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저녁 예배

제목 욥기 강해 (40)   [욥 16:7-9]
설교자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3.03.19
오늘은 모든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모든 것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욥

“이제 주께서 나를 곤고케 하시고 나의 무리를 패괴케 하셨나이다”(욥 16:7)
욥은 자신이 곤고하게 된 것도, 친구들이 패괴케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곤고하다’의 사전적인 뜻은 ‘형편이나 처지 따위가 딱하고 어렵다’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곤고함이란, 마음의 힘을 잃어버린 상태이지요. 이때 회개하고 회복하지 않으면 더 심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 의욕이 상실된 상태까지 이릅니다.
성도들 중에도 시험 환란이 왔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 보다가 결국 해결되지 않으면 힘을 잃고 곤고해집니다. 충성의 의욕, 전도의 의욕, 기도의 의욕도 사라지고 점점 근심, 초조,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되지요. 이 상태에서 곤고함이 더 심해지면 살고 싶은 의욕조차 사라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죄와의 싸움으로 가장 고통스러울 때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고백했지요. 이처럼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쳐 나갈 수 없는 상태를 곤고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패괴’의 사전적인 의미는 ‘부서지고 무너지는 것’을 말하는데, 영적으로는 ‘마음이 부패되어 사람의 도리에 어긋난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의 도에 어긋난 것을 뜻하지요.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치셨으므로 힘을 잃고 무기력해졌을 뿐 아니라, 친구들이 도리를 벗어나 괴상한 말과 행동으로 자기를 사정없이 친 원인도 다 하나님께 있다고 말합니다. 친구들이 격동케 된 것은 근본적으로 자신들의 악이 원인이지만, 그 악을 발동시켜서 드러낸 것은 바로 욥이 광풍같이 쏟아낸 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욥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하나님께서 친구들을 패괴케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 모든 문제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야

세상 사람들 중에는 신을 믿지도 않으면서 어려움을 만나면 하늘을 향해 원망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농사를 짓는데 비가 오지 않아 농작물이 어려움을 겪으면 ‘하늘도 무심하시다’ 하며 믿지도 않던 신을 향해 원망 불평합니다.
무신론자나 믿음이 적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셔서 사람으로 하여금 죄에 빠지도록 하셨느냐”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면서 왜 무서운 지옥을 만드셨느냐” 묻고 따지기도 하지요.
자신이 죄악 가운데 행하니 혹여 있을 내세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나쁜 하나님으로 매도합니다. 더 악할 때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면 잘못되었다. 거짓이라 핍박하지요. 하나님의 역사가 거짓이어야 내세가 없는 것이요, 그래야 본인이 맘대로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진리를 잘 알지 못하거나 순종하지 않는 성도들 중에도 하나님을 오해하며 문제의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 있을 때는 죄를 지으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들으며 죄에 대해 지적을 받으니 “신앙생활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어렵다” 말합니다. 내가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죄를 짓고 있으니 힘든 것인데 엉뚱하게 교회 탓을 하는 것입니다.
또 충성하다가 일꾼 사이에 불화하거나 사람으로 인해 시험 들었을 때 상대 탓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내가 화평하지 못한 이유요.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지 않았기에 충성을 멈춘 것이지요.

어떤 성도는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을 받는다고 들었는데, 왜 나에게는 축복이 오지 않습니까?” 묻는데, 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나 모르기 때문에 하는 질문이지요. 신명기 28장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며 모든 복이 임하게 해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삼서 1:2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했습니다. 영혼이 잘되는 만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다는 말씀은 역으로 표현하면, 영혼이 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형통하지 못하고 강건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또 갈라디아서 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했으니 심지 않고는 거둘 수 없습니다. 기도로 심으면 영혼이 잘되고, 물질로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봉사로 심으면 건강해지는 등 무엇이나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축복을 받으려면 믿음으로 열심히 심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되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영적인 믿음이냐 육적인 믿음이냐, 영적인 믿음이 얼마나 크고 작으냐에 따라서 열매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구해도 응답받지 못했다면, 내가 진리 말씀 안에 살지 않고 마음과 생각을 세상에 두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모든 원인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신 말씀과 약속을 틀림없이 지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민 23:19).


3. 진리 말씀 안에서 답을 찾아야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양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나의 죄를 증거하나이다”(욥 16:8)
꽃을 꺾으면 그 꽃은 이미 생명의 근본인 뿌리에서 떠났기에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욥은 자신의 생명의 근원이 되었던 재물과 가족과 건강과 자녀 등을 하나님이 쳐 버리셨기에 자신은 그 과정 속에서 곤고함을 이기지 못하고 시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욥은 왜 이런 시험과 환란이 자기에게 임했는지 원인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친구들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니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진리 말씀으로 비추어 보면 반드시 내게 무엇이 문제였는지가 드러나는 법입니다. 혹여 발견되지 않는다면 기도와 금식을 해서라도 깨닫고자 노력할 때 반드시 성령께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깨달은 후에는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아서 매사에 내 감정에 치우치거나 내 생각에 맞추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은 문제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바로 자기 탓으로 돌릴 때 해결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영적으로 파리하다는 것은 다 허물어져 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나무에서 줄기가 끊어져 버린 상태 또는 해가 구름에 가려진 상태처럼 생명의 근원이 없어진 상태를 말하지요.
욥은 부유함도 건강도 가족도 없어졌고 친구들마저 대적이 되어 버렸으니 “내가 이처럼 시들고 파리해진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치신 증거입니다. 그런데 친구들은 나의 파리한 모습을 보고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벌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 자신은 의인임에도 이렇게 엄청난 시험 환란이 온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거라며, 모든 탓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에 있는 서운함, 불평, 원망, 짜증을 아주 당당하게 마음껏 발설하고 있지요.
세상에서도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일이 잘되면 자기가 잘해서라고 하고, 잘못되면 남의 탓, 환경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자신이 볼 때는 옳은 것 같아도 하나님 말씀으로 비추어 보면 반드시 진리에서 벗어난 일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지혜롭고 현명하게 대처하므로 사기당하는 일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사기를 당하는 경우는 대부분 물질의 욕심이나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때문입니다(약 1:15, 딤전 6:10).
보증을 서 주었다가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보증서는 것을 금하고 계십니다(잠 6:1-2, 잠 22:26, 잠 11:15). 당장은 보증 서 주지 않고 담보 잡혀 주지 않으면 형제나 친구를 위험 속에서 건져주지 않는 것 같고, 모른 척 배신하는 것 같다 해도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나중에 보면 가족을 구하는 길이고 친구를 더 이상 망하지 않게 하는 길이므로 하나님께서는 보증이나 담보를 서지 않는 것이 선이라 말씀하십니다.
돈 거래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13:8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상대에게 보증을 서 달라거나 돈 거래를 부탁하지 말아야 하며, 무엇보다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군박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대적이 되어 뾰족한 눈으로 나를 보시고”(욥 16:9)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자기를 찢고 있다고 말한 것은 욥이 지금 악창이 합창되었다가 터지기를 반복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군박의 사전적 의미는 ‘적에게 공격당하여 괴로움을 당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영적인 뜻은 하나님께서 욥의 죄를 계속 지적하며 소송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욥을 구박하며 박해를 가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향해 이를 갈고 계속 반격해 오고 있으며, 뾰족한 눈으로 욥을 날카롭게 쳐다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이 욥을 표적으로 삼아 계속 괴롭게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욥은 병의 증세가 호전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계속되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광대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더구나 사랑과 선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어찌 피조물 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 이를 갈며 공격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난다 해도 결코 욥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악한 말을 쏟아내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나면 내 안에 깊이 묻어두었던 악이 드러나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한 악독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연단의 시간입니다. 이때 ‘나는 원래 이러지 않았는데…’ 하며 환경과 다른 사람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합니다. 나도 알지 못했던 악한 나의 모습을 이제 발견하였으니 기필코 버리고 변화되리라 다짐하며 노력하면 됩니다. 그럴 때 깊은 악의 모양도, 본성 속의 죄성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혹여 내 안에는 남의 탓을 하는 마음이나, 진실하지 못한 마음은 없는지 항상 하나님 말씀으로 비추어 보시기 바랍니다(시 119:105). 그리하여 어떤 어려움과 문제 앞에서도 진리의 빛으로 인도받아 형통한 복을 누리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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