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예배

제목 십자가의 도 (22)   [요 6:53-55]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4.01.07
지난 시간에 인자의 살을 먹는 방법, 곧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는 방법을 설명한 데 이어 오늘은 인자의 피를 마시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6장 53절에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세주이심을 알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안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만 영생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육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식을 먹으며 동시에 수분을 섭취해야 하듯이 영적으로도 인자의 살을 먹어서 온전히 양식 삼으려면 반드시 음료인 인자의 피를 마셔야 합니다(요 6:55).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행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1. 인자의 살, 곧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는 만큼 진리가 마음에 채워져

인자의 살을 먹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는 것입니다. 어린양을 먹을 때 불에 구워 먹어야 하듯이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들을 때도 성령의 감동함 속에서 깊은 영적인 의미를 깨우치고 마음에 양식 삼아야 하지요.
그런데 어린양을 온전히 양식 삼기 위해서는 지식적으로 그 의미를 깨달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이 성령의 감동함 속에서 마음에 임해야 합니다. 66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읽어서 지식으로 쌓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을 마음에 온전히 임하게 하는 것이 곧 말씀을 양식 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마음에 양식을 삼는 것과 지식으로만 담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머리에 기억된 것은 잊어버릴 수도 있고, 진리를 지식적으로 안다고 해서 그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양식 삼은 것은 삶 가운데 행함으로 나올 뿐 아니라 정확한 성경 구절은 잊어버린다 해도 마음에 일궈진 내용은 그대로 남아 있지요.
예를 들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했는데, 이 말씀을 안다고 해서 원수가 악을 행하고 자신을 핍박할 때 말씀대로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로만 알고 마음에 이루지 않았다면, 감정이 상하고 상대가 미워지며 심지어 악을 악으로 갚게 되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사랑하라”는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은 사람은 이 말씀이 몇 장 몇 절에 있는지는 잊어버렸다 해도, 상대가 악을 행할 때 저절로 자기 안에서 사랑과 긍휼함이 우러나옵니다. 그리고 상대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주게 되지요.
이렇게 인자의 살을 양식 삼아 가면 비진리로 물든 까만 마음이 점점 하얀 마음으로 변하게 됩니다. 마치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면 노폐물은 몸에서 빠져나오고 양분이 흡수되는 것처럼 인자의 살을 마음에 양식 삼는 만큼 진리는 채워지고 비진리는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는 죄와 악이 없는 진리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 이후 비진리를 하나하나 마음에 받아들이게 되었고 비진리가 들어오는 만큼 진리는 빠져나갔지요. 이제 인자의 살을 먹고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아가면 진리가 마음에 채워지며 비진리가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2. 인자의 살을 양식 삼으려면 인자의 피를 마셔야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으려면 사람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감동함을 통해 말씀을 깨달을 뿐 아니라 불같은 기도를 통해 마음의 악을 버리게 하시는 은혜와 능력을 받아야 하지요. 그러면서 말씀을 믿고 그대로 지켜 행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행함이 바로 인자의 피를 마시는 과정입니다.
사람이 소화를 잘 시키려면 수분이 필요하듯이 영적으로도 참된 음료인 인자의 피를 마셔야 인자의 살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묵상하며 말씀을 이루고자 기도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요. ‘지키라, 버리라, 하라, 하지 말라’ 하신 성경 말씀들을 하나하나 지켜 행해야 합니다. 행함이 없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도 없고 직접 체험하지 못하면 보고 들은 지식적인 믿음에서 더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한 대로 들은 말씀을 지켜 행할 때 그 행함을 통해 영적인 믿음이 쌓이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겨자씨만한 믿음 밖에 없지만, 그 작은 믿음이라도 행함으로 내보일 때 하나님께서는 믿음대로 은혜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나면 더 큰 믿음을 소유하게 되고 다음번에는 더 큰 행함을 내보일 수 있게 되지요. 그래서 결국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더 크고 중한 문제를 만나게 될 때도 담대하게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개척하기 전, 세 딸에게 한 차례씩 어려움이 왔을 때 그때마다 하나님 앞에 믿음을 내보이는 행함을 통해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방학을 맞아 기도원에 다녀왔더니 초등학생이던 큰 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부스럼이 나서 누워 있었습니다. 움직이기만 하면 갈라져서 피가 나는 상황이었지요. 어느 날은 둘째가 트럭과 부딪치는 사고를 당해 얼굴이 퉁퉁 붓고 입안은 너덜너덜하게 찢어지고 엉망이었습니다. 또 막내딸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데, 고등학생과 심하게 부딪쳐서 넘어지면서 뇌진탕을 입었지요. 다른 사람들이 막내딸을 병원에 데려갔는데 그 병원에서는 종합병원으로 가라고 했으나 저는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고 아이는 집에 누워서 계속 의식을 잃고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 딸의 경우가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병원에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찢어졌으면 수술해서 찢어진 곳을 봉합해야 할 것이고 더구나 뇌진탕으로 의식을 잃었다면 급히 병원에 가도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저는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는 큰딸을 볼 때도, 엉망이 된 둘째 딸의 얼굴을 볼 때도, 뇌진탕으로 의식불명인 셋째 딸을 볼 때도 전혀 염려하지 않았고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믿음대로 역사해 주셨습니다. 기도해 준 후 큰딸은 온몸에 난 부스럼이 하룻밤 사이에 깨끗해졌고, 둘째 딸은 그렇게 입이 붓고 찢어진 상태에서도 통증이 없었기에 밥까지 잘 먹을 수 있었으며 학교도 꼬박꼬박 출석했지요. 셋째 딸 역시 일어난 날이 월요일이었는데 수요일 아침이 되니 거짓말처럼 의식이 돌아와서 수요예배까지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저와 가족에게 더 큰 믿음이 되었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감탄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범사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때 일용할 양식을 채워 주시는 축복을 체험하니 다음에는 더 큰 믿음으로 심고 거둘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미워하던 사람이라도 용서하고 믿음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행함을 보일 때 마음에 사랑이 조금씩 임하지요. 그렇게 노력해 나가면 결국 마음에서 미움이 빠져나가고 온전한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범사에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해 나갈 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며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마음에 양식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성령을 받고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다 해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영적인 체험을 할 수가 없고 마음이 변화되기도 어렵습니다. 자칫하면 그 작은 믿음조차 빼앗겨 구원과는 멀어질 수도 있지요.
그러니 요한일서 1장 6~7절에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했습니다. 즉 세상 비진리를 좇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빛 되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 빛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받을 수 있고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다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3. 진정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행함이 따라

정말 믿는다면 반드시 행함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이 땅에서도 들어오나 나가나 축복받고, 장차 하늘에서도 영광스러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범사에 믿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면 어떤 문제도 해결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지요.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반드시 그 말씀대로 행하게 됩니다. 물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된다는 것을 믿으면서 시원한 물을 눈앞에 두고도 마시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지요? 믿지 않으니까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 또 부산의 어느 지점에 가면 수억 원어치 보물이 묻혀 있는데 서울에 있는 사람이 부산까지 걸어갔다 오면 그것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합니다. 값나가는 보물이 묻혀 있다는 사실과 자신이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할 수만 있다면 몇 날 며칠을 걸어서 다리가 아프다고 해도 기대에 차서 보물을 가지러 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고 고백하지만, 마음에는 온전히 믿지 못하기에 여전히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이 있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 응답과 축복 가운데 살아갈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4.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받는다’는 말씀의 의미

로마서 10장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나타내는 구절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자신이 진리 가운데 살지 않는 것을 정당화시키려고 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곧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이라도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듣고 미혹되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러나 이 말씀은 결코 불법을 행하는 사람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구절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은 짝이 있으므로 앞뒤의 문맥을 살펴서 바르게 이해해야 하지요.
로마서 10장 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무조건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입으로 주를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는 사람이 입술로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로마서 2장 13절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믿으면 반드시 말씀대로 행하게 되며 의롭다 하심을 받아 의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른 사람이 입술로 주를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자의 살과 피를 부지런히 먹고 마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고,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참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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