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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화평
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약3:17-18 날짜 2005.01.09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올해 첫 헌신예배를 드리는 우리 주의 종들에게 “화평”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 주의 종들이 먼저 본을 보이시고 모든 성도들도 그 본을 받아 행하시므로 모두가 화평한 가운데 2005년 큰 영광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전에 보면 ‘화평’이란 “마음이 기쁘고 편안함, 서로 사이가 화목하고 평화스러움”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의미에서의 ‘화평’은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넉넉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의미하지요. 이러한 “화평”에 관해서는 그동안 너무나 많이 강조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의 종들이라고 하면 이미 마음에 “화평”이 영으로 일궈져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일에도, 어떠한 사람과도 화평할 수 있는 마음이어야 하지요.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시간 다시금 “화평”이라는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아래로부터 위에 이르기까지, 주의 종 전체가 서로 간에 정녕 화평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조금의 불목도 없기를 원하시며 사소한 감정 다툼도 없기를 원하시기 때문이지요. 서로 사랑하고, 서로의 마음을 위로해 주며 마음을 철저히 낮추고 서로 섬기므로 위로부터 아래까지, 아래에서 위에 이르기까지 정녕 모두가 화평하기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간절히 바라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하다 인정받는 주의 종들이 되시므로 2005년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여러분을 맘껏 이끌어 나가실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화평을 마음에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큰불이 나면 많은 재산이 손실되고 인명 피해를 보기도 하지요. 또는 드넓은 산지의 수많은 수목들이 짧은 시간에 잿더미로 변해 버리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는 혀의 말이 이러한 화근(禍根)이 될 수 있음을 말씀하시며 조심할 것을 경계하십니다. 바로 약 3:5-6에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입술로 낸 말로 인해서 얼마나 화평이 깨지기 쉬운지 알아야 합니다. 특히 서운함으로 인해 낸 말이나 자기 생각에 맞지 않을 때 내뱉는 불평의 말 안에는 악한 감정이 섞여 있어서 사단이 역사할 수 있습니다. 서운함이나 불평, 불만을 마음에 가지고만 있는 것과, 그 감정을 입술의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낸 것과는 영적으로 많은 차이가 난다는 사실입니다.

비유를 들면, 여러분이 검은색 잉크병을 여러분의 호주머니 속에 가지고 있는 것과 병마개를 열고 뿌리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요. 병마개를 열고 뿌리면 여러분 자신은 물론 주변의 사람들에게까지 검은색 잉크가 튀게 됩니다. 서운한 말이나 불평, 불만의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그것을 입술로 내었을 때는 자신은 물론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게 되지요. 만일 그래도 마음이 선하다면 말한 사람도 ‘말하지 말걸’ 하고 후회하며, 듣는 사람도 ‘저 사람의 입장을 더 살펴주지 못했구나.’ 하며 마음 한편에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쏟아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입술로 한번 낸 말도 주워 담을 수가 없지요. 그렇지만 양편이 모두 선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을 살펴준다면 그나마 화평이 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하지 않은 마음으로 말을 내고 또 그 말을 들은 사람들도 선하지 않은 사람들일 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 앞서 일하는 분들과 자신의 생각이 다르다 하여 불평불만의 말을 내었는데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그 말을 들었을 때 서로 말을 맞추게 되는 경우가 있지요. 그래서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면 사단의 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단의 회가 있으면 작은 것도 올무가 되어 부딪힘이 될 수 있고 자연히 하나님의 일도 이뤄지기 어려우며 부흥도 멈추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회는 아예 발붙일 곳이 없도록 해야 하지요. 그런데 ‘사단의 회’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안에 속해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별 생각 없이 어떤 사람이 하는 비진리의 말과 수군거림을 듣고 거기에 한두 마디 동조를 했다고 합시다. 물론 여러분은 악한 마음에서 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직 온전히 영으로 일구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악이 마음 안에 있을 수 있고 이것이 연합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면 발동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삼가 입술의 말을 조심하되 선한 것만 보고 들으며 선한 말만 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도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화평을 깨는 사람이 아니요 오히려 화평치 못한 사람들이라도 여러분을 통해 화평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서로가 서로를 섬겨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화평하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그 한 가지는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보다는 내 유익을 먼저 구하기 때문이지요. 또 다른 이유는 상대의 의견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의를 강하게 내세우고 상대를 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고요. 그러나 “섬김”의 마음이 된다면 화평이 깨어질 리가 없습니다.

‘섬김’이란, ‘단지 겸손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요, 상대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하여 돌볼 때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듯이, 또는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서 자신은 형체를 잃을지언정 온전히 녹아지듯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온전히 버리는 것이 바로 ‘섬김’이지요. 그래서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범사에 상대의 유익을 구해줍니다. “저 사람을 위해 무엇을 도와줄까”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섬김으로 인해 여러분 모두가 온전히 화평하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시간 강조하시는 섬김의 초점은 “서로가 서로를 섬겨 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마태복음 23장 11절에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말씀하셨으니 머리된 사람들이 섬김의 본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런데 혹여 이러한 말씀을 인하여 ‘나는 질서상 아랫사람이니 섬김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해 줄 것을 요구하며 마치 그것을 당연한 일로 여겨서도 안 되는 것이지요. 원래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것이요, 나이가 어린 사람이 어른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리의 말씀을 안다 하여 그 말씀을 빌미 삼아 섬김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면 이 또한 어리석은 생각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니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가 중심에서 서로를 먼저 섬길 수 있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도리를 좇아 섬기는 것은 물론이요, 가장 중요한 섬김은 서로가 하나님의 뜻에 합한 종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종이 될 수 있도록 서로 권면하고 서로 도우며 영적으로 힘이 되어 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머리된 주의 종들은 2005년 영의 주도적인 흐름에 모든 주의 종들이 충만하게 동승할 수 있도록 밝히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제시해 주며 앞서 본을 보이며 행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주의 종들이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앞에서는 잘 끌어 주고 당겨 주며, 뒤에서는 든든히 받쳐 주며 밀어 줘야 합니다. 또한 그러한 영의 주도적인 흐름을 따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믿고 순종하며 어찌하든 마음을 같이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섬김의 마음이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참으로 상대를 섬기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어져야 합니다. 나, 내 것, 내 욕심, 내 가족, 나 보기에 의로움, 내 고집, 이런 것들이 다 없어진 사람이라야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배려하고 섬길 수 있지요. 진리를 배워서 알고 섬겨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섬긴다 해도 이것이 진정으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닐 때는 불편한 일들을 볼 때 마음에 담아 놓게 되고 언젠가는 변질되는 열매로 드러나게 됩니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진리니까 섬겨줘야지, 기분은 나쁘지만 참아줘야지’ 이러는 것이 아니라 근본으로부터 섬기는 마음이 되어 섬기는 행함이 우러나와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의 섬김이 진실한 것이 아니었다면 십자가를 온전히 지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토록 선만 행하시며 병자들을 고쳐 주고 기사와 표적을 베풀어 주셨는데, 자신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주시는데 악한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마태복음 27장 42절에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하는 것이지요. 이때 예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즉시로 악한 사람들을 벌하시고 “내가 정녕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나를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내 생명과 모든 것을 주어서라도 영혼들을 구원하시려는 섬김의 마음이셨기에 끝내 십자가를 지고 운명하셨던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참된 섬김의 마음이 우리 주의 종들의 마음에 임하여 서로가 서로를 섬기므로 온전한 화평이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사랑으로 모든 것을 품어야 합니다.

화평을 마음에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세 번째로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품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품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사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지기까지 자신을 헌신하셨던 그러한 온전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된 사랑”을 소유해야 하지요.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서 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내 생명까지 줄 수 있고, 내 형제를 위해서 생명을 줄 수 있는 이러한 희생이 포함된 사랑 말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자기적인 것이 전혀 없으며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내어 주면서도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받으려고 하지 않고 그냥 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것이지요. 모세나 사도 바울은 설령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장면들이 나옵니다. 스데반 집사도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자신을 돌로 치는 사람들을 위해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기도했던 것을 볼 수 있지요. 이들은 하나님 앞에 싫어버린 바 된 사람들을 위해서도 이처럼 간절한 사랑으로 간구했던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함께 부름 받은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랑으로 서로를 위해 주며 품어줘야 하겠는지요? 여러분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영적 전쟁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믿음의 동지들입니다. 세상의 전쟁에 함께 참전한 군인들도 전우애라는 것이 있지요. 그래서 한 사람이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다른 전우들이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그를 구출해 내려고 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드물게나마 세상에도 이러한 사랑이 있거늘 하물며 여러분은 예수님의 보혈로 맺어진 한 형제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들이니 더욱 뜨겁게 서로를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지요?

혹여 지난날에는 자신이 인침 받기 위해서, 그리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느라 좌우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서로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한다면 서로의 형편도 돌아보고 살펴 주게 되지요. 내 동역자가 어떻게 사는지, 생활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서로를 돌아보고 살펴주므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 2장 4절에도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말씀하셨지요. 또한 야고보서 2장 15-16절에는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형편을 살핀 후에는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공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넉넉한 가운데 나눠주는 일은 웬만하면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나도 넉넉하지는 못하나 나보다 더 어려운 동료가 있다면 기꺼이 내 것을 나눠 주리라’는 마음으로 서로를 돌아본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시겠는지요?

초대 교회 성도들은 사도행전 4장 32절에 보니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혹 어렵게 지내는 동료는 누구인지, 그는 어떻게 지내며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를 늘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사랑의 마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의 종들이 이런 사랑의 마음으로 먼저 서로를 돌아보며 솔선수범한다면 성도님들도 본을 받을 것이며 많은 영혼들에게 은혜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이처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데 무슨 일로 화평이 깨어질 수 있겠는지요? 이미 섬김과 사랑으로 하나 되어 있으니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할 틈이 없지요. 또한 여러분들부터 따뜻한 사랑으로 넘쳐나니 영혼들도 안겨와서 자연히 부흥도 이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품어주기 원한다면 상대를 변함없는 믿음으로 바라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무슨 말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영으로 들어오기 위한 연단을 받을 때 숨겨졌던 육의 모습들과 악의 모양들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혼자서 발견하고 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주변 사람들도 힘들게 하거나 마음에 아픔을 줄 수도 있지요.

이처럼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해도 사랑으로 견디며, 변함없는 믿음으로 그가 잘될 것을 바라봐 주시라는 것입니다. ‘저분도 영으로 들어가는 연단의 과정이라 그러겠지. 이를 통해 저분의 연약함이 변화되어 더 빨리 영으로 들어가게 될 거야’ 이처럼 영으로 생각해 주므로 판단, 정죄하지도 않고 상대로 인해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며 변함없이 상대가 영으로 잘될 것을 바라봐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지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7절에도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서로 사랑으로 모든 것을 품어 줌으로, 영의 주도적인 흐름 가운데 혹 뒤쳐진 사람이 있다 하여 그를 육으로 치부하거나, 반대로 앞서가는 사람들에 대해 곱지 않은 마음으로 바라보며 시기 질투하는 일은 절대 없기를 바랍니다. 서로 잘할 수 있도록 끌어 주며 당겨 줄 수 있는 그런 주의 종들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 말씀 18절에 보면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했습니다. 우리는 예전엔 죄인이었으나 화목 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기까지 했지요. 이러한 은혜를 입은 우리가 화평으로 심으면 의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의의 열매”는 화평을 심는 사람 자신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된다는 말씀이지요.

이 시간 화평을 심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로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하며, 두 번째로는 서로가 서로를 섬겨줘야 한다 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품어야 한다 했지요. 우리 주의 종들과 성도님들도 2005년도에는 더욱 부지런히 화평을 심는 자가 되어서 영의 흐름을 잘 타고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당당히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 모두가 다 같이 주님의 얼굴을 뵈오며 세세토록 그 영광 중에 거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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