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바로가기복사 PDF
제목 하나님의 깊으신 뜻
설교자 정구영 목사 설교본문 창 45:4-8 날짜 2019.07.07
오늘은 맥추감사절을 맞아 전반기를 돌아보며, 우리 삶의 크고 작은 문제나 역경 앞에서도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주님을 의지해 문제를 극복하며 항상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맥추절과 오순절은 같은 날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맥추절은 7월 첫째 주일로 구별해서 특별히 ‘감사’라는 말을 붙여 ‘맥추감사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전반기를 돌아보며 감사드리고, 후반기도 감사로 부탁드리는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함을 알고 있지만 눈앞에 있는 넘지 못할 크고 작은 장애물이 있어 고민이 많은 분이 계십니까?
1997년,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폴 스톨츠는 IQ(지능지수)나 EQ(감성지수)보다 AQ(역경지수)가 높은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역경지수란, 수많은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해 목표를 성취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폴 스톨츠 박사는 사람들이 역경에 대처하는 스타일을 등반에 비유하여 세 가지 타입으로 분류했습니다.
힘든 문제나 역경이 다가오면 도망가거나 포기하는 사람을 퀴터(Quitter), 역경 앞에서 뚜렷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현상 유지 정도로 적당히 안주하는 60~70% 정도의 사람을 캠퍼(Camper)라고 합니다. 자신의 모든 능력과 지혜를 동원하여 정복하는 사람을 클라이머(Climber)라고 하는데 이들은 자신만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을 격려하고 북돋우면서 함께 정복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믿음의 선진들 중에서 태산같이 몰려오는 문제의 산을 넘어 클라이머, 정복자로서 삶을 살았던 요셉을 거울삼아 우리도 어떻게 하면 문제를 극복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자가 될 수 있는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역경의 문제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는 지혜

1)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신 깊은 뜻
꿈의 사람 요셉은 꿈 자랑을 했다가 이복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신뢰를 받아 그 집의 가정 총무가 되었으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되지요. 17세에 노예로 팔려온 요셉은 30세에 바로왕의 꿈을 풀어 주게 되고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바로왕의 꿈을 해석해 준 대로 7년간 풍년이 들었고, 그 후 7년의 흉년 중 2년째 되던 어느 날 형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 요셉 앞에 나타납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형들이 하나님 앞에 지난날의 잘못을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회개하도록 이끌어 갑니다. 마침내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창 45:7~8)
이처럼 요셉은 근동의 기근 문제를 해결하고, 가족들의 생명을 기근에서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2) 아버지 야곱과 가족들을 고센 땅에 거하게 함으로
한 민족이 온전히 형성되기 위해서는 주변 여러 민족들로부터의 갖가지 위협들도 이겨내야 합니다. 이런 위협들로부터 지키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이라는 강대한 나라의 보호막 아래 두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애굽 총리 요셉의 마음을 주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목축업을 하는 아버지 야곱과 온 식구들을 애굽의 고센이라는 기름진 땅에 거할 수 있도록 인도한 것입니다.
이처럼 야곱의 후손들이 고센 땅에서 구별되어 살게 됨으로 이후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이 가능하게 됩니다. 만약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서 신앙적 선택을 하지 않고, 정치적 선택을 했다면 그 결과가 어찌되었을까요? 정치, 경제적 선택인 혼인 관계 맺기로 인해 결국 애굽 사람들과 혈통이 섞이게 되었을 것이고, 점차 야곱의 후손들은 민족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애굽 문화에 동화되어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지시하신 가나안 땅에서 놀라운 세계 경영을 이루어 가시겠다고 꿈꾸셨던 하나님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이라는 사건은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3) 요셉의 유언과 출애굽
애굽에서 요셉은 110세의 나이로 형들보다 먼저 임종을 맞게 됩니다. 이때 요셉은 형들과 후손들에게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는 달리 자신의 무덤을 가나안 땅이 아닌 애굽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합니다. 그 대신 후손들로 하여금 다음에 가나안 땅으로 갈 때 반드시 자신의 해골을 메고 가게 하지요(창 50:25).
요셉이 이렇게 한 데에는 하나님의 심오한 뜻이 있었습니다. 요셉 자신마저 가나안 땅에 묻힐 경우, 애굽에서 사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언젠가 가나안 땅 자체를 아예 망각해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는 자기 무덤을 애굽에 두는 대신 후손들이 가나안을 향해 갈 때 자신의 해골을 메고 가게 함으로써 후손들이 애굽의 총리였던 자신의 무덤을 찾을 때마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약속의 땅임을 상기하게 하였습니다.
요셉의 무덤은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방향을 영원한 약속의 땅으로 향하게 해 주는 영원한 생명과 진리의 이정표였습니다. 이 유언은 400여 년이 지난 후 이스라엘 후손들에 의해 지켜집니다(수 24:32).
요셉처럼 현명한 사람은 고난이나 역경의 밑바닥에 흐르는 의미를 발견해 낼 줄 압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좌우되지 않고, 그 밑에 숨어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고난이나 역경,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좌절시킬 수 없습니다.


둘째, 지금 내가 하는 선택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택인가

어느 날 당나귀가 빈 우물에 빠졌습니다. 농부는 슬프게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지요. 당나귀도 늙었고 마침 쓸모없는 우물도 파묻으려고 했던 터라, 동네 사람들과 함께 삽으로 흙을 파 우물을 메워 갔습니다. 당나귀는 더욱 울부짖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웬일인지 당나귀가 잠잠해졌지요.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서 우물 속을 들여다보다가 놀라고 말았습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어서 바닥에 떨어뜨리며 발밑으로 흙이 쌓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흙더미를 딛고 점점 높이 올라오고 있었지요.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해서 무사히 그 우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나 환경으로 인해 흙더미와 같이 나를 덮어 오는 순간이 있지만 이때 오히려 지혜로움과 인내로 용기를 가지면 자신이 더 성장하고 높아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복자로서의 삶,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았던 요셉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요셉은 매사에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먼저,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 희망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선택했지요. 그랬을 때 주인의 눈에 띄어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보디발은 자기 소유를 요셉의 손에 위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위해 그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창 39:4~5)
또한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할 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 하며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여 사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억울하게 기약 없는 옥살이를 할 때도 요셉은 변명하지 않고, 기다리는 인내의 삶을 선택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런 요셉을 귀히 보시고 결국 애굽의 제2인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애굽의 왕족이 죽으면 72일 장례를 치르게 되는데,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장례를 70일로 치르게 됩니다. 그때 요셉의 나이가 56세이었고, 권력 공유 기간이 끝난 지 12년 정도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규모로 장례를 치를 만큼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성실한 삶을 선택함으로 바로왕뿐 아니라 애굽 백성들에게도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셋째, 내 앞에 다가온 역경을 오직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그렇다면 요셉으로 하여금 태산같이 밀려오는 장애물을 넘을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첫째, 요셉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었습니다(창 37:7, 9). 둘째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에 대한 삶의 체험이 지식으로, 기억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도 하나님께서 개입하고 계시다는 믿음을 붙들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는 동안 하나님이 주신 꿈과, 이 지식은 그에게 큰 힘이 되었고, 자기 인생에 하나님의 큰 뜻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보낸 오랜 세월을 헛되이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고, 힘든 삶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지요.
오늘날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홀로 가는 길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과 함께 손을 잡고 간다면 못 넘을 산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과 역경은 우리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고난을 극복하는 종교입니다. 주님도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부활의 영광으로 나오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난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였고, 베드로도 그리스도를 고난의 본보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벧전 2:21). 결코 고난 중에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높은 산을 올라 아예 포기하고 있는 자들, 힘들어 중간에 적당히 안주하는 사람들을 격려하여 함께 산을 넘는 유능한 하나님의 모든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랫글 : 영광의 열매(6)
윗글 : 언약궤 (2)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