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예배

제목 십자가의 도 (20)   [마 7:21, 요일 5:16-17]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12.24
지난 시간에 이어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구원받지 못하는 경우 중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성령 모독, 훼방, 거역하는 경우

성령 모독, 훼방, 거역은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는 말과 행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하게 대적하는 것들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핍박하는 것과 달리 믿음이 있노라 하고 진리를 알면서도 자신의 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것을 말하지요.
오늘날에도 주님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말이나 행동으로 훼방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질병과 약한 것이 치료되고 귀신이 물러가는 등의 역사를 보고 오히려 “귀신 들렸다. 사단의 역사다. 마귀의 역사다.” 하여 훼방하기 위해 거짓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권능을 행하실 때 선한 사람들은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권능의 역사가 나타났으니,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임을 인정하여 영광을 돌리며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께 감사했지요. 양심이 선한 사람이라면 성령의 역사를 볼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이 두려워서라도 훼방하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사람의 질병을 치료해 주거나 약한 것을 고쳐 줄 권능도 없을 뿐 아니라 만약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귀신을 내어 쫓고 질병을 치료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할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장하시고 권능을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종에 대해 훼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사람을 부인하며 그를 통해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를 거역하는 것이니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되지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것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할 때 모세는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말했습니다(출 16:8). 이스라엘 백성이 선지자 사무엘이 다스리는 것을 싫어하여 왕을 구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하셨지요(삼상 8:7).
신약에서도 사도 베드로를 속이고자 한 것을 두고 성령을 속인 것이고 하나님께 거짓말을 했다고 했습니다(행 5:3~4).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땅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했는데, 그만 욕심이 생겨서 땅값의 일부를 숨기고 베드로에게 나와 전부를 드리는 척한 것이지요. 이에 그들은 혼이 떠나고 말았습니다. 회개의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즉시 사망으로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참고로 기억할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사람이 자기 스스로 귀신을 불러들였다가 내어 쫓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을 보면 매사에 귀신의 역사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머리가 아프다 하면, “당신 머리에 귀신이 들려서 그렇다.” 하고 아픈 사람도 “그렇구나.” 하고 인정해 버립니다. 이렇게 사람이 스스로 시인하고 귀신을 받아들이면 실제로 귀신이 그 사람에게 들어갈 수 있게 되지요. 영계의 법에 따라서 시인하는 대로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귀신에게 사로잡힐 만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물리치면 금방 물러가기도 잘합니다. 그래서 쉽게 귀신이 들어갔다 쉽게 나갔다 하는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사람이 귀신을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것이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귀신이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마음은 거룩하신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전이므로 더러운 귀신이 임의로 들어올 수 없으며 자기 입으로 시인하여 귀신을 불러들인다면 이는 결코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일이지요.
또 어떤 사람들은 귀신을 내쫓는다 해서 험한 욕을 하거나 사람을 때리기도 합니다. 이것도 진리에 비춰 볼 때 맞지 않으며 성령의 역사도 아닙니다.
혹 귀신이 들렸다고 해도 그 사람 자체는 인격적으로 대해 줘야 하며, 성령의 역사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은 단지 말씀으로만 명하면 됩니다. 귀신은 더러운 것이기에 예수님께서도 말씀으로 쫓아내실 때 “더러운 귀신아.” 부르신 일은 있지만 더러운 욕을 하신 일은 없습니다.
또 귀신 들린 사람을 때린다고 해서 영의 존재인 귀신이 아프다 할 리 없고 두려워서 나갈 리도 없습니다. 능히 귀신을 내어 쫓을 권세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기만 해도 귀신은 두려워 떠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보이는 경우

히브리서 6장 4~6절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했습니다.
이는 성령을 받고 은혜의 체험을 한 사람, 그래서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고 진리의 말씀을 들어 알고 믿으면서도 세상 유혹을 받아 타락함으로 현저히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경우를 말하지요.
비록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오던 사람이라 해도 지식적인 믿음에 머물러 있다가 세상으로 빠졌다면 어느 땐가 다시 구원받을 은혜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 속에 은혜를 받고도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버린 사람들은 어둠으로 가득 차서 더 크게 사단의 역사를 받지요. 그래서 원래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보다 더욱 악을 발하고 이전에 받았던 은혜를 부인하며 오히려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십자가를 현저히 욕보이는 사람들은 회개의 영을 받을 수 없고, 사함 받지 못하므로 결국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만 보아도 그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열두 제자로 뽑혔으며 예수님의 사역도 바로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자기 유익을 구하여 예수님을 배신하였고 은 삼십에 팔아 버렸지요. 예수님께서 잡히신 후에 그는 양심에 심한 가책을 느끼고 회개하고자 했지만, 회개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죄의식으로 인해 아무리 괴로워해도 하나님께서 그 회개를 받아 주시지 않으니,마음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결국 자살하고 말았지요.


3.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범죄하는 경우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했습니다.
이는 특히 진리를 알고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금하신 불법을 고의로 행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 21~22절에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했지요.
짐짓 죄를 범한다는 것은 범죄한 후에 잘못인 줄 알아 회개하고도 같은 죄를 계속해서 반복해 나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왕 다윗이 잠시 시험에 들어 살인이라는 큰 죄를 지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선지자가 와서 책망하자 즉시 회개하고 돌이켰지요. 잘못을 철저히 회개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큰 연단을 받을 때 겸비함으로 통과하므로 마음속의 죄성까지도 뽑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반면 다윗에 앞서 이스라엘 왕이었던 사울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했을 때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깨우쳐 주었지만, 중심에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불순종하긴 했지만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원해서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입니다.” 하기도 하고, 오히려 자기 잘못은 덮어둔 채 백성들 앞에서 왕으로서의 체면을 유지하려고만 하며 극구 변명만 했지요. 이렇게 변명만 내세우고 마음 중심에서 회개하지 않음으로 그는 번번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되었고, 그 죄의 담이 쌓인 끝에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믿음이 있고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범죄할 때 성령이 탄식하시며 깨우쳐 주십니다. 그래서 회개했다면 당연히 철저히 돌이킴으로 이후로는 빛 가운데 거하고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사람이 범죄할 때는 불의한 것을 보고 들음으로 생각과 마음으로 범죄하게 되고 결국 행함으로까지 범죄하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하여 다시 범죄하지 않을 마음이라면 처음부터 불의한 것을 보지도 않아야 하고, 다시 볼 기회도 없도록 스스로 끊어야 합니다. 그런데 회개했다고 하면서도 죄의 유혹을 물리치지 않고 여전히 보고 듣고 접해 결국은 불법을 거듭 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짐짓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므로 회개의 영을 받을 수도 없고 결국 성령이 소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회개하여 용서받고자 해도 마음대로 회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회개의 영을 주셔야 하며 그 회개를 받으시고 사해 주셔야 하지요. 하나님 앞에 회개해 죄의 담을 헐지 않으면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을지라도 그 이름이 지워지게 됩니다(출 32:33). 그런데,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면 회개의 은혜를 받을 수도 없고 하나님께 외면당한 채 심판을 기다려야 합니다.
물론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라고 해서 ‘범죄해도 상관없다.’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죄라도 버리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으면 성령 충만함을 받을 수가 없고 오히려 사단의 미혹을 받아 결국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간신히 구원은 받는다 해도 겨우 부끄러운 구원에 그치게 되지요.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 버려서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너무나 참혹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셨다 해도 “이제 내가 대신 죗값을 치렀으니, 너희는 죄 가운데 살아도 된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더럽고 추한 죄에서 떠나라. 정녕 빛 가운데 거하며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라.” 하고 애타게 호소하시지요.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고 믿는다면 죄와 상관없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신랑 되신 우리 주님과 믿음으로 연합하여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온전히 빛 가운데만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흠도 티도 없이 신부 단장을 마치고 성령의 기름으로 충만하게 예비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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