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설교

제목 부활   [행 1:11]
설교자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3.04.09
부활절을 맞아 주님의 부활에 담긴 의미를 살펴봄으로 참된 믿음으로 주님과 연합하여 부활에 동참하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의 부활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40일간 제자들에게 보이신 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데도 제자들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지요.
그때 흰옷 입은 두 사람, 곧 천사들이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말합니다(행 1:11).
이 예언대로 주님께서는 영광의 구름을 타고 우리를 데리러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시고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실 주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1. 주님의 부활에 담긴 의미

1) 주님의 부활은,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말씀한 대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는 생령으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지요(창 2:17). 그러나 아담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었고 ‘사망’이라는 저주를 받아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의 몸도 늙고 병들어 죽게 되었지요. 물론 영은 완전히 소멸되거나 죽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영이 활동을 멈춰서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아담의 영이 죽고 난 뒤 하나님께서 처음에 불어넣어 주셨던 생기는 차츰 빠져나갔고 결국 흔적만 남았지요. 이것이 창세기 강해 통해 설명해 주신 ‘생명의 씨’입니다. 이렇게 영이 죽음으로써 아담을 비롯한 그의 후손들은 육의 수명이 다하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죽음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영혼의 죽음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람의 영혼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영원한 사망에 처하게 됩니다. 바로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형벌 받는 것이지요.
지옥에 떨어진 영혼은 아무 소망 없이 세세토록 상상하지 못할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세상의 많은 사람은 여전히 죄를 짓고 영원한 무덤, 곧 지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이처럼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생들을 가만히 보고만 있으실 수 없었습니다. 인생들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으로 예수님을 예비해 놓으셨지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이 자기 죗값으로 달려야 할 십자가 형틀에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인생들을 대신해 기꺼이 자신을 제물로 희생하셨지요. 그리하여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이마다 죄 사함 받고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죄 사함 받아 영원한 지옥 형벌을 면한 것도 감사한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녀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받아야 했던 영원한 사망, 곧 지옥의 형벌을 피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 부활’이라고 하며, 바로 주님의 부활에 담긴 첫 번째 의미입니다.

2) 주님의 부활은, 죽어서 썩어 없어질 우리 몸이 영원한 생명을 얻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고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히 9:27). 흙으로 지음 받은(창 3:19)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몸이 늙고 병들며 신체 기관이 퇴화하여 생명 활동이 둔해지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때 몸에서 영혼이 떠나면 그 남은 몸을 가리켜 ‘시체’라 부르며 시체가 된 몸은 썩어서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지요.
그런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성도가 육의 수명이 다해 장사 되었어도 ‘죽었다’ 하지 않고 ‘잠들었다’ 합니다. 왜 그럴까요?
때가 되면 죽었던 몸이 다시 살아나 영생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우리도 결국 죽어서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을 믿어 주님과 하나 되면 우리가 죽는다 해도 다시 살아날 수 있고, 또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부활 사건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에 이미 모진 채찍질로 온몸이 찢기셨습니다. 3년 공생애의 고된 사역으로 여위셨던 예수님의 몸은 참혹한 수난을 겪으셨습니다. 손목과 발목에는 대못이 박혀 구멍이 났지요. 가시관 쓰신 머리도 여기저기 찢어졌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 붉게 물드셨습니다. 이렇게 운명하신 예수님을 로마 병정은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고, 그러자 몸속에 남아 있던 물과 피가 다 쏟아져 나왔지요. 그 귀하신 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새 무덤에 장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3일 만에 다시 사셨고, 가장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신 후 제자들과 오백여 성도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부활체를 입으신 주님께서는 육의 몸을 입으셨을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이셨습니다. 상처도 전혀 없으셨고, 온전하고 아름다운 신령한 몸이셨지요.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도, 제자들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모든 문이 잠겨 있는 집안에 홀연히 나타나기도 하셨습니다. 이는 부활체가 사람의 눈에 보이지만 이 땅의 사람의 몸과는 다르며 영의 차원에 속한 신령한 몸임을 말해주지요.

주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었던 것처럼 주를 믿는 성도의 부활도 반드시 이루어질 사실입니다.
성도의 부활 사건은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일어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시면 먼저 구원받고 죽어 장사 된 성도들의 몸이 부활합니다. 부활한 몸은 공중으로 끌어올려지고 공중에 강림하시는 주님과 함께 내려온 그들의 영혼과 결합하지요. 이때 부활한 몸은 예전 살았을 때의 몸이 아니라 썩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체’라 부릅니다.
주님을 믿고 소천한 성도들의 몸이 먼저 부활한 후에 이 땅에 살아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순식간에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이를 ‘휴거’라 하지요. 이 땅에서 불구의 몸이었더라도 전신이 온전하고 아름다운 신령한 몸을 입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의 몸이 순식간에 부활체를 입으면 그 위에 빛나는 세마포 흰옷이 입혀지고 공중에서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7년 동안 혼인 잔치에 참여합니다.
바로 구원받은 성도의 몸이 부활체를 입는 사건을 ‘육적 부활’이라고 하며, 주님의 부활에 담긴 두 번째 의미입니다.


2.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려면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이를 믿는 성도들도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믿습니다.” 말하는 것으로, 주일에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 구원받고 부활에 동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구원의 사역과 부활의 영광을 이루시기 전,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이루시며 당부하신 것과 같이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합니다(요 6:53).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도 없고 부활의 소망도 가질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인자, 곧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니(요 1:1, 14) 인자, 예수님의 살이란 말씀을 의미하지요.
말씀을 양식 삼는 것은 단순히 성경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마음의 변화를 이뤄야 말씀을 양식 삼을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악을 버리고 비진리를 벗고 선과 진리로 채워야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인자의 피를 함께 마셔야 합니다. 우리가 음식 먹을 때 수분을 섭취해야 소화가 잘되어 영양분을 잘 흡수하고 노폐물을 배설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배우면서 동시에 순종하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에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면 그대로 순종해야 마음의 비진리가 빠져나가고 대신 진리가 채워집니다. 그럴 때라야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교만이 사라지고 겸손해지며, 미움이 사라지고 사랑이 채워집니다. 혈기 분노가 없어지고 온유한 심령이 되지요. 불평 원망 근심 걱정 대신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렇게 말씀에 순종하여 빛 가운데 행할 때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요일 1:7).

이처럼 말씀을 양식 삼고 그 말씀을 순종해 행할 때, 곧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실 때 성도들의 믿음은 날마다 성장하고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여 죄악에서 떠나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의 피로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사람은 영생을 가졌고 부활에 동참할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는 이 땅에서 거룩한 성찬식에도 참여하고 장차 천국 백성으로 영광스러운 천국 잔치에도 참여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절을 맞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요 천국 백성의 자부심을 가지고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하고 정결한 주님의 신부로서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을 침노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임종 체험을 하는 수양관들이 있다고 합니다. 임종 체험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눈물을 펑펑 흘리며 그동안 잘못 살아온 삶을 참회한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이렇게 죽을 텐데, 왜 그토록 아등바등 욕심을 냈었나? 왜 미워하며 추하게 살았던고? 왜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잊었는가? 이제는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새롭게 살아야겠다.’ 이런 후회와 다짐을 하지요.
우리가 예전에 허물과 죄로 죽었다가 주님을 믿고 다시 살아나 영생과 부활의 소망을 가졌음을 믿는다면 우리도 이처럼 새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이제는 정녕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리라. 이제 더 이상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주를 위해 살리라.’ 결단하며 부활에 합당한 마음을 다져야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했습니다. 부활절을 기점으로 더욱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셔서 부활의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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