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예배

제목 십자가의 도 (21)   [요 6:53-55, 출 12:8-10]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3.12.31
오늘은 주님을 믿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아 첫 사람 아담의 범죄 이후로 잃었던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 형상을 되찾아 천국에 가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영생을 얻는 것이 그저 말로만 “주여 믿습니다.”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머리로만 알아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주님을 믿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하고 자기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고 자녀로 인정하시므로 거듭나 생명을 얻게 되지요. 이후로 영의 양식을 먹고 마시며 주님을 닮은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 성도들에게 필요한 양식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6장 5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했고, 55절에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했습니다. 곧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생명이 없으니 구원받을 수 없고,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2. 인자의 살을 먹는 것은 어린양, 곧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는 것

인자의 살이란, 영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51절에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함으로 예수님을 하늘로부터 내려온 산 떡이라고도 하였지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이요 생명의 떡인 ‘인자의 살’을 어떻게 먹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성경의 어린양 비유와 직접 관련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도 보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뵈었을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했지요. 양은 오직 목자의 음성에만 순종해 따라가며 성품이 온유하고 사람에게 유익만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 속죄제물이 되어 주셨고, 사람에게 좋은 것만 주셨지요. 특히 그중에서도 1년 된 흠 없는 어린양은 사람으로 치면 청년기의 가장 아름다운 때요 교미하기 직전의 순결한 상태이며, 영적으로는 흠도 점도 없으신 예수님을 비유합니다.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흠 없고 일 년 된 수양을 잡아먹도록 하나님께서 명하십니다. 애굽 전역에 장자의 재앙이 임할 때였지요. 바로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 위와 좌우에 바르면 그 피로 표시되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는 장자의 재앙이 임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 것입니다.
또한 12장 8~10절에는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말씀하셨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 어린양을 먹는 법을 세세히 알려 주신 것은 그 안에 우리의 생명과 직결된 영적인 교훈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3. 어린양을 먹는 법

1) 날로나 물에 삶아 먹지 말고 불에 구워먹어야 합니다
여기서 불은 성령의 불을 의미하며, 성령의 감동함 속에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양식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벧후 1:20~21). 성령의 불을 지피기 위해서는 불같은 기도를 해야 하지요. 또 하나님 말씀을 성령의 감동함으로 풀지 않고 억지로 풀게 되면 오히려 진리를 벗어나 멸망에 이른다고 경계하십니다(벧후 3:16). 이는 ‘날로 먹는 것’이나 ‘물에 삶아 먹는 것’ 등을 말하지요.
하나님 말씀을 날로 먹는다는 것은 바로 말씀 안에 기록된 영적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기록된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풀면 기도하기 위해서는 꼭 골방을 만들고 거기 들어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를 보아도 골방에서 기도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기도하실 때는 동산이나 한적한 곳에서 하셨고, 사도들은 성전에서 기도하고 지붕이나 바닷가에서 기도했으며, 다니엘은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지요.
그러므로 여기서 방은 영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는데, 그중에서도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라 하심은 깊은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과 교통해야 함을 깨우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 외부와 차단되는 것처럼 기도할 때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외식하지 말고, 세상 근심 걱정이나 잡념으로 중언부언하지도 말며, 중심으로 하나님과 교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에는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했습니다. 이를 문자적으로 본다면, 여성들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하니까 기도나 찬송도 소리 내어 할 수 없고 앞에 나서서 어떤 사명을 감당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도 드보라의 경우와 같이 여인이 사사로 세워진 때도 있었고 하나님 뜻을 전하는 여선지자도 있었습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을 붙좇았던 여러 여인이나 교회를 섬겼던 여인들의 이름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지요.
그러므로 ‘여자가 교회에서 잠잠하라’ 할 때 ‘여자’란, 하나님 말씀 안에 살아가는 여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별을 불문하고 교회 안에 들어와 있지만 아직 진리 가운데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의미하지요. 이렇게 육의 속성을 버리지 못한 가운데 불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잠잠하라’ 경계하심으로 진리 가운데 질서를 좇아 순종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해석을 하는 것을 봅니다.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물, 곧 말씀 자체가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포도주와 같이 보배로운 피를 쏟으실 것을 예표하신 표적인데, 그 영적인 의미를 모르니 “예수님도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는데 술 취해도 상관없다.” 말하며 진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또 문둥병자 나아만이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가 치료받은 것은 요단강에 치료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요단강에 일곱 번 잠긴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럴 때 어떤 질병이나 문제라도 해결된다는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 해석해 요단강에 가서 열심히 몸을 씻는다고 해서 병이 낫는 것이 아니지요. 이처럼 영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 말씀을 날로 먹는 것입니다.

물에 삶아 먹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 다른 어떤 세상 것도 가미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때때로 하나님 말씀에 진리 외의 이론을 섞어서 이해하려고 하거나 사람의 생각과 이론 속에서 설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과 지식은 지극히 제한적이며 아무리 훌륭한 사상도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세월이 흐르면 달라지지요. 이와 달리 하나님 말씀은 세상 어떤 지식보다 뛰어나며 유일한 진리요,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연구해서 성경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따지는 데 몰두하고, 그 안에서 생명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영적으로 하나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유대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모국어로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배웠고, 그것을 달달 암송하고 한 글자도 변개함이 없이 보존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정작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영생을 얻을 수도 없었습니다.
설교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명심해 성령의 감동함 속에 풀어진 성경말씀 자체를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확신 속에 증거해야 하며 어떻게 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또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가 등을 증거해야 하지요.

2)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까지 다 통째로 먹어야 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66권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양식 삼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레위기와 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은 빼고 또 재미없고 이해 안 되니까 빼고 읽거나 구약은 주님 이전의 말씀이니까 우리와 상관이 없다고 하지요.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도 기사와 표적은 믿지 않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생각에 맞지 않는 것은 다 빼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진리도 아니고 믿음도 아니며, 윤리와 도덕에 해당하는 것만 남습니다. 그나마도 그중에서 지키기 어렵고 행하기 어려운 것은 마음에 두지도 않으니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읽는다고 해도 영생을 얻을 수 없지요. 하나님 말씀은 자기 생각에 맞는 특정한 부분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씀을 온전히 믿고 양식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린양을 통째로 먹으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3)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고 남은 것은 다 소화해야 합니다
밤이 새기 전에 다 먹지 못하면 남은 것은 불에 살라 버려야 하지요. 영적으로 밤이란 원수 마귀 사단이 세상 권세를 잡고 있는 기간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세상의 죄악이 점점 더 관영해 갈수록 흑암이 짙어집니다. 그러다가 때가 이르러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임해 아침이 오지요.
이때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참이었다는 사실을 온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고, 각각의 성도들이 얼마나 성결을 이루었고 상급을 쌓았는지도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버리지 못했던 자기 의와 욕심, 자존심 등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세상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헛된지 너무나 확실하게 알게 되지요.
그런데 이때는 사람들이 드러난 결과에 대해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 주님의 재림 이전에 모든 말씀을 부지런히 양식 삼아서 온전히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아침이 오기 전, 밤 동안에 모든 말씀을 이루어 신부 단장을 마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명하신 그대로 어린양을 불에 구워서 통째로 양식 삼되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신속하게 다 양식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장차 천국에서도 가장 영화로운 자리에 들어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예비하신 모든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글 : 십자가의 도 (22)
이전글 : 십자가의 도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