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저녁 예배

제목 욥기 강해 (38)   [욥 15:26-35]
설교자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3.03.05
오늘은 욥을 향해 혹독히 저주하는 엘리바스의 모습에서 우리 인생들의 마음을 해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욥을 시기 질투했던 마음이 드러나는 엘리바스

“그는 목을 굳게 하고 두터운 방패로 하나님을 치려고 달려가나니…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집, 돌무더기가 될 곳에 거하였음이니라”(욥 15:26-28)
여기서 ‘목을 굳게 한다’는 것은 바로 교만한 사람의 모습을 말합니다. 또 ‘두터운 방패로 하나님을 치려고 달려간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계속 불순종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이처럼 교만하고 불순종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얼굴에 살이 찌고 허리에 기름이 엉기었다’는 것은 좋은 음식을 잘 먹어서 살이 찌고 배가 나온 모습을 묘사한 것이며, 물질적으로 부요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욥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배반한 이유는 물질의 부요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잘 섬겼을 때는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물질적으로 풍족하여 어려움이 없으면 이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배신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니 이웃나라에게 침략당하고 포로로 잡혀가 종살이를 하는 운명이 되었지요. 나라가 망하니 성이 황폐해지고, 성 안에 사람이 살지 않으니 짐승이 우글거리고 황무한 성읍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산 속으로 피난해 바위틈에 살아가거나 산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습니다.
엘리바스는 바로 욥이 그런 사람임을 비유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욥은 큰 부와 명예가 있었는데, 하나님을 배반하니 하루아침에 자녀와 재산을 다 잃고 악창의 고통 속에 먹을 것도 없는 비참한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을 판단 정죄할 뿐 아니라 혹독하게 저주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시기 질투 때문입니다.
지난날, 욥이 부요하여 이웃을 도와주고 타인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상황에서는 친구들도 욥을 사랑하는 척하며 서로 교제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욥에 대해 시기와 질투심이 있었습니다.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욥이 이제는 멸망의 길을 가고 있으니 마음속에 가졌던 시기와 질투심이 폭발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욥의 입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들이 나오자 이를 빌미로 마음껏 책망하며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이지요.


2. 엘리바스의 혹독한 저주

“그는 부요하지 못하고 재산이 항상 있지 못하며 그 산업이 땅에서 증식하지 못할 것이며 흑암한 데를 떠나지 못하리니 불꽃이 그 가지를 말릴 것이라 하나님의 입김에 그가 떠나리라”(욥 15:29-30)
즉 욥이 옛날과 같이 다시는 부요해질 수 없으며 재물이 불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흑암한 데를 떠나지 못한다’는 것은 욥이 겪고 있는 엄청난 시험 환란에서 도저히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불꽃이 가지를 태워 말린다는 것’은 씨까지 말려 버린다는 뜻으로, 조금도 남김없이 완전히 소망을 잃어버릴 것을 말합니다. 욥이 재앙 속에서 영영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이지요. 얼마나 큰 저주입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입김에 그가 떠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으로서,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은 광활한 우주와 천지 만물을 순간에 사라지게 하실 수도 있지요. 하물며 한낱 작은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욥을 향하여 하나님의 입김으로 ‘후’ 하고 불어 버리시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는 말입니다. 교만하여 목을 세우는 사람,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대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처럼 불어 버리신다는 것이지요.
이 말씀 자체는 옳지만 욥에게는 해당되지 않으며, 단지 엘리바스가 욥을 저주하는 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스스로 속아 허망한 것을 믿지 말 것은 허망한 것이 그의 보응이 될 것임이라”(욥 15:31)
이 말씀은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대제사장들을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말했고, 율법을 지킨다 하였으며 자칭 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며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을 하셨지요. 그들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이 눈앞에 계신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본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스스로 속고 있었으며 결국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지요. 엘리바스는 욥을 이러한 외식주의자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아, 너는 자칭 의인이라고 했지만 스스로 속은 것이요. 결국 너에게 임한 것은 멸망이 아니냐? 너는 다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의 날이 이르기 전에 그 일이 이룰 것인즉 그 가지가 푸르지 못하리니 포도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짐 같고 감람 꽃이 곧 떨어짐 같으리라”(욥 15:32-33)
“그의 날이 이르기 전에” 즉 “욥 네가 광명을 보기 전에, 지금까지 말했던 저주들이 임할 것이니 너는 회복될 것을 꿈도 꾸지 마라.”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나무는 가지가 싱싱하고 잎이 푸르러야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 것인데, 가지가 푸르기 전에 멸망이 임한다 했으니, 한 마디로 “너는 끝장이다!” 이런 뜻이지요. 엘리바스는 욥에게 앞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어떤 희망도, 아무 소망도 갖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만일 포도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는데, 미처 익기도 전에 병충해로 다 떨어진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또 감람나무(올리브)의 꽃이 비바람에 너무 빨리 져버리면 열매를 맺는 데 큰 지장이 있지요. 엘리바스는 욥의 운명이 바로 이와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포도 열매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 1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잘 붙어 있어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만일 나무에서 가지가 떨어져 나간다면 금세 말라 버리고 짓밟히게 되며 결국 불사름을 당하게 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떠난다면, 즉 진리 안에 살아가지 않는다면 쭉정이 신자가 되어 심판날에 지옥불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바로 포도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짐과 같지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이런 일들이 많습니다. 열매가 맺힌 나무에 비바람이 불면 연약한 가지는 잘려 나가고 열매는 우수수 떨어지고 맙니다. 이처럼 원수 마귀 사단은 우리의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 시험을 가져다주는데, 이때 믿음이 온전하지 않거나 진리 안에 온전히 서지 않은 성도들은 믿음을 잃고 주님을 떠나기도 하지요. 우리는 항상 깨어 말씀 안에 살아야 어떤 미혹이나 시험이라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3. 욥을 사곡한 무리에 비유하는 엘리바스

“사곡한 무리는 결실이 없고 뇌물을 받는 자의 장막은 불탈 것이라”(욥 15:34)
엘리바스는 욥을 사곡한 사람, 즉 요사스럽고 마음과 행동이 바르지 못한 사람으로 비유하여, 이런 사람에게는 아무런 결실이 없다고 합니다. 또 욥을 향해 뇌물을 받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욥이 부유할 때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였으며 연약한 이들에게 힘을 주고 덕과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욥의 도움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을 통해 여러 가지 선물이 들어왔지요. 욥의 친구들은 이처럼 사랑받고 칭송받는 욥을 시기 질투 속에 바라보았는데, 당시에는 이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서로 변론하다 보니 예전에 은근히 시기하고 질투했던 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 은혜 가운데 받은 선물을 뇌물이라 표현하며, 이런 사람의 장막은 불에 타버릴 것이라고 저주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악한 생각을 배고 불의를 낳으며 마음에 궤휼을 예비한다 하였느니라”(욥 13:35)
구약성경을 보면 이와 비슷한 말씀들이 많이 나옵니다.
“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잔해를 잉태하여 궤휼을 낳았도다”(시 7:14), “의인의 생각은 공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궤휼이니라”(잠 12:5).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궤휼이 있고 화평을 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잠 12:20) 말씀했지요. 엘리바스는 이러한 말씀들을 선진들을 통해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인용하여 욥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그들은 악한 생각을 배고 불의를 낳는다” 말씀한 대로, 사람은 대부분 머리로 불법을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악한 행동이 나옵니다.
탐욕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부귀를 얻을까, 어떻게 다른 사람의 재산을 가로챌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하고, 그 다음으로 이것을 마음에 심습니다. 이 마음이 요동하여 결국 악한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즉 탐심이 있기 때문에 생각을 통해 사단의 유혹을 받아들여서 결국 사기나 횡령, 도둑질 등 악한 행동이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창세기 6:5을 보면,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했고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 말씀했습니다. 마음이 악하므로 생각까지도 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자체에 악이 없으면 생각을 통해 사단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5:18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말씀한 대로. 악한 마음이 없으면 악한 생각이나 행동이 나올 리 없지요.
이처럼 마음에 선과 악이 얼마나 강하게 주관하느냐에 따라 생각이나 행동이 좌우됩니다. 선이 많으면 매사를 선으로 생각하지만 마음에 감정과 미움 등의 악이 있으면 생각이 악으로 작용되며 언어나 행동이 비뚤어지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생각과 마음이 이처럼 악하기 때문에 큰 재앙과 멸망이 임했다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욥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 앞에 항변하고 따지는 등 악하고 교만한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연단 중에 드러나는 악의 모습일 뿐, 욥은 엘리바스가 말하는 것처럼 사곡하고 가증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욥의 친구들은 감정이 뒤틀리니 욥이 예전에 베풀었던 선행과 덕행까지도 나쁘게 취급하며 헐뜯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욥과 친구들의 대화 속에서 우리 인생들의 마음을 낱낱이 해부해 주고 계십니다. 시기 질투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사랑받을 때 마음이 불편합니다. 또 상대와 자신을 비교하여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기 말씀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발견하여 악의 근본까지 뿌리 뽑아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계기를 삼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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