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예배

제목 십자가의 도 (18)   [마 27:51-54, 엡 5:31-32]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12.10
오늘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뒤 일어난 일들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과정이 기록된 “이 비밀이 크도다” 말씀의 영적 의미에 대해 전하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뒤 일어난 일들

마태복음 27장 51~54절에는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뒤 발생한 놀라운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했지요.
먼저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진 것은 죄인들과 하나님 사이에 막혀 있던 죄의 담이 헐린 것을 의미합니다. 원래 구약의 성전에는 성소 안에 지극히 거룩한 성소, 곧 지성소가 있고 지성소 앞에는 휘장이 드리워져서 이 안으로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일 년에 한차례, 대제사장만이 속죄의 제물을 가지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서 죄인들을 위해 제사를 드릴 수 있었지요. 죄인들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속죄의 제물이 되신 후에는 성소의 휘장이 갈라진 것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헐렸습니다. 주님 보혈의 공로를 인하여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히 10:19~20).
바로 예수님께서 피 흘려 죄를 속하셨기에 우리가 성전에 들어와서 예배할 수 있고, 직접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교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 휘장이 찢어졌을 뿐 아니라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졌다’ 하여 지진이 일어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단단한 바위조차도 터졌을 정도이니 천하 만물이 함께 요동했음은 당연한 사실이지요.
이는 천지의 주재인 하나님께서 심히 애통하고 탄식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무려 세 시간 동안이나 해조차 빛을 잃었지요(눅 23:44). 하나님께서 흠 없는 독생자를 속죄의 제물로 내어 주신 아픔과 인간의 악함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는데도 이를 알지 못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들로 인해 심히 애통하심으로 이와 같은 현상들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또한 52~53절에는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수명이 다하면 ‘죽었다’ 하지 않고 ‘잔다’ 합니다. 장차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부활하여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 살았던 사람 중에도 성경에 예언된 구세주를 간절히 사모함으로 오실 주님을 바라보고 믿은 사람이 있었고, 안나 여 선지자나 시므온 같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아기일 때 뵈옵고도 구세주이신 줄을 알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 죽었다 해도 구원받을 믿음이 있기에 ‘잔다’라고 할 수 있지요.
‘자던 성도’는 바로 이처럼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 중에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육의 수명이 다해 죽은 사람을 말하며, 이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는 부활에 동참할 수 있게 됩니다(고전 15:20).


2. “이 비밀이 크도다” 말씀의 영적 의미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성도들은 마지막 때 육으로도 부활하게 될 뿐 아니라 주를 믿는 순간 먼저 영적인 부활을 합니다. 곧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지요. 에베소서 5장 31~32절에는 바로 그 영원한 생명을 얻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했지요.
사람이 결혼하면 부모를 떠나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이 됩니다. 이는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인데 왜 “이 비밀이 크도다” 말씀하셨을까요? 바로 결혼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 곧 성도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세 전에 숨겨진 영적인 비밀, 곧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사람이 죄악 된 세상에 속하여 마음과 행함으로 범죄해 나갈 때는 죄에 순종하는 죄의 종이요, 원수 마귀의 주관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죄를 짓는 사람에게 ‘너희 아비 마귀’라 하시는 것입니다(요 8:44 ; 요일 3:8).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그 소속이 변해 하나님께 속한 자녀들이 됩니다. 또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결합하게 되지요. 이렇게 주님과 연합하여 하나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면 죽었던 영을 살아나게 하며 성령으로 계속 영을 낳아 가게 하지요(요 3:6). 성령으로 영을 낳아 간다는 말은 마음에 진리의 지식을 채워 나간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영을 낳아 가는 사람들은 영이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음에 성령을 받아 성령으로 영을 낳아 가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의 마음에 대해 잠깐 설명하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먼저 명백한 진리의 마음과 명백한 비진리의 마음, 곧 하얀 마음과 까만 마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사람에게 생명의 씨가 생겼습니다. 그 후로 진리를 심어 주심으로 생명의 씨를 중심으로 진리가 감싸져 있는 것이 바로 첫 사람 아담의 영이요, 아담의 마음이 되었지요. 이렇게 맨 처음 아담의 마음은 오직 진리로만 채워진 하얀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담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자,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여 죄와 악, 불의, 불법 등 비진리를 심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원래 있던 하얀 마음과 함께 원수 마귀가 심어 준 까만 마음이 공존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또 하나의 새롭게 만들어진 마음이 있습니다. 바로 양심으로서 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본성을 기초로 하여 자신이 보고 듣고 배우면서 스스로 입력한 것들이 더해져서 형성됩니다. 진리와 비진리가 섞여서 자기 나름대로 가치 판단의 기준을 만들어 낸 것이 양심이지요. 그러니 사람마다 양심이 다를 뿐 아니라 사람 보기에는 선한 양심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선하다 하실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면 진리의 마음, 비진리의 마음, 양심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세 마음 중에 하나님께서 처음 심어 주신 진리의 마음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또한 마지막 때가 될수록 세상이 악해지므로 사람들의 양심도 점점 더 악해지지요.

사람에게는 맨 처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씨가 있습니다. 생명의 씨는 하나님과 교통하여 진리를 공급받아야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지요.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과 교통이 끊기고 비진리가 들어오니 세 가지 마음이 생명의 씨를 점점 감싸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비진리가 생명의 씨를 감싸서 활동하지 못하게 하므로 생명의 씨는 점점 활동이 위축되고 꼼짝 못 하게 되어 죽은 것과 마찬가지가 되었지요.
이러한 상태를 ‘사람의 영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씨가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닙니다. 마치 식물의 씨앗이 딱딱하게 죽은 것같이 보여도 그 안에 생명이 남아 있으면 언젠가는 싹이 나고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영이 언제 다시 살아날까요? 바로 성령을 받을 때입니다. 사람이 전도돼 복음을 듣게 되면 하나님의 빛, 생명과 진리의 빛이 마음속에 비췹니다. 이때 마음에 남아 있는 진리의 마음, 선한 마음이 이 빛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성령을 보내 주시고, 성령은 마음 안에 생명의 씨와 결합합니다.
이렇게 성령과 결합하면 생명의 씨가 꿈틀거리며 활동을 시작합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끊겼던 하나님과의 교통이 시작되며 다시 진리의 지식을 공급받기 시작하지요. 비진리로 가득 차 있던 마음에 진리가 채워져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과정인데,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힘쓰고 애써 기도하는 만큼 위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아서 마음의 비진리를 버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진리의 마음이 점점 더 힘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자기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마음을 주관하여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도록 하지만 사단은 혼을 통해, 곧 생각을 통해 마음속의 비진리를 주관합니다. 비진리가 많으면 마음으로 성령의 역사를 받기 전에 먼저 생각을 통해 사단의 역사를 받게 되므로 육체의 소욕을 좇아 멸망의 길로 가게 되지요.
비록 진리를 많이 들었고, 오랜 시간 기도한다고 해도 육신의 생각과 이론을 버리지 않으면 성령의 역사를 좇아 행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해도 마음이 곤고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밝히 체험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하고 변화되어 세 가지의 마음 중 비진리의 마음을 벗어버렸다고 해도 그것으로 연단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다음에는 양심의 악, 다시 말해 깊은 본성 가운데 숨겨진 죄성들을 발견해 벗어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양심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본성을 기초로 하여 자신이 보고 듣고 배우면서 스스로 입력한 것들이 더해져서 형성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양심이 다시 자신만의 깊은 본성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은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는 깊은 속마음입니다. 본성 속의 비진리는 하나님의 의와는 맞지 않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너무나 옳고 정당하기 때문에 스스로 발견해서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연단 중에 사람의 본성 속에 있는 비진리를 발견하게 하심으로 온전히 거룩하게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말씀을 듣고 열심히 자신을 발견하고 깨달아 나가면 본성 속의 비진리도 신속하게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남에게 해당하는 말씀으로만 생각하고 자기 모습을 깨우치지를 못하는 사람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신앙의 발전이 더딥니다.
비진리의 마음을 버리고 본성 속의 비진리도 발견해 벗어버리고 나면 진리의 마음만 남아 하나님 앞에서 영의 사람이라 인정받고 신령한 영의 세계를 항상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요일 3:21~22 ; 빌 4: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받아 생명의 씨와 결합한 진리의 마음이 커진 만큼 주님과 온전히 하나 되고 천국에서도 하나님의 보좌 더 가까운 곳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으로 온전히 영을 낳아 신속하게 주님과 하나요,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를 이루시므로 장차 영원한 천국, 그중에서도 가장 영화로운 새 예루살렘을 유업으로 받으실 수 있기를 우리 신랑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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