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예배

제목 십자가의 도 (24)   [민 21:4-9]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4.01.21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겪은 불뱀 사건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과 이 사건과 예수님의 십자가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므로 불뱀 사건을 겪은 이스라엘 백성

민수기 21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이후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고된 종살이를 하면서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셔서 열 재앙을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 주시며 그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해 주셨지요. 그들은 큰 기대에 부풀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의 상황이 기대한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애굽 땅을 벗어나면 곧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것으로 기대했지요. 출애굽 한 후로는 어떤 고난도 없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영광과 풍성한 축복만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먼저 광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축복의 땅에 들어갈 자격을 갖춰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축복받을 그릇을 갖춰야 했던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도 못했고,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원망과 불평만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이르러서도 그 땅을 취할 믿음을 내보이지 못함으로 결국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광야에서 연단 받아야 했지요. 그들은 40년 동안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불평하고 모세를 원망했는데, 그때마다 모세는 하나님께 간구하여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모세 한 사람의 믿음으로 하루하루 광야의 여정을 이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성들 가운데 다시금 불붙은 불평과 원망은 큰 재앙을 불러옵니다. 가나안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험한 광야 길을 멀리 돌아가야 하니 다시금 백성들 사이에 불만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400여 년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건져 주었는데 오히려 자신들을 죽게 한다고 원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만나를 ‘박한 식물’이라 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하지요(민 21:5). 이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시니 갑자기 치명적인 독을 가진 불뱀들이 나왔습니다. 많은 백성이 불뱀에게 물려서 죽어갔고, 백성들은 그제야 모세에게 회개했지요.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모면할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놋으로 불뱀 형상을 만들어서 달았고 이 놋뱀을 바라보는 사람은 불뱀에게 물렸다고 해도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2. 불뱀 사건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

1)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해결 받아야 합니다
불뱀은 물론 세상만사와 모든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불뱀이 나오도록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불뱀의 재앙으로부터 건져 주신 분도 하나님이셨지요.
물론 이때 없었던 불뱀을 하나님께서 갑자기 나타나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동안 머물렀던 광야에는 어딜 가나 불뱀은 물론 무서운 전갈도 많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기에 백성들에게 근접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을 원망함으로 범죄하니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들을 지켜 주실 수가 없으므로 불뱀들이 해를 끼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이 불뱀이라는 문제의 원인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찾아야 했고, 그 문제의 해결점도 하나님으로부터 찾아야 했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모든 문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해결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불뱀’이라는 것은 원수 마귀 사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미혹한 뱀에게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하셨는데(창 3:14), 이때 흙이라는 것은 ‘범죄하여 육으로 돌아간 아담과 그 후손’을 의미합니다. 곧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과 이방인들을 칭하는 것이지요. 아담의 범죄 이후로 뱀, 곧 원수 마귀 사단은 죄 가운데 사는 육의 사람들을 밥으로 삼아서 시험 환난을 가져다주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고나 질병을 비롯해 어떤 어려움을 만나거나 불통한 상황이 되어도 그저 우연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광야에 아무리 불뱀이 많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 주실 때는 그들에게 뱀이 해를 입히지 못한 것처럼, 세상에는 많은 재앙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지켜 주실 때는 시험 환난을 겪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는 왜 하나님께 지킴 받지 못했는지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범죄를 회개하고 모세에게 나왔던 것처럼 자기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와야 하지요. 통회자복하여 죄의 담을 헐고 하나님 말씀대로 빛 가운데 나올 때 어떤 문제라도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믿음의 연단을 받을 때 오직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4절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연단을 허락하셔서 정금 같은 믿음을 갖게 하시고 축복받을 그릇을 예비하게 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기까지는 오랫동안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면서 연단의 세월을 보냈지요.
다윗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도 10여 년의 시간을 사울 왕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쫓겨 다녀야 했습니다. 요셉은 서른 살에 애굽의 총리가 될 때까지 13년이나 온갖 고생을 하였지요.
이처럼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낮아지고 낮아져서 마음의 모든 죄악을 벗어버리고 축복받기에 합당한 그릇을 갖춘 것입니다. 사람이 축복받기에 합당한 그릇을 갖추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때까지 받은 모든 연단을 위로하시며 넘치는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연단 받은 것도 결국은 그들이 축복의 땅 가나안을 얻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신 8:15~16). 백성들이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신뢰했다면 광야 길이 험하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축복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자신들의 모습을 변화시켜야 했지요. 감사함과 기쁨으로 연단을 잘 받고 나면 반드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단 속에서 축복받을 그릇을 갖추고 시험을 통과해 믿음을 증거할 때라야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셔도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힘들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면 연단이 끝나지도 않고 축복이 오지도 않으며 오히려 연단이 계속 길어지지요. 원망 불평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자체가 “나는 아직 축복받을 그릇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비하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끝까지 인내하며 감사하고, 신속하게 변화되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을 이루심으로 예비하신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롬 8:18 ; 약 5:11).

3) 놋뱀을 보고 믿음을 갖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게 물렸을 때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보면 살 수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굳이 놋뱀을 보는 방법을 쓰지 않고도 권능만으로 낫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고백한 백부장처럼 이스라엘 백성에게 믿음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치료받으라.” 말씀만 하셔도 되지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아무리 크셔도 그들이 믿지 못하면 불뱀의 독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더 쉽게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믿음의 표상을 주셨지요. 자신들을 해롭게 한 불뱀의 형상이 죽임당한 뱀과 같이 장대에 달린 것을 눈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불뱀의 재앙에서 건져주신 것을 더 구체적으로 마음에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바라보므로 구원받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

요한복음 3장 14~15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의미하지요.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의 모든 죄를 지시고 불뱀이 장대에 달린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면 뱀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 사단인데, 어째서 장대에 달린 뱀을 보는 것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을 동일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곧 원수 마귀 사단의 멸망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바라보는 것은 곧 원수 마귀 사단의 사망 권세가 깨어진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기에 그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영계의 법칙상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아담의 범죄 이후 죄인 된 아담과 그 후손은 모두가 사망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곧 사망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의 권세 아래에서 온갖 시험 환난을 겪으면서 살다가 죽으면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데, 이때 원수 마귀 사단은 악한 사람들을 사주해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죽이고 나면 자기들의 사망 권세를 영원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원수 마귀 사단은 자신들의 사망 권세를 잃어버리고 말았지요.
영계의 법칙에 의하면 사망의 형벌은 죄인들에게만 해당하는데 원수 마귀 사단은 영계의 법칙을 어기고 원죄도 자범죄도 없으신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계의 법을 어겼으니 원수 마귀 사단은 그 대가를 치러야 했지요. 곧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을 자신의 사망 권세 아래에서 내어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역사적으로 확실한 사건이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받습니다. 주의 이름을 믿고 기도할 때 모든 시험 환난에서도 벗어날 수가 있지요. 그런데 아무리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셨다고 해도 이 사실을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장대 위의 뱀을 순종해서 보기만 하면 되는데 그러지 않은 사람은 불뱀의 독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었지요.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데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고 시험 환난을 겪다가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마다 모든 저주와 재앙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신속하게 참 자녀의 형상을 되찾아 복된 삶을 살고 새 예루살렘의 영광중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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