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예배

제목 준비된 그릇   [눅 10:2]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11.19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한없는 인자로 우리의 쓸 것을 공급하시고 지금까지 지키시며 인도하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올해도 여러분의 삶 속에 갖가지 감사의 조건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혹여 ‘왜 말씀하신 일들이 더디 이뤄지는가?’, ‘내게는 왜 축복이 더디 임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분이 계십니까? 만약 이런 분들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들으심으로 그 이유를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축복받기 위한 조건은 이미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영의 공간 안에서 얼마든지 풍성한 열매를 낼 수가 있지요. 다만 문제는 여러분 각자가 반드시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그릇으로 준비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지만 무조건 침노해 들어가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성결되어 순종할 때 가나안 땅을 밟을 수 있었고 각 지파가 내보인 믿음의 분량에 따라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기업을 삼았지요. 하나님께서 본 제단에 주신 과업들을 이뤄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전 작업을 이루시며 준비된 일꾼을 갈급히 찾고 계십니다. 일꾼이 필요한 곳이 너무나 많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그릇이 나오지 않으면 그만큼 하나님 나라는 더디 이뤄집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쓰임 받을 만한 그릇을 준비하셨는지요? 준비된 그릇으로 나오신 만큼 하나님 나라에도, 여러분의 삶 속에도 풍성한 열매가 맺혔을 것입니다. 그만큼 감사의 조건도 넘쳤겠지요.
그러나 그릇을 준비하지 못한 만큼 맺힌 열매나 감사의 조건은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형편과 믿음에 따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오셨지요. 제단과 여러분 각자의 삶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 더욱 마음 다해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준비된 그릇의 요건 세 가지를 말씀드릴 때 어떤 그릇이 준비된 그릇인지를 깨우쳐 봄으로 각자의 마음을 점검해 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 준비된 그릇이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룰 때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일꾼을 찾으십니다. 누가복음 10장 2절에 예수님께서 “…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말씀하시지요. 이 말씀에는 단순히 숫자상으로 일꾼이 적다는 의미도 있지만 ‘예수님의 뜻대로 일할 일꾼이 절실하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칠십 인을 세우시고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하신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가는 곳곳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 지를 자세히 알려 주십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일꾼들이 예수님의 의중을 잘 헤아려서 그대로 행하기를 간절히 바라셨을 것입니다. 만약 일꾼들이 예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행한다면 아무리 일꾼의 수가 많아도 소용없지요.
오늘날에도 아무리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세워졌다 해도 하나님 뜻이 아닌 육신의 생각을 따른다면 일꾼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일꾼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원할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원하되 막상 행함에 있어서는 따르지 않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입니다.
사울 왕은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행해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대로 하지 않고 왕을 사로잡아 오고, 좋은 짐승들을 잡아 왔습니다. 좋은 것들로 하나님께 제사드리겠다는 이유였지요. 그 마음, 생각은 옳은 것 같지만 이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고 육신의 생각을 동원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신 바 되었고, 그는 온전히 돌이키지 않아 결국 사망의 길로 갑니다.
우리가 아무리 나 보기에 좋을 대로 이것이 옳다 하고 행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8장 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지 않은 이상은 내 생각이 옳다 하는 대로 따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가 없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나 주님의 제자들, 사도 바울이 많은 연단을 받아야 했던 것도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기 위함이었지요. 육신의 생각이 없어졌을 때 하나님의 법을 좇고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기에 20년, 40년, 그 많은 세월을 연단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오랜 세월 연단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셔서 나를 주관하시기 때문에 아멘 하고 순종해 나간다면 빠르게 육신의 생각을 버릴 수 있습니다. 영의 생각으로만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나갈 수 있지요. 이것이 진정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일꾼이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 근본 뿌리인 마음의 악, 비진리를 완전히 빼내야 하지요. 그리고 진리, 곧 선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밝히 받게 되고 오직 선으로, 사랑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 생각이 아무리 지혜롭고 뛰어나다 해도 결코 사람의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범사에 과연 나는 육신의 생각을 좇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지 철저히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2. 준비된 그릇이란, 선한 마음 있어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일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선하고 덕이 있어 어떤 영혼이든지 그 품에 깃들게 할 수 있는 그릇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세계를 이룬다는 것은 결국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많은 영혼이란 선한 영혼, 교회에 유익을 주는 영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지요. 물론 그중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제단에 큰 힘이 되는 영혼도 많겠지만 주님의 마음으로 품어야 하는 영혼들도 있습니다. 앞으로 몰려올 영혼들은 살아온 환경도, 배움도, 형편도, 처지와 성격도 다양합니다. 믿음의 분량도 다양하지요. 간혹 하나님을 믿으려는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오는 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영혼들까지라도 사랑으로 품고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포용할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5장 32절에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도 이런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덕과 선으로 무장하여 어떤 영혼이 오든지 변화시키며 생명을 줄 수 있는 능력자가 되어야 하지요. 그런데 아직도 자신이 속해 있는 곳에서 다른 이들과 부딪치므로 소리가 난다면 어떻게 무수한 영혼을 맞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의 제단을 이뤄오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영혼들을 만났습니다. 선으로 품어주어도 악으로 갚는 영혼, 배신하는 영혼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심히 훼방한 경우들도 있었지요. 그렇다고 해도 저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시기를 원한 적은 절대 없었습니다. 어찌하든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간절히 원했고 구원받기를 눈물로 기도했지요. 지금도 그 영혼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기에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고 돌아오는 분들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기쁜지요.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이룰 일꾼들을 키울 때도 오직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해 왔습니다. 아무리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큰 일꾼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을 믿고 바라며 최선을 다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공급해 주었지요.
범사에 선과 덕으로 어떤 영혼이라도 녹일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변의 영혼들이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 준비된 그릇이란, 어떤 상황에도 입으로 감사를 뿌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주의 일을 이뤄가다 보면 육의 눈으로 볼 때는 결코 감사할 수 없는 여러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준비된 일꾼과 그렇지 않은 일꾼의 차이는 이런 상황 속에서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준비된 그릇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을 오히려 감사의 조건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요.
사도 바울의 사역은 어찌 보면 이런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육의 눈으로만 보면 감사할 상황보다는 감사치 못할 상황이 더 많았지요. 그런데도 그는 그 상황들을 오히려 감사의 조건으로 바꾸었습니다.
예를 들어 복음을 전하다 깊은 감옥에 갇혔을 때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미했습니다. 그러자 감옥 문이 열렸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요. 이 일로 감옥의 간수와 그 가족까지 구원함으로 복음의 열매도 맺었습니다. 감사할 수 없는 조건을 만날 때마다 오히려 풍성한 감사의 열매를 맺었던 것입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채찍을 맞고도 오히려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습니다(행 5:41).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일꾼들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본 제단의 사역에도 육의 눈으로만 보면 감사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복음을 위해 진액을 다 하고 생명 다해 나갈 때도 오히려 훼방하고 앞길을 막는 세력들이 있었지요. 그때도 오직 감사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니 하나님께서 감동하심으로 상황이 반전되게 역사하셨습니다. 방해가 많으면 많을수록 훼방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역사는 더 크게 나타났지요.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오히려 더욱 감사하는 입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해 왔는데 왜 이런 어려움이 오나.” 하고 불평한다면 그 불평함의 열매가 맺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축복의 기회라 고백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고백한 대로 축복이 오고 크게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모든 섭리를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런데 때때로 그 일이 더디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가 준비된 그릇으로 나오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신속하게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는 이루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이지요.
당장에 어떤 보이는 열매를 주시기보다 먼저는 자녀들의 영혼이 잘되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이는 건물을 짓기에 앞서 땅을 잘 다지고 기초 공사를 충실히 하는 것과 같지요. 이렇게 사전 준비를 충분히 하고 건물을 지어야지만 건물이 오랫동안 튼튼하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는 그릇 준비를 잘해야지만 주시는 모든 축복이 견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우치심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아 마음 중심으로 감사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진정 준비된 그릇으로 나오심으로 크게 쓰임 받고 크게 영광 돌리심으로 많은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장차 심판 날에 큰 칭찬과 상급을 받고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글 : 십자가의 도 (16)
이전글 : 십자가의 도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