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예배

제목 네가 내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   [눅 22:39-44]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4.03.24
종려주일을 맞아 과연 예수님께서 마신 고난의 잔은 어떠한 것이었는지, 그 잔을 마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 주십니다(마 20:18~19).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가올 고난에 대해 말씀하실 때 다가올 주의 나라에서 ‘누가 큰 자가 될 것인가’에만 마음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예수님의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누리실 영광’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아들들을 데리고 와서 주의 나라에서 주의 좌우편에 앉을 수 있기를 구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철없는 제자들에게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묻습니다.
바로 주의 나라는 이 땅의 나라가 아니라 천국이기에 그곳에서 영화로운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고난의 잔을 함께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은 이 질문의 의미를 깊이 깨닫지 못해 다만 그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과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기에 “주의 잔을 마실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의 잔을 함께 마실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자신을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의 고난의 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놀라운 권능을 베푸시며 아무 소망이 없는 사람들의 삶 가운데 밝은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질병과 연약함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지요. 이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붙좇았고 그중에서 뽑힌 열두 명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더욱 깊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셔야 할 때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때가 이르자 감람산으로 올라가서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며(눅 22:42) 한밤 간절하게 기도하셨지요. 이 기도는 죄 없으신 예수님 자신의 피 값으로 모든 영혼을 구원받게 하시려는 생명을 건 절규였고, 우리를 위해 참혹한 고난을 온전히 감당하시고자 능력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한밤 동안 얼마나 힘쓰고 애써서 간절히 기도하셨던지 미세한 혈관들이 터져 그 피가 몸 밖으로 배어 나오니 땀과 함께 핏방울이 땅에 떨어질 정도였습니다.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이끌고 온 유대인들에게 잡혀 밤새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심문을 당하시고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로마 군병들이 씌운 가시 면류관과 잔인한 채찍질로 인해 온몸에 피가 낭자했지요. 가시가 유달리 길고 단단한 이스라엘의 가시나무로 예수님의 머리보다 약간 작게 만든 관을 꽉 눌러 씌움으로 그 단단한 가시가 이마와 머리를 파고들었습니다. 군병들이 휘두른 채찍이 온몸을 휘감아 낚아채면 그 끝에 달린 뼛조각으로 파고든 살점이 떨어져 나가면서 찢기니 심할 때는 뼈가 드러날 정도였습니다.
이때 머리와 얼굴을 비롯해 온몸이 피로 물든 예수님께서는 이제 사람의 키보다 더 큰 십자가를 지시고 처형 장소인 골고다 언덕을 향해 800미터가 넘는 길을 걸어가셔야 했습니다. 쓰러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힘겨운 걸음을 옮기는 예수님 곁에는 부축해 줄 제자들조차 남아 있지 않았지요. 무서워서 숨어 버린 것입니다. 이 외로운 고난의 길에 은혜 입은 여인들만이 뒤따르며 통곡합니다.
마침내 언덕 위에 도착하자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손과 발에 못 박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한 번 내리칠 때마다 연약한 살 속으로 못이 박혀 들면서 피가 흐르지만, 급소를 피해서 박기에 고통만 극심할 뿐 금방 죽지는 않습니다. 그 뒤 십자가를 세우니 못 박힌 손과 발에 몸 전체의 무게가 실려 그 찢기는 고통은 가중됩니다. 팔을 벌린 채 매달리면 심장이 압박되어 호흡이 곤란해져 몸을 뒤틀면 못 박힌 손에는 더 큰 고통이 가해지지요.
이렇게 못 박힌 채로 예수님께서는 여섯 시간 동안을 한낮 사막의 강렬한 햇볕 아래 매달려 계셨습니다. 죽기까지 계속해서 피를 쏟아야 하니 그 타는 목마름은 말로 다할 수 없으며 사막지대의 독한 벌레들이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들어도 못 박힌 몸으로는 쫓을 수가 없었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겨 나눠 가졌고, 벌거벗은 몸으로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군중들은 저주하며 희롱하고 손가락질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했지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내려올 능력이 없으셨던 것은 아니었지만(마 26:53)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만 온 인류를 구원하실 줄을 아셨기에 결코 내려오실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죽기까지 사랑의 간구만을 올리셨지요. 이렇게 많은 고통을 당하며 피와 물을 모두 흘리신 후 마침내 영혼이 떠나심으로 그 고난을 마치셨습니다.


2. 고난의 잔을 마시는 예수님의 마음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며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의 마음은 탄식이나 원망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셨습니다. 그 고난을 통해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의 섭리가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 태초에 예수님과 성령님과 함께 인간 경작의 계획을 서로 나누셨습니다. 그래서 인간 경작이 시작되고 때가 되면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서 십자가에 달리셔야 하는 것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을까요?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말씀한 대로 아담의 후손으로 범죄한 인류는 그 죄의 값으로 사망을 당해 지옥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한 대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범죄한 우리를 대신해 사망을 감당해 주심으로 우리는 이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육체로 행한 죄를 사하시기 위해 손과 발에 못 박히셔야 했고, 우리의 생각으로 범죄한 것을 사하시기 위해 가시관을 쓰셔야 했지요. 우리의 질병과 연약함을 감당하시기 위해 채찍에 맞으셔야 했고, 우리의 저주를 대속하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아시므로 피조물의 낮은 형상으로 태어나는 것도 순종하셨으며 때가 되어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를 이뤄드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요 12:27) 하심은 십자가의 고난은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이를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기에 기꺼이 그 고통을 감당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모든 고난을 감내하셨음을 알 수 있도록 고백하신 것입니다. 또 고난받는 모습을 보시며 마음 아파하실 아버지를 생각하심으로 슬프고 민망한 마음이 드시니 감당하겠다고 고백하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아라!” 소리치는 군중들과 채찍으로 때리고 손발에 못을 박는 군병들을 보실 때도 오직 사랑과 긍휼만이 가득하셨습니다. 타락하고 범죄하며 악으로 나오는 무리라 할지라도 아버지께서 창조한 영혼들이며 구원의 길로 나올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았기에 그 사랑이 변함없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면서, 또 십자가에 달려 군중들을 바라보시면서 예수님의 마음에는 참으로 많은 일이 스쳐 갑니다.
처음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신 이후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함께 천국에서 지내셨던 때, 한없는 사랑과 기쁨을 서로 나누며 또 앞으로 참된 자녀들을 얻을 계획 속에 즐거워하셨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실 때,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누었던 사랑의 말씀들과 다시 천국에서 만날 날을 기약했던 일들이 기억나지요.
또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나서 자라셨던 기억과 마지막 3년 동안 사랑을 나누셨던 제자들, 예수님을 섬겼던 선한 여인들을 떠올리십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하고,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에도 고난 겪을 것을 생각하면 심히 애처롭지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실 것을 생각하며 위로받으시지요. 또 그들을 통해 무수한 영혼이 구원에 이르고 그중에서도 많은 영혼이 성결되어 하나님의 참 자녀로 나올 것을 생각하며 더욱 십자가의 고난을 이기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닌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신성과 권능을 가지셨지만 동시에 몸이 있는 사람으로서 피곤하고 배고픔도 느끼셨지요. 인성도 가지셨기에 슬픔과 아픔도 느끼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유익을 좇아 배신해 떠날 때 예수님의 마음은 심히도 슬프고 상하셨으며,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당하실 때도 덜 아픈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잠시라도 죄인들을 대신해 죄인의 몸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십자가의 외로움은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지요. 그러나 오직 아버지 하나님과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이 모든 고통을 감당해 주신 것입니다.


3. 주님의 잔을 함께 마실 수 있어야

제자들은 예수님께 고난의 잔을 능히 마실 수 있다고 고백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누가 크냐’ 다투었던 철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처절하게 기도하실 때는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곁에서 잠드는 연약한 모습이었지요. 같이 죽기까지 하겠다고 말했으면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두려워 숨었으며 주를 아는지 물었을 때는 세 번이나 부인하던 부끄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 후 성령 받고 변화된 제자들은 능히 주님의 잔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롬 8:17~18).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거나 칼에 베이고 창이나 화살에 찔리며 톱으로 켜고 펄펄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지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세상에 더러운 것과 찌끼같이 멸시받을지라도 주의 이름 까닭에 즐거워했지요. 관제와 같이 형체도 없이 희생하고 헌신하게 될지라도 하나님 뜻을 이룰 수만 있다면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어떤 핍박과 죽음보다 가치 있고 복된 하늘나라에 상급과 영광이 있기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넉넉히 주어진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우리도 능히 이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잔을 마실 수 있는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누구보다도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가? 부귀영화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굳게 지켜 행할 수 있는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내 것을 다 내어주고 생명이라도 줄 수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사람 앞에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가는가? 이러한 질문에 “그러합니다. 주의 잔을 마시는 삶을 살아가나이다.” 답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지극히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내실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며 마음의 소원마다 응답받게 하시며 여러분을 통해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항상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여 감사함으로 능히 주님의 잔을 마시며 또한 주님의 영광에도 동참할 수 있는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글 : 부활의 소망
이전글 : 이단이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