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예배

제목 복 있는 사람은 (2)   [시 1:1-6]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4.02.04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복 있는 사람은 첫째,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자기 유익을 위해 악한 계교로 남을 어렵게 하거나 끌어내리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더 높아지고 인정받으며 많은 유익을 얻었다 생각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해서 복을 받으려고 해도 그 결말은 재앙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의 축복과 저주는 천하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달렸으며,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축복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언 16장 1절에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했고,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했습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우리 인생들이 아무리 미래를 계획하고 철저히 준비한다고 해도 그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그 뜻대로 거하는 사람에게는 내일 일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복 받을 길로 인도하시며 그릇이 준비된 만큼 크게 축복하시지요. 세상이 줄 수 없고 사람의 수고로 이룰 수 없는 더 크고 많은 부와 명예, 권세를 주셔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가난하게 하시고 질병이나 재앙, 저주를 내리신다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공의 가운데 흘러가도록 정하셨기에 사람들이 수고하고 노력한 만큼 그 부와 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악과 불의, 불법으로 취한 것이라면 순간에 사라지거나 그 악이 쌓여 결국 드러나므로 심히 낮아지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혹여 그들에게 심판이 더디 임하는 것 같아도 결국 내세에는 무엇 하나 숨기지 못하고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지혜로운 성도라면 당장의 부와 명예, 권세와 쾌락에 눈멀어 죄악과 타협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영원히 사는 내세가 있기에 잠시 잠깐 사는 이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 사는 것이 아니라 힘써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며 선과 진리로 행해 영원한 천국에서 큰 자가 되어야 하지요.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항상 지켜 주시니 세상의 사고와 위험, 재앙과 상관없고 질병의 걱정 근심도 없이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이지요. 지난 시간에 이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기뻐하심으로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둘째,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영원한 생명을 잃고 사망으로 가게 된 이유가 바로 죄로 인한 것이지요. 사단의 사주를 받은 뱀의 미혹을 따라 불순종하는 죄인의 길에 섰기에 이 땅에서 눈물, 슬픔, 고통을 받게 되었고 늙음과 죽음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죄인의 길은 심판의 길이요 사망의 길이므로 복 있는 사람은 결코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세상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들을 행위적으로 어긴 사람을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남을 미워하고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실제로 죽이지 않으면 죄인이라 하지 않지요. 아무리 욕심이 많고 도적질할 마음이 있어도 실제로 훔치지 않으면 죄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죄악을 품는 것만으로도 죄인이라 하시지요. 미움, 다툼, 시기, 질투, 욕심, 간음, 판단, 정죄 이런 악이 마음에서 발동되는 것, 곧 육신의 일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분명히 죄요, 죄인입니다(시 66:18).
죄라고 하기에는 아주 사소한 예를 들어 볼 때 여러분의 마음을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새벽에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데 빨간불입니다. 빨리 가야 하는데 좌우를 보니 차도 오지 않고 경찰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때 ‘아무도 없으니 건너야겠다.’ 할 분도 있고, ‘건너고는 싶지만 교통법규에 위반되니 건너지 말아야지.’ 또는 ‘건널까 말까.’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가 오든 오지 않든 경찰이 있든 없든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법을 어길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법도 어길 마음이 없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법은 더더욱 어길 마음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볼 때는 범죄하지 않은 것 같아도 육신의 일을 온전히 벗어 버리지 않으면 버릴 때까지 연단을 받게 됩니다. 혹여 ‘나는 왜 기도하고 충성하고 예배드리고 심는데도 치료받지 못하고 응답받지 못하고 축복받지 못할까?’ 생각하십니까? 이는 하나님께 죄의 담이 있으면 응답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행위적인 것만이 아니라 진리를 알면서도 마음과 생각에 여전히 육신의 일을 품고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는 죄이니 구하여도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욥도 행위적으로는 온전한 자 같았지만, 아직 마음에 있는 근본의 죄성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연단해 그것을 발견하고 버리게 하시므로 온전한 축복을 주실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행함으로 범죄하는 육체의 일은 더 중한 죄가 됩니다. 아무리 “주여, 믿습니다.” 말해도 하나님 뜻대로 행치 않고 육체의 일을 행하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지요(갈 5:19~21). 그러니 육체의 일을 신속히 벗어내고 육신의 일까지 온전히 벗어버려 죄와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범죄한 것이 크든 작든 결코 숨길 수 없으며 반드시 그 대가가 따르는 것입니다(딤전 5:24~25).
어떤 사람은 죄악을 온전히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켜 행해야 한다고 말하면 “어떻게 그 많은 계명을 다 지킬 수 있는가? 그렇게 살려면 얼마나 힘들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죄악 가운데 사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 쫓아다니는 동안 얼마나 불안하고 곤고했겠습니까? 그는 끊임없이 미움과 시기가 끓어오르는 악한 마음으로 인해 악신까지 들려 괴로움을 당해야 했습니다. 또한 자기의 왕위와 영화를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까지 거역하며 계속 범죄해 나가므로 결국 이방 민족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비참한 죽음을 맞았지요.
하지만 다윗은 오랫동안 사울에게 생명을 위협받으면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하며 감동적인 고백을 올립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하며 하나님만 의뢰해 평강을 누리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악한 사람이 아무리 괴롭히고 힘들게 해도 악을 행치 않고 오직 진리 가운데 행하니, 마치 푸른 초장과 물가에 뛰노는 양 떼와 같이 항상 평강과 기쁨이 샘솟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죄인의 길에 서지 않았던 다윗이기에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복된 자리에 섰을 뿐 아니라 그 후손들까지도 다윗의 이름으로 복을 받아 하나님 앞에 은총을 입게 되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런 참된 복을 누리는 다윗이 되게 하시려고 오랫동안 그를 연단하셨고, 결국 깨끗하고 큰 그릇의 왕이 되어 후세에까지 그를 능가하는 왕이 없었으며, 하늘의 서열도 높게 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키고 범죄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책망할 것이 없기에 하나님 앞에 담대해 항상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능히 피할 길을 주시지요. 그러나 범죄하는 사람은 기쁨과 평강이 없고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 가운데 시험 환난을 겪을 때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결코 죄인의 길에 서면 안 되는 것입니다.


셋째,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람의 가치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 지극히 사랑받던 천사장 루시퍼가 타락하여 하나님을 대적한 것도 스스로를 높여서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는 교만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도 높아지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사단의 미혹에 넘어간 것이지요.
이처럼 사람이 교만해 범죄한 이후로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세상에서는 사람마다 스스로 높아지려 하고, 자기를 내세우며 대접받으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이 높임 받고 섬김받기 위해 다른 사람을 무시해 깎아내리거나 해를 입히는 경우도 많이 있지요.
교만하여 힘으로 상대를 누르고 괴롭히며 해를 가하는 사람을 보고 과연 다른 사람들은 뭐라 할까요? 뒤에서는 욕하며 그를 싫어하고 마음에서는 무시할 것입니다. 상대에게 힘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지만, 마음으로는 심히 미워하겠지요. 이러한 권세와 힘이 무슨 자랑이요, 존경할 모습이겠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멸시받거나 무시당한다고 느끼면 스스로 심히 고통받습니다. 그런데 이 또한 높아지고 섬김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시당해 고통스러웠으니 다른 사람은 섬길 것 같은데, 어떻게든 높아져 오히려 섬김 받으려 하며 상대를 더 괴롭히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교만하여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사람은 반드시 낮아지며, 겸손하여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뭇사람들에게 인정받아 높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말씀하셨지요(눅 14:8~11). 여기서 낮아지라는 것은 열심히 섬기며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상대가 존중받을 만한 모습이 있어서만이 아니라 부족하고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섬기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지요. 우리가 섬기는 것은 바로 내 안에 교만이 없고 겸손과 섬김이 있기 때문이지 상대가 섬길 만한 이유가 있어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섬김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인 예수님께서 본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낮고 낮은 이 땅에 종의 형상을 입고 오셔서 가난하고 병든 자, 어린아이들을 품어 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이셨지요. 우리도 주님과 같이 모든 사람을 섬기며 낮은 자가 될 때 이 땅에서도 뭇사람들에게 존중받으며 천국에서도 존귀한 자라 인정받으니, 이것이 진정 복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복 있고 큰 자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행악자들이 비록 번성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세월이 지나고 보면 마치 마른 풀과 같이 쇠하며 그들의 영화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시 37:1~2, 10). 혹여 이 땅에서 그들이 죗값을 다 치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더욱 무서운 것은 그 생명이 다한 후에 영원한 심판의 불 속에서 고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결코 눈앞의 이익을 위해 악인의 꾀를 좇거나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를 높여야 다른 사람이 자신을 무시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면 진리의 말씀대로 더 낮아지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여 선을 행하고 진리를 힘써 지키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키시고 축복하셔서 가정, 일터 사업터에 축복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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