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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언약궤 (2)
설교자 정구영 목사 설교본문 민 10:33-36 날짜 2019.06.30
지난 시간에 언약궤는 나무로 만든 궤와 그 덮개인 속죄소와 두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순금 덩어리로 만든 속죄소는 언약궤 뚜껑의 두 그룹 사이 부분을 말하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나 주시는 곳이라 했지요.

1. 속죄소의 의미

1)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나 주시는 곳
2)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는 곳
하나님께서는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는 영적인 원리에 근거해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십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대제사장이 매년 대속죄일(7월 10일)에 속죄 제물의 피를 뿌립니다(레 16:14~17). 그는 먼저 자기와 자기 가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 수송아지를 잡아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립니다. 그리고 다시 나와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 숫염소를 잡아 피를 뿌리지요.
출애굽 당시 열 재앙 중 장자 재앙을 피하기 위해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게 하셨던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출 12:13, 23). 이 어린양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예표입니다. 신약 시대에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인생들을 위해 거룩한 보혈을 흘려 화목 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던 것입니다(롬 3:25, 5:10, 요일 2:2).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때문에 속죄소가 영원한 은혜의 보좌가 될 수 있었지요(히 4:16). 우리 죄를 영원히 속죄하는 것은 썩어질 짐승의 피로는 절대로 안 되며, 그것은 오직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가능합니다(벧전 1:18~19).


2.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용서의 차원

1) 용서할 자를 능히 용서할 뿐 아니라, 용서하지 못할 자도 용서하는 차원
남유다 왕국 말기 때 므낫세왕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심히도 악을 행했습니다. 우상숭배에 앞장설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의 전에도 우상을 세웠지요. 또한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행했으며 점치고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해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듭 경고하셨지만 그는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므낫세왕과 남유다에 재앙이 임하여 이방 나라 앗수르왕의 군대가 침략하여 므낫세를 결박하여 끌고 갔습니다. 그제야 므낫세는 마음이 낮아져 간절히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가 나라를 멸망시키는 엄청난 악행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므낫세가 뉘우치고 겸비하게 하나님께 구하자 용서해 주셨습니다(대하 33:12~13). 그뿐 아니라 그가 고국으로 돌아와 다시 왕이 되게 하셨지요. 이렇게 용서하지 못할 것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2) 한계가 없는 용서의 차원
마태복음 18장 21~22절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여쭙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하니,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용서에는 ‘얼마나,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나’ 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는 다르지요. 7은 완전수로서 일흔 번에 일곱 번이란 무한대의 용서, 완전한 용서를 뜻합니다. 예수님의 용서도 한계가 없는 온전한 용서였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조롱하며,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인들까지도 완전히 용서해 주셨지요. 십자가에 달려 극한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악인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중보 기도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저희란, 당시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장차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고 죄 가운데 행할 온 인류를 지칭합니다.
어둠에 속한 사람들은 빛을 싫어합니다. 빛이신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대속하고자 이 땅에 오셨을 때도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대적하였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써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런 큰 용서를 받은 우리도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중심에서 용서해야 합니다.

3) 한 번 용서하면 기억지도 않으시는 용서의 차원
이사야 43장 25절에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도말’이란 ‘어떤 존재를 완전히 없앤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어떤 죄를 용서하셨으면 기억지도 않으며 깨끗하게 용서하는 분이십니다(시 103:12~14).


3.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순금으로 만든 속죄판 위 두 그룹은 사람의 얼굴에, 어깨에는 날개를 달고 있는 형상입니다. 날개를 펴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궤 위에 덮는 속죄판과 따로 제작하여 붙인 것이 아니고, 금 한 덩어리를 쳐서 일체로 만들었지요(출 37:8). 그러므로 두 그룹은 은혜의 보좌인 속죄소와 결코 분리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룹들 사이에’(출 25:22, 민 7:89, 대상 13:6, 시 80:1), 혹은 ‘그룹들 위에’(겔 10:18) 좌정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룹은 하나님을 호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언약궤의 역할

언약궤(속죄소의 두 그룹 사이에)는 하나님이 실제로 임재하시는 장소이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성경을 보면 언약궤는 1) 앞서 행하며 길을 인도하는 역할, 2) 대적을 물리치신다는 상징의 역할, 3)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증거의 역할을 합니다.
민수기 10장 33~36절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언약을 맺고 성막을 지은 후 가나안 땅을 향해 행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길을 행할 때 언약궤가 앞서 행하여 쉴 곳을 찾았고, 그들이 행진할 때 낮에는 구름이 그 위에 덮였습니다. 광야는 한낮에는 섭씨 40도 이상이 되고, 밤이 되면 너무나 추운 곳입니다. 그런데 낮에는 200만 명의 사람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구름기둥으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밤에는 불기둥을 세워 주셔서 추위와 짐승과 적들의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셨지요. 언약궤는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기사를 행하겠다 하십니다. 먼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앞서 행하여 요단에 들어가라 명하시지요. 그리고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쫓아내 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을 밟자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땅으로 요단을 건너게 되지요. 여기에서도 언약궤가 앞서 행하며 길을 인도하고, 대적을 물리칠 것을 상징하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증거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수아 6장에 보면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그 뒤를 군사들이 따라갑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해 6일 동안은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마지막 7일째는 일곱 바퀴를 돌고 백성이 큰소리로 외쳤을 때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렸지요. 동일하게 앞서 행하여 인도하고, 대적을 물리치며, 함께하시는 언약궤의 역할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언약궤는 인도하는 역할을 하시는데 어떻게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지 다윗의 경우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과의 두 차례 르바임 골짜기 전투에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삼하 5:17~25). 잠언 3장 6절에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말씀하신 대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비결입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는 어떠합니까? 성령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마음에 좌정해 계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시며 보호하는 역할을 하십니다.
이에 대해 어느 한 분의 간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사도 시대에 끝났고, 지금은 그저 성경을 읽고 선하게 사는 것이 믿음 생활의 전부라고 주장하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놀라운 일을 체험합니다. 목사님이 신학교에서 야간 강의를 마치고 차를 운전하여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깜빡 조는 바람에 시속 90km의 속도로 큰 나무와 정면충돌하고 말았습니다.
‘꽝’ 하고 부딪히는 찰나에 목사님의 눈에 믿기 힘든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눈부시게 흰빛 나는 거대한 천사가 운전대와 자기 사이를 에어백처럼 가로막고 있고, 또 다른 천사는 등 뒤에서 목사님의 가슴과 이마를 꽉 붙잡고 있는 모습을 선명하게 본 것입니다. 그리고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 후 얼마쯤 시간이 지난 후 앞뒤가 휴지를 구겨 놓은 것처럼 맞붙은 사고 차량 안에서 시체를 끄집어내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분명 만신창이 시체가 되었어야 할 운전자가 멀쩡하게 밖으로 걸어 나온 것입니다. 그는 즉시 꿇어앉아 대성통곡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천군 천사를 거느리고 위대한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시는데 제가 그 사실을 부인했던 것을 용서해 주소서!” 이제 그는 성령님께 완전히 사로잡혀 입만 열면 “불로! 불로!” 하는 불 목사가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성령 하나님으로 좌정하고 계십니다. 성령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성령의 인도와 보호함을 받는 삶이 얼마나 귀한 삶인지를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며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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