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설교

제목 능력   [살전 5:23-24]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등록일 2022.07.03
맥추감사절을 맞아 전반기를 마무리하고 후반기를 시작하면서 어떻게 하면 위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맥추감사 주일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능력’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믿음이 성장한 만큼 반드시 위로부터 능력이 임합니다. 죄와 싸워 이기는 능력이 임하고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임하지요. 권능의 손수건(행 19:11~12)과 자동응답서비스 기도 등을 통해 더 큰 응답과 축복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더 큰 능력으로 보장해 주신 증거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은 육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곱 족속이 터를 잡고 살고 있었지요. 그 땅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다 해도 쉽게 취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정복했지요. 육으로는 도저히 아니 될 일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이스라엘 백성 자체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1.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에 대한 믿음입니다. 바로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갔던 출애굽 2세대들은 이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여호수아가 이르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지요. 스스로 성결케 하라 하면 했고, 할례 하라 하면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범람하던 요단강도 흐름이 멈춰 마른 땅처럼 걸어서 건너게 해 주셨고, 견고한 여리고 성도 순간에 무너져서 쉽게 함락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도 신뢰해야 하지요(대하 20:20).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권능으로 보장하시는 하나님의 종을 신뢰하는 것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으로 간주하시지요. 그렇다면 성도님들은 하나님을 얼마나 온전히 신뢰하십니까? 여러분의 믿음이 온전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크게 임합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믿음은 단지 들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들어서 알기에 나도 그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 바로 산 믿음인 영적인 믿음이지요.
어떤 성도님들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며 자신도 큰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시험과 연단이 왔을 때 정녕 믿음으로 행군하셨습니까? 정녕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주어질 실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보장하시는 목자에 대한 신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모세가 없는 사이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만들어 경배했습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아 내려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십계명이 기록된 돌 판을 던져 깨트렸지요. 이때 모세와 함께했던 여호수아의 마음과 생각은 어땠을까요?
‘아니 저렇게 귀한 것을 왜 깨시나?’, ‘하나님께서 기록해 주신 십계명이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던져 버릴 수 있나?’ 하고 의아해하거나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에 대해 아무런 판단도, 정죄도 하지 않았지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모세의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그 밖의 어떤 일에도 모세에 대해 ‘왜 일을 저렇게 이루시나.’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이루고 있음을 온전히 믿고 따랐습니다.
갈렙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수기 14장 24절에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했습니다.

성도님들은, 특히 교회의 주축 된 일꾼들은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믿음이 얼마나 임해 있는지요? 전반기 한 시점을 놓고 볼 때도 얼마나 영적인 믿음으로 지내 오셨는지요? 혹 어떤 일꾼은 하나님의 뜻에서 어긋나게 행하면서도 “나는 목자를 사랑하여 이렇게 했습니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녕 목자를 사랑한다면 영적인 믿음 가운데 이뤄가야 합니다. 정녕 믿음이 있으면 소망 가운데 사랑을 가지고 그 말씀을 보장하기 위한 행함이 나오지요. 이것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보시고 능력을 베풀어 아니 될 것도 되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말씀과는 상반되게 행하면서 “나는 목자를 사랑하여 이렇게 했습니다.” 해서는 안 되지요.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사랑도 온전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려면 ‘성결’되어야 합니다

능력 있는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의 수준에 반드시 이르러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악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정녕 악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악이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인지 살펴야 합니다.
겉보기에 흠이 없다고 하여 성결된 것이 아니요 중심까지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 앞에 ‘성결 됐다’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지요. 서로 간에 얼마나 화평했는지, 얼마나 용납해 줬는지, 얼마나 양보해 주었는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서로 양보했고, 모든 것을 질서를 좇아 이루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머리로 세워졌기에 갈렙은 물러설 때는 물러서 있었지요. 자신도 머리가 되고자 하지 않고 잠잠히 자기 일을 감당했습니다. 또한 어려운 일에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여호수아의 힘이 되어 주었지요.
이러한 여호수아와 갈렙과 비교할 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얼마큼 상대에게 베풀어 주었으며 섬겨 주었는지요? 섬기는 사람은 자신이 섬김받지 못해도 항상 감사합니다. 보통 사람은 내가 상대에게 하나를 주었는데 상대는 나에게 두 개를 주면 너무 감사해하지요. 그런데 섬기는 사람은 나는 서너 개를 주었는데 상대는 내게 하나만 주어도 감사합니다. 상대가 전혀 주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이 바로 섬김의 마음이지요.
만일 머리 되었다 해서 마음이 높아지고 화평을 깬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의 수준엔 미달입니다. 목자의 이름을 대신한다고 해서 상대에게 불편을 준다면 이도 마찬가지이지요. 또 내 의가 앞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말은 들리지 않고 결과적으로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도 아직 성결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결’에 대해 바르게 정립할 분야가 있습니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것만이 성결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을 구분하여 나누는 것만이 성결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성결 된 사람은 반드시 사랑과 덕이 있기 마련입니다.
얼마나 영혼들을 사랑과 덕으로 감싸주었고 상처를 싸매 주었으며, 허물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덮어 주었는지, 헤아리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정죄하지 않고 수군거리지 않았는지 자신을 살펴볼 때 이 모든 것에 하나라도 걸린다면 더욱 성결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라 해도 조직을 이끌어 갈 때 임의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목자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고, 목자라면 어떤 덕과 사랑을 가지고 성도에게 베풀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지요. 목자는 어떻게 교역자들을, 일꾼들을, 양 떼들을 섬겼는지를 생각한다면 내 의가 전부는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믿어 주고 용서해 주며 허물이 드러나도 덮어 주고 오히려 힘이 되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이렇게밖에 못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하고 자기 의만 앞세워서는 안 되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화평 가운데 이루는 것입니다. 누르거나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님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좋은 기(氣)를 받고 태어났다고 여기는 분들도 자신의 성결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자신은 늘 착한 마음으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상대편에서 그리고 객관적으로 볼 때는 아닌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은 먼저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가득 채움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상대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마음은 의롭고 진실합니다. 그래서 빛과 어둠이, 영과 육이 그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는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의 목숨을 내어주신 사랑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덮어줄 수 있는 마음이 될 때 정녕 성결 됐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성결 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함께하심을 꼭 명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려면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그런데 자기 의가 있는 사람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떤 의중을 비쳤을 때 어떤 일꾼들은 “이렇게 하면 더 좋으니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면 저는 그것에 순종해 줍니다. 진리에 어긋난 것이 아니라고 하면, 하나님과 화평을 깨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될 수 있으면 들어주고 순종해 줍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실 때 무엇이 옳을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더구나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친히 보장하는 목자라면 말입니다. 당연히 양 떼가 목자께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일들이 있었지요.
예를 들어 교회의 조직과 체계를 재정립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주님의 마음은 한 사람도 마음 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체제를 정립한다는 명분 아래 자기 의를 펼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 사람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일들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이는 주님의 마음과는 너무 동떨어집니다. 그러니 이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이 아니지요.
한 가지 예를 더 들면, 교회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종들, 일꾼들, 성도들이 자율적으로 전도하고 심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정해진 체제 안에서 질서는 지켜야 하지요. 그러나 윗사람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한다면 마음에 부담이 될 수가 있습니다.
입술로 내지는 않는다 해도 그것이 마음에 쌓이지요. 그러면 온전한 화평을 이룰 수 없으므로 부흥의 열매도 그만큼 덜 맺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머리 된 일꾼들은 기도하여 선한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모든 일꾼이 기쁘고 즐겁게 일함으로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나도록 해야 하지요. 머리 된 일꾼들이 이렇게 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쓰시는 능력자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의 믿음과 성결과 순종을 이뤄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믿음, 성결, 순종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성결, 순종을 이뤄야 하지요.
우리 교회는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더 크고 굵직한 일들을 이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굳건한 믿음을 가진 일꾼, 성결한 그릇을 준비한 일꾼, 오직 순종하는 일꾼이 필요하지요. 많은 분이 이러한 능력자들로 나와 마지막 하나님의 섭리를 함께 이룰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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