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예배

제목 십자가의 도 (17)   [요 19:28-30, 눅 23:46]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12.03
지난 시간에 이어 예수님께서 숨이 끊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위해 전하신 사랑의 메시지, 가상칠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상칠언 5. “내가 목마르다”(요 19:28)

사람이 피를 많이 흘리면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건조한 기후에서 오랜 시간 뜨거운 태양 아래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상태입니다. 탈진 상태에서 계속 피를 흘리심으로 갈증은 더욱 심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때 예수님께서 “내가 목마르다.” 하신 것은 단순히 갈증을 호소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가 예수님의 피 값을 찾아드림으로 그 갈증을 해소해 달라고 당부하시는 말씀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의 피 값을 찾아드릴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피 흘리신 까닭은 죄인 된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 값을 찾아드리는 것은 지옥으로 갈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전도하여 많은 영혼이 주님을 영접하게 하고, 믿음으로 천국에 가게 하는 것이지요. 바로 예수님께서 “내가 목마르다.” 하신 까닭은 영혼 구원에 힘쓰라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서 “목마르다.” 하시자 해융에 적신 신 포도주를 예수님의 입에 대어 드렸습니다. 해융은 솜이나 스펀지처럼 액체를 빨아들여서 머금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해융에 포도주를 적셔서 입에 대면 포도주를 빨아 먹을 수 있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신 포도주를 입에 대신 것은 갈증을 해결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신 포도주를 맛보셔야 하는 영적인 의미가 있으므로 입에 대어 맛만 보셨을 뿐이지요. 바로 시편 69편 21절에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하는 말씀이 그대로 이뤄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 포도주를 맛보신 것은 영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드심으로 그 대신 우리에게는 새 포도주를 마시게 하셨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신 포도주, 곧 오래되어 묵은 포도주는 구약의 율법을 의미하며 새 포도주는 예수님으로 인해 완성된 신약의 사랑 법을 의미하지요.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죄인들은 반드시 죄에 따른 형벌을 받아야 하고 죄 사함을 받으려면 매번 짐승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친히 속죄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율법의 모든 저주를 속량하셨지요. 즉 우리를 위해 신 포도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믿고 중심에서 죄를 회개하면 그 믿음으로 인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새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실을 깨우쳐 주시고자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받아 입에 대신 것입니다.


가상칠언 6. “다 이루었다”(요 19:30)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하신 말씀의 의미는 인류 구속의 섭리를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곧 사랑으로 율법을 이루셨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율법에 따르면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모든 죄인이 사망의 형벌을 받고 지옥으로 가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는 매번 소나 양을 잡아서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하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모든 율법의 저주를 대속하셨습니다(히 7:27). 이 대속의 과정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으로 완성되었지요.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미천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불쌍한 영혼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쳐 주셨습니다. 악한 사람들을 멸하실 권세가 있으셨지만, 죄인들의 손에 잡혀 채찍에 맞고 가시관을 쓰시며 손발에 못 박히는 모든 고통을 당해 주신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랑과 희생으로 인해 인류를 주관하던 원수 마귀 사단의 사망 권세가 깨어지고 우리는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섭리를 다 이루시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셨으니 이제 우리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곧 온전한 성결이며 온전한 충성이지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영적인 사랑, 팔복을 이루고 열심히 영혼 구원을 이뤄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면 주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처럼 우리도 천국에서 새 예루살렘의 하나님 보좌 가까이에 앉게 됩니다. 따라서 부지런히 신부 단장을 마치며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다 감당하시므로 주님을 맞을 때는 “내가 다 이루었나이다.”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상칠언 7.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예수님께서 가상칠언 중 네 번째 말씀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죄인의 입장에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 앞에 외면당하신 것을 알려주시고자 한 것이지요. 그러나 구속의 사업을 다 이루셨기에 이제는 다시 ‘아버지’라고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때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시는 말씀들이 사람들에게 들려야 하기 때문이요, 기도할 때는 큰 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렘 33:3).
제자들도 항상 큰 소리로 기도했고,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나올 때도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잠잠하라” 꾸짖는데도 바디매오는 더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마침내 응답받았지요.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행 7:59).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큰 소리로 부르셨습니다(요 11:43). 이는 하나님 앞에 구하는 의미로 명하시는 것이기에 기도할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큰 소리로 하신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상태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려 주시기 위해,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기 위해 큰 소리로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아버지 앞에 영혼을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 그 육의 생명은 끊어져도 영혼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영혼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받으시지요. 사람은 눈에 보이는 육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고 영, 혼, 육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육은 영혼을 담은 껍질에 불과하며 육이 소멸해 사라진다 해도 영은 영원불멸한 것으로 소멸하지 않지요.
하나님께서 흙으로 첫 사람 아담의 몸을 지으신 후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명의 씨, 곧 아담의 영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영 안에 영의 지식, 곧 진리로 채워 주셨고 이렇게 생명의 씨를 진리의 지식이 감싸고 있는 영 자체가 아담의 마음이었습니다.
혼은 두뇌의 기억장치와 그 안에 담긴 기억 내용들, 그리고 기억한 것을 떠올려 생각하고 활용하는 모든 작용을 통틀어 말합니다. 원래 아담은 영이 주인이 되어 혼과 육을 움직여 나갔습니다. 영이 진리로 채워져 있으니, 영이 주관하는 혼은 진리의 생각만 했고 영이 주관하는 육도 진리에 속한 행동을 했지요. 그러나 아담이 선악과를 먹으므로 범죄하자, 영은 죽고 말았습니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므로 영이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니 진리의 지식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인인 영이 죽어 활동이 정지되자 사람의 혼이 주인 역할을 하게 되어 육을 주관해 나갔습니다. 혼은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를 받아 비진리의 지식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비진리가 채워지는 만큼 원래 하나님께서 심어 주셨던 진리는 빠져나갔지요. 이렇게 마음에 가득한 비진리의 지식이 생명의 씨를 둘러싸고 활동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이 상태를 영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영이 죽어 활동이 멈췄다고 해도 사람의 영은 소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영은 영원불멸하신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서 만드신 것이기에 소멸할 수가 없지요. 육은 썩어 없어져도 영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이 죽으면 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뇌가 있어야 뇌세포를 통해 기억하고 생각합니다. 육이 썩어서 두뇌의 기억장치가 사라지면 영이 없는 짐승은 육과 함께 혼도 소멸하여 완전히 무로 돌아가지요. 그러나 영이 있는 사람은 혼의 작용을 할 때 그 작용이 마음으로 전달되어서 마음에 입력됩니다. 영 안에 입력된 혼의 상태, 다시 말해 영혼이 결합한 형태로 영원히 존재하게 되지요. 그래서 주님도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받게 되는데, 성령을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과 교통해 마음에 진리를 공급받아 진리가 채워지는 만큼 비진리를 벗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혼의 작용도 진리의 생각만 하며 행함도 진리로 행하지요. 영혼이 잘되는 만큼, 곧 마음이 진리로 채워지는 만큼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요삼 1:2).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요 3:5), 곧 영이 살아난 사람들은 수명이 다하면 그 영과 혼이 결합한 상태의 영혼이 천국으로 갑니다. 그러나 영이 살아나지 않아서 진리로 마음을 일구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 갈 수가 없어서 그들을 수용하기 위해 예비 된 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긴다는 기도를 올리신 것은 예수님께서 오직 하나님의 섭리대로 모든 것을 순종하여 이루셨음을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장차 부활하시는 것도 예수님의 뜻과 계획대로 이루신 것이 아니지요. 오직 하나님의 섭리대로 순종하셨을 뿐이며(요 4:34),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마무리 지으시며, 예수님의 영혼까지 거두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것을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는 하지만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의 중보자가 되어 주셨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지만 결국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루시는 분은 천하 만물과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본체이면서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께만 맡겨드린 것처럼 사람의 방법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방법을 쓸 때는 사람의 능력과 한계 안에서만 이룰 수 있지만, 범사에 하나님께 의지할 때는 사람의 능력을 초월해 마음껏 영광 돌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크게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남기신 일곱 마디 마지막 말씀들을 명심하여 마음에 이루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참혹한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큰 소리로 외치신 예수님의 심정을 깨달아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모든 이와 함께 영화로운 의의 면류관을 받으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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