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저녁 예배

제목 욥기 강해 (37)   [욥 15:17-25]
설교자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3.02.26
지난 시간에 이어 엘리바스의 두 번째 변론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상담할 때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선진들의 말을 인용하여 욥을 깨우쳐 주려는 엘리바스

“내가 네게 보이리니 나를 들으라 내가 본 것을 설명하리라 이는 곧 지혜로운 자들이 그 열조에게서 받아 숨기지 아니하고 전하여 온 것이라 이 땅은 그들에게만 주셨으므로 외인은 그들 중에 왕래하지 못하였었느니라”(욥 15:17-19)
엘리바스는 그동안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 욥을 설득해 보았지만 욥이 귀담아 듣지 않자 이제는 선진들의 말을 인용하겠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께서 선민에게 정하여 주신 땅이므로 이방인은 그들 중에 왕래하지 못하게 가르쳤습니다(요엘 3:17). 또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신 뒤,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이방인들을 다 진멸하라 명하셨습니다. 만일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땅에 거하던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시와 올무가 될 것이라 말씀하셨지요(신 7:16).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민족과 함께 거한다면 그들이 섬기는 우상이나 그들의 잘못된 관습과 악행에 물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진멸하라 명하신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쉽게 받으며 그로 인해 멸망으로 가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께서 미연에 막으시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 선지자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에서 이방 나라들과 싸워 대승하였습니다. 이 일을 보고 두려워하던 모압의 왕 발락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발람이라는 사람을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주하지 못하게 하시며 반대로 축복의 말씀만 주셨지요.
이에 발람은 꾀를 내어 이스라엘에 저주가 임할 일을 행하게 합니다. 바로 모압인들의 모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대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며 우상 앞에 절하였고, 이로 인해 염병이 임해서 2만 4천 명이나 죽었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큰 권능을 체험했음에도 막상 이방인들과 만나 그들의 문화를 접하니 이내 변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 민족과의 통혼을 엄격히 금하신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여 우상을 섬기지 않고 말씀 안에 살 때는 형통한 길로 인도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이방인과 연합하며 우상을 섬길 때에는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고 포로로 잡혀가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요.
이방인과 연합하지 말라는 말씀은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과 짝하지 말고 진리 안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과 짝하여 비진리 속에 악을 행하며 살아갈 때는 사단의 역사를 받고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엘리바스가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비유로 드는 것은 욥을 깨우쳐 주기 위함입니다. 욥이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으니 시험 환란이 온 것이라고 혹독하게 질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욥을 악인이요 강포자라 판단하는 엘리바스

“그 말에 이르기를 악인은 그 일평생에 고통을 당하며 강포자의 햇수는 작정되었으므로”(욥 15:20)
강포자란 ‘우악스럽고 사나운 자’를 말합니다. 엘리바스는 선민 이스라엘과 함께할 수 없는 이방인들처럼, 욥도 그러한 악인이요 강포자에 속한다고 비유하여 말한 것이지요. 즉 욥은 악인이요 강포자 중 한 명이기에 하나님께서 욥을 어떻게 처리하실 것인지 이미 작정이 다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일평생에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너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잠 24:19-20) 말씀했지요. 반드시 선악 간에 심판이 있고, 악인은 잠시 형통해 보여도 결국은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므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 귀에는 놀라운 소리가 들리고 그 형통할 때에 멸망시키는 자가 그에게 임하리니 그가 어두운 데서 나오기를 바라지 못하고 칼날의 기다림이 되느니라”(욥 15:21-22)
그동안 욥의 귀에는 재산이 다 무너지는 소리, 자녀들이 죽었다는 소리, 사육하던 짐승들이 죽어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내가 자기를 버리고 업신여기는 말을 퍼부었고, 일가친척도 멀리했습니다. 더구나 몸에는 악창이 나서 신음소리가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흘러나왔고 탄식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요. 욥은 계속하여 놀라운 소리만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는 욥이 얼마나 형통함 속에 살았습니까? 그러나 시험 환란이 닥치니 형통함은 일시에 무너져 내리고 욥은 죽음 직전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엘리바스가 보기에는 이처럼 엄청난 시험 환란 속에 빠진 욥은 다시 나올 길이 없습니다.
여기서 칼날의 기다림이 되었다는 것은, 욥이 지금 많은 사람들로부터 멸시 천대와 조롱을 받으며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당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칼날의 기다림이 되고 있는 상태이기에 어두운 곳에서 나오기를 바랄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욥아! 너는 악인이요 강포자이기에 형통한 것 같았으나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저주를 받았고, 이제는 칼날의 기다림이 되었으니 시험 환란에서 구원받을 것을 바라지도 말아라. 악인이나 강포자는 멸망이 작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이 너를 조롱하고 저주하고 찌르는 일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은 스스로 의인처럼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친구로부터 악인이요 강포자라고 혹독하게 매도하는 말을 들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더구나 성령 시대가 아닌 당시에, 한 사람도 아니고 세 친구가 연달아 공격을 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밖에 없지요. 그만큼 욥의 친구들의 잘못과 책임도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올바른 상담을 하려면 성령의 주관을 받아야

“그는 유리하며 식물을 구하여 이르기를 어디 있느냐 하며 흑암한 날이 가까운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환난과 고통이 그를 두렵게 하며 싸움을 준비한 왕처럼 그를 쳐서 이기리니 이는 그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며 교만하여 전능자를 배반함이니라”(욥 15:23-25)
욥은 부유한 사람이었으나 저주받아서 망해 버렸고, 결국 어둠 가운데서 나오지 못할 형편에 처했으니 이제는 떠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걸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흑암한 날이 가까운 줄을 스스로 안다”는 것은, 흑암의 권세에서 나오지 못하여 방황하다가 결국 “나는 도저히 회복할 길이 없구나. 나는 이제 끝장이구나…” 하며 스스로 앞날이 없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 얼마나 혹독하고도 무서운 저주의 말입니까? 엘리바스가 욥에 대하여 감정이 상하고 악에 받치니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욥은 환난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욥 9:34-35). 욥의 이러한 상황을 엘리바스는 “환난과 고통이 그를 두렵게 한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싸움을 준비한 왕처럼 그를 쳐서 이긴다”라고 했는데, 만일 왕이 수년 동안 철저히 싸움을 준비한다면 얼마나 수월하게 상대를 쳐서 이기겠습니까? 이는 결국 욥이 이길 수 없는 환난과 고통 속에 빠져 있음을 표현하는 말이지요.
욥의 친구들이 보기에 욥은 하나님을 대적해 왔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다툴 때 주먹이나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듯이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대적하는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욥이 교만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으며 전능자를 배반했고, 그러니 지금과 같은 환난과 고통 속에 빠지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의 말처럼,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아멘’ 하지 않고 불순종하는 것은 바로 내가 살아있고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신 분이지만 ‘자기’가 없으셨고 하나님 뜻에 온전히 순종만 하셨습니다(고후 1:19). 결국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구원의 섭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것처럼 하나님 말씀이라면 환경과 조건에 상관없이 ‘예’와 ‘아멘’으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바스가 욥에게 “네가 교만해서 하나님께 불순종했고 하나님을 배반했다”고 하는 말은 욥에 대한 판단임을 알아야 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하는 말만 가지고 욥을 책잡아서 ‘넌 악인이다, 강포자다, 교만하다.’라고 판단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욥의 중심은 그렇지 않았고, 또 하나님을 대적할 마음도 없기 때문에 욥은 친구들의 말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욥은 친구들이 욥에 대해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의 말이 자신을 이해시키지도 못했고, 또 욥의 생각과 뜻에 맞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론한 것입니다. 친구들이 너무 엉뚱한 말을 하니 욥은 결국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과 변론하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욥이 이처럼 친구들을 무시할수록 친구들은 더욱 욥을 오해하며, 판단에 판단을 더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서로 간에 감정의 벽도 점점 두꺼워져 갈 수밖에 없지요.
전도서 5:2에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의 중심을 보시므로, 내 편에서 상대의 마음을 분명히 읽지 못할 때에는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의 종이나 일꾼이 양떼와 상담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만을 보고 상대를 깨우쳐 준다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려 한다면, 상대는 더욱 마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말씀의 지식이 많고 언변이 뛰어나다 해도 그것으로 상대에게 변화의 역사를 줄 수 없습니다(고전 4:20).
상대에게 바른길을 깨우쳐 주고 회개시키려면 무엇보다도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을 받아서 상담해 주어야 합니다(고전 2:10). 우리가 마음을 진리로 일구면 각 상황에 맞는 답이 무엇인지 성령의 음성을 통해 밝히 알 수 있습니다. 상대의 마음과 생각도 성령께서 알려 주실 수 있고, 상대의 믿음의 분량에 맞춰서 답을 주는 것도 성령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마음을 진리로 일구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주관을 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음글 : 욥기 강해 (38)
이전글 : 욥기 강해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