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예배

제목 이단이란 (1)   [벧후 2:1-3]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4.03.10
오늘은 성경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단의 정의와 특징을 알아보겠습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이단이란, ‘자기가 믿는 이 외의 도’ 또는 ‘옳지 않은 도’라고 정의합니다. 즉 자신이 믿고 있는 도를 옳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 외 옳지 않다고 여기는 다른 종파는 모두 이단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참되신 분은 하나님 한 분이니 이단에 대한 올바른 정의는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1. 성경에서 말하는 이단의 정의와 특징

성경에는 이단이라는 단어가 총 다섯 번 나오는데, 그중 베드로후서 2장 1절에 그 정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즉 이단이란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자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들을 사신 주’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께 속해 그분 뜻대로 살았으나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 이후 죄인이 되어 원수 마귀 사단에 속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심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그 피 값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죄로 인해 원수 마귀에게 속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죄를 용서받아 생명을 얻고 다시 하나님께 속하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십자가에서 피 값을 주고 샀다고 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자기들을 사신 주’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써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이전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며(마 1:21),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뒤에야 비로소 그리스도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구세주, 즉 ‘우리를 사신 주’가 되셨지요. 따라서 구약 성경이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사신 주’가 되시기 전에는 이를 부인하는 이단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핍박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뿐 아니라 제사장과 대제사장, 어느 사람도 예수님을 칭해 이단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써 그리스도로서 사역을 완성하신 뒤에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러한 이단을 경계할 것을 알려 주셨지요.
또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이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인다’고 했는데, 여기서 ‘거짓’이란 흔히 상대를 속이기 위해 하는 거짓된 말이나 행함이 아니라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일서 2장 22~23절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했지요.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교묘히 왜곡해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람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를 부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않는 것은 그분을 우리의 구세주로 이 땅에 보내 주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면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에 살금살금 들어와 교묘하게 속임으로 미혹해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잠들어 있을 때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들이 살그머니 다가와서 미혹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항상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 2~3절에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했습니다. 곧 이단에 속한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들이 서로 호색을 좇음으로 인해 진리의 도가 훼방 받고, 또 그들은 탐심으로 인해 지은 말을 가지고 그들을 따르는 자들로 이득을 삼지요. 방탕한 삶을 즐기며 탐욕에 빠져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속이고 착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생활을 보면 대부분 탐심 가운데 기업을 만들어 확장해 가며 돈벌이에 몰두하는 것을 봅니다. 심지어 자신이 구세주인 것처럼 행세하며, 자신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며 미혹하기도 하지요.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정체를 드러내 진리의 도를 훼방하며,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로부터 재물을 끌어들이는 등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 불법을 행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2. 이단의 정의를 올바로 깨달아 판단 정죄하지 말아야

어떤 이들은 성령의 역사가 활발한 교회들을 향해 이단이라 하거나 적그리스도라고 정죄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도 영적 무지함에 눈이 가려지니 오히려 하나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르짖어 기도한다고, 방언이나 환상, 예언 등의 은사가 나타나니까, 혹은 치료의 역사나 표적이 일어나니까 이단이라고 정죄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찬양할 때 박수치고 예배 때 특송으로 무용한다고 이단이라 하는 경우도 있었지요. 그러나 성경에는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라’ 했고(시 150:4), 병 고치는 은사, 능력, 예언, 방언, 방언 통역 등 성령의 은사가 얼마나 신앙생활에 유익한지 말씀합니다(고전 12장). 따라서 자신이 체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이러한 은사가 나타나는 사람과 교회를 비방하고 판단하며 이단으로 정죄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고 성경이 절대적인 하나님 말씀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함부로 이단이라고 한다면, 이는 성령을 정죄하며 대적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단의 정의를 올바로 깨달은 사람은 쉽게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5장을 보면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를 많이 나타내자,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를 시기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위협하며 옥에 가두고 죽이려 했지요.
이때 가말리엘은 공회 중에 일어나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담대히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그의 말대로, 만일 하나님 역사가 아니라면 굳이 사람이 나서서 무너뜨리지 않아도 결국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역사인데도 시기하는 마음으로 반대하고 훼방한다면 상대를 무너뜨리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어 징계와 심판을 자초하게 되지요. 물론 진리의 영이 아닌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이단’이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엄히 경계하고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3. 이단 사상에 물든 사람들에게 미혹 받지 않으려면

우리가 이단 사상에 물든 사람들에게 미혹 받지 않으려면 성경을 근거로 이단과 거짓 선지자, 거짓 선생, 적그리스도를 잘 분별하고 있어야 하며, 그들을 만날 때 하나님 말씀으로 깨우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과 변론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디도서 3장 10절에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한 것처럼 진리의 말씀으로 한두 번 훈계하면 됩니다. 한두 번 말해서 상대가 듣지 않을 때는 계속 변론해도 소용없지요. 상대가 듣지 않을 때는 오히려 멀리하는 것이 옳은 방법입니다.
더구나 믿음이 연약하고 진리 안에 굳게 서지 못한 사람은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그들은 진리를 교묘히 변질시켜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기에 어설프게 아는 말씀으로 그들과 변론하다가 도리어 그들의 사상에 물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분별력이 흐린 사람이 잘못된 사상에 한 번 물들면 그만큼 깨달아 돌이키기가 힘들기 때문에 변론을 피하고 멀리하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한이서 1장 10절에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말씀합니다.
또 이단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단번에 꺾어 버리겠다고 하는 교만한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진리 안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담대히 증거하되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해야 하지요. 자기 경험에 의지하여 그들을 물리치려고 하지 말고 오직 성령님을 의지하여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던 중 큰 광풍을 만나 배에 탄 사람들이 다 죽게 되었을 때 자신의 신앙을 담대하게 고백함으로 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 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했지요(행 27:23~25).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사도 바울과 같은 신앙 고백입니다. “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고백하며 우리의 소속을 분명히 할 때 이단의 가면을 쓰고 다가왔던 원수 마귀 사단은 도망가지요.
원수 마귀 사단은 지금도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며 믿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진리에 굳건히 서 있지 못하고 두 마음을 품는다거나 의심하는 사람에게 접근해 하나님을 떠나도록 미혹하지요. 따라서 진리인 하나님 말씀에 굳게 서서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단이 아닌데도 섣불리 이단이라고 정죄하여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성령 훼방이며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를 짓는 것이니 진리 말씀에 따라 영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몰라서 훼방하는 경우에는 돌이켜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으나 알면서도 시기 질투하며 악 속에서 훼방한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경 말씀에 비추어 참과 거짓을 바로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단의 정의는 오직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중생, 부활, 재림, 심판, 천국 등 성경의 핵심적인 교리가 같다면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되지요. 특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나 목회자를 함부로 정죄하면 성령 훼방이나 성령 거역, 성령 모독이 되어 영원히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 참과 거짓을 분별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천국 새 예루살렘까지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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