이구요. 그러나 변화의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고 여전히 똑같은 기도제목만 반복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해 주시겠는지요?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한나’를 통해 변함없는 중심이 정녕 무엇인지를 깨달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을 잉태케 해 주셨지요. 그 아들이 바로 사무엘 선지자입니다. 그토록 바라던 자녀를 품에 안았을 때 한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너무 사랑스러워 기쁨을 견디지 못했겠지요. 그렇다면 사무엘을 드릴 때 한나의 마음이 흔들렸을까요? “하나님, 아직 이 어미의 손길이 필요한 때입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나중에 자녀를 드리겠습니다.” 했을까요? 아니면 “그때는 제 믿음이 부족했나 봅니다. 그러니 못들은 기도로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했을까요?

사무엘상 1장 28절 전반절에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며, 망설임 없이 하나님께 서원을 지켜 준행했지요. 오히려 자신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렸습니다. 이처럼 변개치 않고 서원을 지키니 하나님께서는 한나에게 세 아들과 두 딸을 낳는 축복을 주십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한나의 중심처럼 변함없는 중심의 기도를 드린다면 하나님 나라와 교회와 목자에게 더 큰 힘과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 사명을 받았을 때 가졌던 마음의 각오와 다짐을 변개치 아니하며 주님 오실 때까지 더욱 승화시켜 나가시기 바랍니다.

둘째, 타협하지 않는 중심입니다.
타협이라는 말을 들으면, 초신자들이 연약한 믿음으로 인해 세상과 타협하는 분야가 가장 쉽게 떠오르지요. 그러나 믿음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각 사람이 거쳐 온 환경과 신앙생활의 과정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타협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 시간 여러분께 말씀드릴 타협의 분야는 진리의 말씀을 ‘자기 자신’에게 맞춰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모습이지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다’ 하며 자기 좋을 대로 타협점을 찾는 것입니다.
기도제물은 기도에 전무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명을 가지고 자기 유익에 따라 이용하는 경우를 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각자 가정에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때로는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을 감당해 내기가 벅찰 때도 있지요. 그러다보면 마음을 더 쓰지 못해 남편과 자녀로부터 이런저런 투정 섞인 소리를 들을 때가 더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나는 기도제물이니 누구보다도 기도를 많이 쌓아야 하기 때문에 여유가 없었다.” 하며 핑계를 댑니다. 그렇다고 기도를 불같이, 충만히 드린 것도 아니었지요. 오히려 기도시간을 채우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부족을 기도제물의 사명으로 포장해 덮어버리고 맙니다.

또 하나 예를 들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다른 기관과 분리시켜 기도제물이라는 기관을 따로 두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내의 독립적인 기관으로서 활동하고 있지요. 그러나 가끔 자신이 속한 교구와 선교회도 돌아봐야 하는 일들이 생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명이 우선이다.”, “나는 기도에만 주력하며 마음을 쏟아야 한다.”며 주변의 일들을 등한시하며 스스로 당연하게 여기지요.

비록 작정기도로 인해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다면 대신 그 모임을 위해 기도를 해 주면 됩니다. 그러나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미안한 마음도 없이 사명을 앞세워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한다면 어찌 세계를 품고 기도하는 기도제물이라 할 수 있겠는지요? 하나님께서 기도에 전무하라 해서 심방과 전도, 봉사와 같은 하나님의 일을 절대 하지 말라 금하신 것이 아닙니다. 능력을 쌓아 기도의 사명을 충분히 감당하고도 능히 많은 일을 한다면 더 큰 상급을 쌓을 수 있지요.
잠언 16장 2절에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여러분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든 것이 합당하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는 우리의 모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합당한지를 살펴봐야 하지요. 매사에 하나님의 뜻이 우선시되어 ‘과연 어느 쪽이 선일까? 진리일까?’ 궁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자신의 입장, 자신의 뜻을 개입시키는 기도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더불어 타협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핑계와 변명이 더 이상 나오지 않지요. 그러다 보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전에 보이지 않던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속속들이 드러나는 자신의 육의 모습을 찾으니 ‘영’으로 들어가는 데 있어서도 빠른 속도로 갈 수 있지요.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타협지 않는 중심을 가짐으로 하나님의 뜻을 멋지게 이루어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내 유익을 구하지 않는 영적인 사랑이 있는 중심입니다.
기도제물은 하나님과 목자 그리고 영혼들을 사랑해서 기도로 헌신하고자 모인 분들입니다. 그렇기에 마음 안에 영적인 사랑을 꾸준히 채워나가야 하지요. 여러분이 사랑이 담긴 중심의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교회를 위해 주인 된 마음으로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으로 교회를 위해 기도했는지가 더 중요하지요.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해 기도할 때는 심히도 애통해하며 눈물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교회 성전을 위해 기도할 때는 평소 습관대로 형식적인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그러면 아무리 기도의 양을 많이 채웠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없지요.

이 시간을 통해 진정 하나님 나라와 영혼들을 위한 사랑의 기도, 눈물의 기도를 올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사랑을 이루면 자신보다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상대의 유익을 구한다 하면서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머리 된 입장에서 평소 화평을 깨트리는 회원이 있어 깨우침을 주고자 권면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회원이 이내 불편한 내색을 한다면 내가 혹시 사랑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사랑이 없는 기도는 영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할 때 확실하게 응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사랑의 마음이 깊어지고 넓어질수록 여러분의 기도의 그릇도 함께 넓어지지요. 그릇이 커질수록 주변의 모든 일들을 넉넉히 품어 분야분야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속히 영적인 사랑을 채워 하나님께 굵고 위력 있는 기도의 향을 올려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

아랫글 : 사랑의 마음
윗글 :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