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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신앙의 힘
설교자 정구영 목사 설교본문 벧전 2:19-21 날짜 2019.04.21
부활 주일을 맞아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부활 신앙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베드로의 변화된 삶을 통해 참된 부활의 신앙을 소유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증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육체적 부활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짜로 돌아가셨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 환상으로 본 것이다’ 등의 가설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명백한 사실이며 그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 성경의 기록입니다. 한 예로 부활하신 주님이 직접 나타나 보이신 사건을 기록한 고린도전서 15장 3~8절을 보면 게바(베드로), 열두 제자, 오백여 형제, 야고보, 모든 사도, 바울 등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둘째, 역사의 증언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의 역사 문헌 중 현재 터키 성 소피아 사원에 소장된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가이사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를 보면 주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셋째, 목격자들의 변화된 삶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은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며 순교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기 전과 목격한 후, 그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갈릴리 어부 베드로

누가복음 5장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시는 사건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자 밤새 수고했지만 고기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많은 무리를 향해 말씀을 증거하신 후,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셨습니다.
베테랑 어부인 베드로는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순종합니다. 그러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난 양의 고기가 잡혔습니다. 이에 다른 배까지 불러 고기를 담았는데 두 척의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지요. 베드로는 예수님께 엎드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고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3.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도 여전히 들레고 앞장서고자 하는 베드로

1)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베드로의 반응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다락방에 모여 최후의 만찬을 드시던 예수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후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베드로의 순서가 되자 그는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말합니다.
만일 베드로가 예수님을 온전히 믿었다면 분명 무슨 뜻이 있을 것이라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섬기는 자가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됨을 깨우쳐 주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발을 씻기신 것에는 ‘섬김의 본’을 보일 뿐 아니라 ‘더러운 죄를 씻는다’는 더 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물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뜻하며 제자들이 마음의 더러움을 씻어 내길 원하셨지요. 예수님과 상관없다는 말씀에 놀란 베드로는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라고 합니다. 평소 자기 마음을 숨기지 않는 솔직함과 나서기 좋아하는 그의 성품이 유감없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변화될 그를 바라보며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이미 목욕한 사람이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사와 표적을 봄으로 믿음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곧 믿음 있는 사람이 발을 씻어야 한다는 것은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까지 늘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보며 진리로 변화되어야 함을 뜻하지요.
그러면 당시 제자들이 죄를 다 버린 상태가 아닌데도 왜 ‘온몸이 깨끗하다’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이는 영적으로 깨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곧 말씀을 들을 때 영적 의미를 깨우치고자 하고, 자신을 살펴 온전한 믿음을 갖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죄를 다 버리지 못했다 해도 온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므로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깨끗하다 인정해 주십니다.

2)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베드로의 반응
요한복음 13장 36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불안해서 어디로 가시는지 여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하십니다. 늘 예수님과 함께했던 베드로지만 이해되지 않아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합니다. 확신에 찬 베드로의 대답에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더욱 힘주어 큰 소리로 말합니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막 14:29)
이후 유대 병정들은 예수님을 잡으러 칼과 몽치를 가지고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붙잡힐 것을 여러 차례 알려 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베드로는 칼을 빼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를 베어 버렸지요. 이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영적으로 깨우쳐 주십니다.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 18:11)
예수님께서는 당시 산헤드린 의장인 대제사장 안나스 집으로 끌려갑니다. 거기서 심문을 받게 되는데 두려움에 싸인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베드로와 요한만 그 뒤를 좇아 안나스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사건이 일어나지요(요 18:17~27).
베드로를 가만히 지켜보던 한 여종이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묻습니다. 순간 베드로는 겁이 나서 “나는 아니라” 하며 부인합니다. 두 번째 다른 사람이 묻자 그는 또 부인하고 맙니다. 세 번째 겟세마네 동산에서 귀를 베인 말고의 친척이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묻습니다. 흠칫 놀란 베드로가 또 부인하자 곧 닭이 울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61~62절에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하신 말씀 대로 베드로는 뛰쳐나가 심히 통곡합니다.


4.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 변화된 베드로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숨어 지내던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새 힘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갈릴리에 가신다고 했기 때문에(막 16:7) 서둘러 갈릴리, 곧 디베랴 지역으로 떠났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을 만나 행복한 아침을 맞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만나면서 그들은 믿음이 성장하고, 비로소 온전한 믿음을 지니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베드로를 통해 앞으로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셨지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차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하면서 사명을 주시는데 거기에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요 21:15~17).
첫째 “내 어린양을 먹이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도를 잘 알려 주어 영혼들이 구원받게 하라는 뜻입니다. 둘째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은 구원받은 영혼이 믿음이 성장함으로 알곡이 되도록 이끌어야 함을 의미하지요. 셋째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은 파리하거나 시든 영혼이라도 지속적으로 이끌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부활은 베드로의 삶에 일대 전환점이 되었으며, 부활의 신앙을 가짐으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권능의 종으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5. 주님을 위해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순교한 베드로

베드로전서 2장 19~21절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독교 대박해로 고난당하게 될 영혼들에게 담대하게 핍박을 어떻게 견뎌야 되는지 지침을 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마음을 깨달아 생명 다해 영혼 구원에 힘쓰다가 끝내 순교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것에 대해 늘 민망한 마음으로 산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기를 자청합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마지막 죽는 순간에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주님에 대한 민망한 마음을 갚아드리고자 했습니다. 부활 신앙의 힘이 베드로를 엄청나게 바꿔 놓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보면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의 모든 삶을 주님을 위해 헌신했고, 순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기쁨으로 감당했지요. 이런 사도들에 의해 인류 역사가 새로워졌습니다.
미국의 럿셀 코넬이라는 사람은 남북 전쟁 시 한 소년의 부활 신앙을 통해 주님을 영접하게 되고, 신학교까지 세우게 됩니다. 그는 북군의 지휘관으로서 후퇴를 하다 지휘도를 놓고 오게 되는데 그걸 알게 된 부하 중에 링이라는 소년이 적진 속에 들어가 찾아오다가 총에 맞았습니다. “왜 그런 일을 했느냐?”고 물어봤더니 링은 놀랍게도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와 같이 계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부활의 신앙은 위대한 사도들만이 갖는 신앙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에 부활 신앙이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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