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예배

제목 부활의 소망   [요 11:25-26]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4.03.31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셨다가 사망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심을 기념하는 부활절을 맞아 부활의 영적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주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무덤에 장사 되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건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의 기록은 일점일획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구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들이 신약 시대에 대부분 이루어졌고 기록된 역사의 문헌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성경의 예언은 주님의 재림, 7년 대환난, 천년왕국, 백보좌대심판 등인데 이러한 것도 반드시 이루어질 일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구약 성경에 이미 예언되었고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기간 친히 제자들에게 때가 되면 자신이 죽을 것이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무섭고 겁이 나서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 담대하던 베드로도 목숨을 잃을지 두려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였지요. 심지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도 제자들은 믿지 못해 여전히 두려워하여 문을 굳게 닫고 로마 병사들을 피해 은밀히 모여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자들이 어느 날 돌변해 죽음도 불사하고 박해하는 권세자들 앞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똑똑히 보았고 부활체를 입으신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제자들은 죽음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죽어도 다시 산다는 부활의 확신이 생겼기에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면서도, 사자 밥이 되면서도, 칼에 목 베임을 당하면서도 조금도 죽음이 두렵지 않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부활은 제자들을 통해 확증된 실제 사건이요 역사적으로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셨고 많은 이가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행 1:10~11).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천국 처소를 예비하시며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를 올리고 계십니다. 때가 이르면 천군 천사와 함께 영광의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신 그대로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처럼 완전히 죽었다가 다시 완전한 생명으로 살아나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참된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부활의 첫 열매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지 않고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2. 영적 부활과 육적 부활

인류의 시조 아담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과를 먹으므로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한 대로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후손인 우리 사람도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났지요. 그런데 생명의 씨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을 지으실 때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는데, 이 생기가 흔적과 같이 남아 있는 것이 생명의 씨입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성령이 우리 마음에 임해 흔적만 남아 죽은 것 같은 생명의 씨를 살려주십니다. 이때 죽었던 영이 살아나지요. 영이 살아나 활동을 시작한 생명의 씨는 싹을 틔우고 자라서 진리를 공급받아 꽃을 피우고 영의 열매를 맺습니다.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서 날마다 영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죽었던 영이 완전히 살아서 영원히 죽지 않게 된다는 것이니 바로 이것이 ‘영적 부활’입니다.
그러면 ‘육적 부활’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은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지만, 구원받은 사람의 몸은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공중에서 주님과 함께 내려오는 영혼과 결합해 영혼육의 부활체를 이룹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몸이 죽어 썩어지는 것 같지만 다시 신령한 몸으로 회복되는 것을 ‘육적 부활’이라고 합니다.
성령으로 영이 살아난 영적 부활을 이루고, 죽었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거나 또는 순식간에 신령한 몸을 입어 육적 부활을 이룰 때에야 비로소 완전한 부활을 이룹니다. 이후 부활체를 입고 7년 공중 혼인 잔치와 천년왕국을 주님과 함께 지내게 되지요. 천년왕국이 지난 이후 백보좌대심판에서 각자의 믿음과 성결과 충성에 따른 영광과 상급을 덧입으면 그때는 온전한 영체가 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갑니다.


3. 부활을 소망케 하는 자연 현상들

우리가 영의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면 부활을 소망할 수 있는 현상들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씨를 뿌린 후 싹이 나는 것을 보고 부활을 느낄 수 있습니다. 씨앗을 흙에 심지 않고 상온에 그대로 두면 자라지도 않고 아무런 변화도 없으니, 생명 활동이 멈춰서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죽은 듯 보였던 씨앗을 흙에 심고 기다리면 싹이 나고 자라서 새잎을 내고 꽃을 피웠다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씨를 심으면 흙 속에서 썩어져 없어질 것 같은데, 오히려 싹을 틔워 많은 열매를 맺으니 참으로 신기하고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으며 우리의 부활도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둘째로, 식물들과 곤충들의 생태를 통해서도 부활의 섭리를 발견하고 믿을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이 오면 나무들은 잎들을 모두 떨구고 앙상하게 죽은 듯 보입니다. 하지만 따뜻한 봄이 되면 파릇파릇 새순이 돋고 여름에 무성한 이파리들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지요. 추운 겨울에 자취를 감추는 곤충들은 물속이나 바위 밑 혹은 땅이나 나무껍질 등에 알을 낳아 둡니다. 따뜻한 봄이 되면 알에서 잉태된 생명이 부화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꿈틀대던 굼벵이는 하늘을 나는 매미가 되고, 징그러운 애벌레는 번데기를 거쳐 날아다니는 예쁜 나비가 되며, 물속의 학배기는 모기를 잡아먹는 잠자리가 됩니다.
이처럼 지금은 우리의 몸이 세월에 따라 노화되고 썩어질 육이지만,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영원히 썩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고 모든 육의 옷을 벗은 후 세마포 흰옷을 걸치고 나비와 잠자리처럼 가볍게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을 마음에 그려보시면 좋겠습니다.


4. 날마다 죽어지고 썩어져 풍성한 열매 맺으며 부활의 소망 더해지길

요한복음 12장 24절에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씨앗의 형체 안에 생명의 씨가 있어서 겉을 둘러싼 형체가 죽어질 때에 안에 있는 생명의 씨가 부활해 나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경작의 법칙을 들어 교훈하신 말씀으로 평범한 자연의 섭리 속에서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진리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자연의 법칙대로 예수님께서는 인생들을 위해 친히 한 알의 씨앗으로 자신을 심어 죽으셨기에 사람들이 주를 믿어 구원에 이르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썩을 것으로 심으면 거둘 때는 썩지 아니할 것으로 거두게 되는데, 이 이치를 영적으로 깨우쳐 순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했습니다.
먼저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했는데, 몸이 죽어 썩어지는 것 같으나 다시 신령한 몸으로 회복해 부활이 이뤄지듯이 썩을 것을 심을 때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게 됩니다. ‘썩을 것’이란, 무엇보다 육신의 생각을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심고 영의 생각으로 거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6~7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사망이라는 것은 하나님 법을 좇지 않기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사망의 길로 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좆는 사람은 사단의 역사를 받아 마음에 있는 악이 나오게 되고 자기 생각에 맞춰 판단 정죄하고 시기 질투하니 악의 행함이 나옵니다.
그러니 썩어질 육신의 생각을 심어 반대로 썩지 아니할 영의 생각을 거두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했듯이 내 안에 있는 육신의 생각을 매일, 매 순간 깨뜨려야 합니다. 그럴 때 비진리의 감정이 벗어지고 선하고 의로운 영의 생각이 남습니다. 이처럼 썩어질 육신의 생각을 버리는 만큼 결국 썩지 아니할 신령한 것들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43절에는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했는데, ‘욕된 것’이란 세상을 살아가면서 옳지 못한 모든 부분적인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성장하며 보고 듣고 배우므로 지식을 받아들이는데, 대부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옳지 않습니다. 가령, 세상에서는 인정받고 높임 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 앞에 자기를 드러내지만, 하나님 말씀은 낮아지고 섬기라 하지요. 이렇게 진리와 다른 세상 것들을 버리는 것이 욕된 것을 심어 썩어지는 것입니다. 그만큼 내가 죽어지고 진리로 변화되는 것이지요. 그럴 때 영혼이 잘 되며,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복을 받으니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또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했습니다. 여기서 ‘약한 것’이란 사람의 마음을 말합니다. 사람이 진리로 변화되기 전에는 악한 감정이 일어나고 혈기가 나며 폭력 등 갖가지 비진리가 이 마음에서 나옵니다. 이렇게 악을 발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심히 약합니다. 원수 마귀의 밥이요, 먹잇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 진리의 마음은 강합니다. 바로 원수 마귀가 두려워하며 크고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리며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약한 것, 육의 속성, 비진리의 마음을 심어 썩어져서 이해하고 용서하며 섬기는 온유한 심령, 영의 마음으로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내 안에 미움이라는 육이 버려졌을 때 사랑이라는 영이 채워지고, 도적질하던 사람이 도적질하지 않는 사람이 될 때 진리의 사람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썩어질 것과 욕된 것과 약한 것을 심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영광스러운 것으로, 강한 것으로 더욱 새로워지면 고린도전서 15장 44절 말씀처럼 신령한 몸으로 거듭납니다. 진리의 사람이 된 만큼 부활의 확신이 더 커지며 그만큼 신령한 것을 더 사모하고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마다 생명을 얻으며 죽어도 다시 살아나 영원히 살게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확신과 소망을 가진 성도라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버리기 위해 힘쓰는 것이 마땅합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었다가도 어둠 가운데 살면 그 믿음과 소망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명심해 항상 빛 가운데 거하므로 부활의 확신이 날마다 더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넘치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더욱 의 가운데 행해 나감으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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