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대예배

제목 죽어지는 밀알이 되자 (1)   [요 12:24]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4.04.07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에 대하여 어떻게 죽어질 때 우리가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연 속에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놀라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롬 1:20). 마음이 조금만 선해도 자연의 섭리를 보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하심을 느끼며 그 은혜를 깨달을 수가 있지요. 그러니 훗날 심판 때 “하나님을 몰라서 믿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경작의 법칙을 비유로 들어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요 12:24). 여기에는 영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비유하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온전히 죽으심으로 많은 열매를 맺으신다는 뜻이 담겨 있지요. 또 우리도 예수님처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어지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 한 알의 밀이 되어 온전히 죽으신 예수님

하나의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적당한 수분과 알맞은 온도, 공기가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씨앗 안에서는 변화가 일어나는데, 싹이 나고 뿌리가 나는 생명 활동이 시작되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해 씨앗이 스스로 죽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죽어짐으로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고 결국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신성을 느낄 수 있고, 이 원리는 우리의 신앙과도 연결이 됩니다.
만일 씨앗이 스스로 죽지 않으면 식물로 자라날 수 없고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설령 싹을 틔웠다 해도 씨앗이 완전히 죽어지지 않으면 양분이 부족해 잘 자라지 못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이 자연의 법칙은 영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한 알의 밀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과연 어떻게 죽어지셨을까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사 53:4~10)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성취되어 수많은 영혼을 죄인에서 의인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기셨습니다.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온전히 죽으셔야 했습니다. 피조물들의 손에 의해 수욕을 당하시고 많은 고초를 받으셨지만, 이 모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철저히 죽어지셨지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거둔다는 확신, 바로 예수님 자신의 죽으심으로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게 될 것을 믿으셨기에 완전한 죽음의 자리에도 기쁨으로 이르셨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한 대로 그 앞에 있는 즐거움, 곧 영원히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던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랑으로 인한 즐거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림으로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다는 즐거움, 또 예수님 자신도 죽으심으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위하여 죽어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 선지자나 사도 바울과 같이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도 이러한 하늘의 소망이 있었기에 이 땅의 잠시 잠깐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철저히 죽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당하는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이라 해도 힘들어하지 않는 믿음과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 믿음의 형제들을 위해서라면 철저하게 죽어지고 비록 부끄러움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죽어져야 할까요?


2. 우리가 죽어져야 할 분야

1) ‘자기 자아’라고 하는 것이 죽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자아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마음과 다르며 비진리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를 통해 배우고 학교와 친구, 이웃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보고 듣고 경험하며 지식과 교양을 쌓습니다. 이렇게 쌓인 지식과 교양이 자아를 형성하지요. 각기 다른 부모와 환경, 다른 가르침 속에서 자아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그 생각과 옳다 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자아를 형성한 지식은 진리와 다른 것이 많으며, 교양도 나라와 민족에 따라 다르니 열 사람이 모이면 열 사람의 생각이 다르고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또 나누입니다. 그러니 자기의 옳다 하는 생각, 자기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다 맞다 고집하면 안 됩니다. 내 편에서는 교양이라고 해도 상대편에서는 교양이 아닐 수 있고 내가 볼 때는 이해되지 않지만, 상대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배운 지식과 우리의 생각은 참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보면 틀린 것, 잘못된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불변한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자아가 죽어질 수 있을까요?

자아가 죽어지려면 우리 안에 있는 죄를 힘써 싸워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다 하나님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 듣는 진리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두드립니다. 우리의 마음 문을 여는 만큼 그 진리가 자리 잡게 되는데 그때부터 죄와의 싸움은 시작되지요. 그동안 자아를 형성한 것과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부딪치기 때문입니다.
이때 믿음이 있으면 내 생각과 이론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음을 믿기에 자기를 부인할 수 있습니다. 내 감정과 생각이 아닌 진리대로 순종해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가 죽어지는 것이지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생각과 이론, 행함이 발견될 때는 그 즉시 자기가 틀렸음을 인정하고 옳지 않은 그것을 벗어내고 진리로 변화시키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했습니다. 이는 죄와 싸울 때는 힘써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마음의 비진리를 벗어 버리는 죄와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알려줍니다.
마음의 비진리는 한, 두 번 회개하고 눈물 콧물 흘리며 회개했다고 해서 벗어지는 것이 아니라 땀 흘리며 부르짖어 기도해야 벗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죄와 싸워나갈 때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보시고 은혜를 주실 뿐 아니라 불세례를 내려 주셔서 죄성을 태워 주시는 등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도우심 속에 내 안에 있던 죄의 속성들을 버리고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이지요. 몸과 결합한 죄성이 태워지는 만큼 육신의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어갑니다. 로마서 8장 13절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한 것이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있어서 ‘자아’가 죽어지는 것입니다.

자아, 자기가 죽어질 때도 단계가 있습니다.
이제 주님을 영접한 믿음의 1단계에서는 말씀을 들으면서 의심되고 믿어지지 않는 하나님 말씀과 기사와 표적 등에 대해 의심을 물리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몸의 행실, 곧 육체의 일들이 무엇인지 찾고 깨달아 버려야 하지요. 믿음의 3단계에서는 육신의 일이 무엇인지 찾고 힘써 버려 나가는 만큼 자아가 죽어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갑니다.
그런데 믿음의 반석 이상에 서면 대부분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때문에 자기 안에 아직 살아있는 자아를 깨닫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진리로 새롭게 만들어 놓은 자기 의와 틀이 바로 그것이지요.
밀알이 죽어질 때 그 속의 내용물이 양분으로 공급될 뿐 아니라 껍질도 썩어 없어져 어떤 모양도 남지 않듯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내용물이 진리로 바뀔 뿐 아니라 자아라는 틀, 곧 자기 의와 선의 틀 자체도 없어져야 합니다. 그럴 때 구습을 버린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고후 5:17).
자기 의와 틀은 세상으로부터 입력돼 나를 만든 구습이기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 말씀을 들음으로 나를 진리로 바꿔가야 합니다.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이 다 옳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도 있고 그른 것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요. 하나님 말씀만이 참이기에 내 경험도, 나를 만든 모든 자아와 틀도 진리로 바꿔야 합니다. 죄가 아닌 육체의 결여라 할지라도 버려 나간다면 온전히 자기를 죽이고 주님으로만 채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속의 악과 비진리를 발견하고 진리로 변화시키기 위한 죄와의 싸움이 시작될 때 크게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 유형은 믿음이 있기에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진리로 채워갑니다. 순종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이유와 변명으로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을 기준으로 해 생각하고 말하며 행하니 신속히 변화되어 갑니다.
두 번째 유형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영적인 싸움에서 인내하지 못하고 진리를 포기하거나 외면합니다. 자신이 죽어지지 않기에 하나님 말씀이 자기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으므로 결국 자기 유익을 좇아 진리를 떠나기도 하지요. 어떤 경우는 하나님 역사를 보았기에 떠나지는 않는다 해도 죽어지지는 않습니다. 말씀을 듣고 알뿐 순종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구습대로 살고 세상을 짝하며 살아가니 말씀을 듣는 것마다 찔림이 되고 행치는 못하니 기쁨도, 충만함도 없지요. 죄와 싸우지 않으며 죽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며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나갈 때 날마다 자기가 죽어지며 그 안에 진리만 채워집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사랑과 칭찬을 받으며, 이처럼 자기가 죽어진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며 많은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 여러분이 천국 소망이 있고 더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하기를 원한다면 자기를 형성한 육신과 자기 의와 틀을 죽여 갈 것입니다. 그럴 때 반드시 영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으니 죽어지기를 주저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썩어질 육은 온전히 죽이고 선한 영의 마음으로 다시 살아나 아름다운 영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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