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예배

제목 십자가의 도 (14)   [마 27:44, 눅 23:39-41, 요 19:34]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11.05
오늘은 십자가의 섭리 중 예수님께서 옆구리를 창으로 찔리시고 피와 물을 쏟으신 섭리 등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주시고 나무에 달려 대신 저주를 받으시므로 이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 사함을 받고 모든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질병과 연약함, 가난, 그밖에 온갖 재앙에서 놓임을 얻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말씀대로 사는데도 시험 환난이 왔다면 이는 축복을 위한 시험입니다(약 1:12 ; 마 5:10). 하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해 시험 환난이 온 경우에는 먼저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켜 죄의 담을 헐고 나서 믿음으로 기도할 때 시험 환난이 떠나지요. 혹여 사람의 실수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 믿음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영접한 우리가 얻은 가장 큰 축복은 지옥(막 9:48~49)에서 벗어나 천국에 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장차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런데 “주여 믿습니다!” 하는 것만으로 무조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한 대로 죄 사함을 받으려면 빛 가운데 행해야 하지요.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한 대로 회개하고 죄에서 떠나 다시는 범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빛 가운데 살아갈 때라야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양편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에 관한 기록이 차이 나는 이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많은 군중이 십자가 주변에 모여서 예수님을 모욕하고 조롱했습니다. 그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양편에는 두 명의 강도가 각각 십자가에 달려 있었지요.
그런데 마태복음 27장 44절에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하여 양편 강도들이 군중들과 함께 예수님을 욕했다고 했는데, 누가복음 23장 39~43절에는 강도 중 하나는 예수님을 비방했지만, 다른 한 강도는 오히려 예수님을 비방하는 강도를 꾸짖었다고 했습니다.
왜 성경의 기록에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이는 성경을 읽는 후세 사람이 그 장면을 실감 나게 느낄 수 있게 하고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인간 경작과 구원의 도를 기록하고 있는 성경의 모든 것을 상세하게 풀어서 기록하려면 수천 권이 되어도 부족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장면도 최대한 간추려서 기록해야 했지만 그 짧은 기록을 사람들이 읽으면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하지요.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골고다 언덕 위에 세 개의 십자가가 서 있고, 그 주변에는 십자가 형벌을 구경하려는 많은 군중이 모여서 요란하게 떠들고 있습니다. 로마 군병들이 창과 방패를 들고 밀려드는 군중을 막고 있지요. 십자가와 군병들을 중심으로 반원형 상태로 모여서게 되면 사람이 십자가의 어느 쪽에 서 있느냐에 따라 들리는 소리에 차이가 납니다. 더구나 십자가는 군중이 있는 곳보다 높이 있지요.
예수님을 욕하는 강도 쪽에 있으면 욕하는 강도의 말은 뚜렷하게 들리지만, 반대편에 있는 강도의 말은 잘 들리지 않습니다. 더구나 강도들도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고 있으니 또박또박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이런 상태에서 회개한 강도가 예수님을 욕하는 강도를 꾸짖는 모습이 욕하는 강도 쪽에 있는 사람이 볼 때는 예수님을 향해 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한 강도 쪽이나 예수님 쪽에 있는 사람은 두 강도의 말과 예수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기록도 정확하게 남길 수 있지요. 물론 하나님께서 정확한 내용을 알려 주셔서 기록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기록에 차이가 있도록 허락하심으로 성령의 감동함 속에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마치 영화 필름이 돌아가듯 생생한 현장감 속에서 당시에 전개되는 상황을 더 뚜렷하게 느낄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2. 구약의 예언대로 다리가 꺾이지 않으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여러 시간 동안 모진 고통을 받으시다가 마침내 운명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않으려고 빌라도 총독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고 부탁하지요(요 19:31). 십자가에 달린 사람의 다리를 꺾으면 더 이상 다리로 몸을 지탱하지 못하므로 숨이 막히고 빨리 숨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좌우편에 달린 강도들의 다리는 꺾어서 그 시체를 치웠지만, 예수님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호흡이 끊어지신 것을 확인하고는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았지요. 이는 시편 34편 19~20절에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예언한 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지고 나무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죄인이 아니며 점도 흠도 없는 의인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예언대로 의로우신 예수님의 다리뼈가 꺾이지 않도록 보호해 주신 것이지요.
민수기 9장 12절이나 출애굽기 12장 46절에도 출애굽 당시의 백성들에게 “어린양을 먹되 그 뼈를 꺾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어린양은 예수님을 상징하며 어린양의 뼈, 곧 예수님의 뼈를 꺾지 말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3. 옆구리를 창으로 찔리시고 피와 물을 쏟으신 영적인 의미

로마 군병은 숨이 끊어진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4절에 “그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했지요. 이미 예수님께서는 가시관을 쓰신 머리와 얼굴에 피가 낭자했고, 온몸에 채찍 맞은 상처와 못 박힌 손발에서 흐른 피로 처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의 예수님께서 이미 호흡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도 다시 창으로 찌른 것입니다. 이것만 봐도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죄로 관영한 오늘날은 예수님 당시보다 더 악한 세대가 되었지요.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너무나 뚜렷한 증거를 보여 주어도 많은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 정욕을 좇아 점점 더 죄악 가운데 물들어 가며, 더 악한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싫어해 핍박하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며 기사와 표적을 보여 주어도 여전히 믿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인생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주신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옆구리를 창으로 찔리시고 피와 물을 쏟으신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증거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곧 영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모의 정자와 난자로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셨지요. 그러나 사람과 똑같은 몸을 입고 태어나셔서 사람과 같은 성장 과정을 겪으셨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세주로서 합당한 자격을 갖추실 수가 있었습니다.
‘인류의 구세주가 될 수 있는 네 가지 조건’ 중 첫 번째 조건이 바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천사도, 짐승도 사람의 죄를 속량할 수 없고 오직 사람만이 죄인들의 죄를 속량해 구원받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이 뼈와 살로 이뤄진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채찍에 맞으면 아픔을 느끼셨고 피곤함도, 목마름도, 배고픔도 느끼셨지요.
마태복음 4장 2절에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하여 배고픔을 느끼신 것을 기록하고 있고, 요한복음 4장 6절에는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하여 긴 행로를 인해 곤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몸을 입으셨음을 다시 한번 확증하기 위해 ‘창으로 찌르니 피와 물이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육신을 가진 사람도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음을 증거합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했고,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는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온전한 분이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고 온전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도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했고, 베드로후서 1장 4절에는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했지요.
예수님께서는 사람들과 같은 몸을 입으셨지만, 일생동안 어떠한 죄도 범치 아니하셨고 거룩한 삶을 사셨습니다. 사람들과 같은 성정을 가지심으로 사람과 같은 감정을 느끼실 수 있었지만,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고 진리대로만 사셨지요. 오직 ‘예’와 ‘아멘’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여 모든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또한 예수님과 같이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를 믿고 불같이 기도하며 노력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죄악을 벗어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피와 물로써 참 생명을 얻고 영생을 누리는 것을 증거합니다.
원죄도 자범죄도 없으신 예수님의 피는 점도, 흠도 없는 보배로운 피입니다.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려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영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물은 영적으로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해 나가는 만큼 죄악이 벗어지고 의인이 되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쏟으신 피와 물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피와 물이며, 우리를 사망에서 구원하는 생명의 피와 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창에 찔려 피와 물을 쏟으심으로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해 죄 사함을 입었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받아 참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다시 한번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친히 고난을 겪으심으로 무수한 영혼이 구원받을 것을 생각하셨기에 오직 기쁨과 감사로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고난을 어찌하면 모면해 볼까 하지 않으셨고 아버지의 섭리를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셨지요. 한 영혼이라도 더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받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기만을 원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항상 기억하심으로 신속하게 죄악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되찾아 마지막 날에는 영화로운 천국에 들어가 주님의 사랑을 찬송하며 영생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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