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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고전 15:31 날짜 2011.01.09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일신우일신입니다.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야 한다는 뜻이지요. 여러분의 신앙이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성장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새로워져야만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도 속히 변화되기 원하고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기 원했습니다. 또 은혜를 받으면 ‘이제 내가 능히 할 수 있다’ 했고 자신감도 있었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스스로 점검해 보면 변화가 더딘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아버지 앞에 민망하고 죄송하다’ 탄식하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더구나 지난 해, 회개의 시간들을 통해서는 ‘내가 정말 이런 사람이었는가?’ 하면서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육의 속성까지 발견했지요. 그러나 낙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면 낙심하게 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 때는 여전히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발견할 수 있었으니 감사한 것이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변화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변화시켜 주실 수 있음을 믿으니 기뻐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더 간절히 성령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 나가야 하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옛사람의 속성을 벗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삶이 참된 주의 종의 삶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어찌하면 여러분이 날마다 새로워져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세 가지 분야로 말씀을 증거합니다. 말씀을 통해 올해는 반드시 영으로, 온 영으로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맡은 양 떼들을 생명으로 인도하고 항상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살찌게 할 수 있는 참된 종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첫째,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이 사심에 대한 말씀은 여러분이 지금까지 수없이 듣고 또 들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충성한다 해도 사심이 있으면 양 떼를 힘들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낼 수도 없지요.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습니다.

주의 종이라면 더더욱 육의 정과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내 부모나 자녀, 육의 가족보다 맡은 양 떼를 더 귀하게 여겨야 하지요.

탐심은 물론이고 자존심이나 교만도 버려야 하고 명예욕, 권세욕도 버려야 하지요. 자신을 잘 섬기고 사랑하는 일꾼이나 그렇지 못한 일꾼이나 누구를 대한다 해도 태도와 안색이 달라져서도 안 됩니다. 인정받고 칭찬받으려는 마음도 버려야 하지요.

무수한 말씀을 들으면서도 사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을 정당화 시키는 핑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일을 하면서도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또 하나님께 감사하여 이렇게 했다” 하지요.

좀 더 구체적인 비유를 들면, 성도들에게 “이러저러한 용도로 예물을 모으자”하거나 야외로 나가 어떤 모임을 갖자고 합니다. 굳이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이런 일을 추진했다” 하며 자신을 드러내려고 굳이 일을 벌이는 것이지요.

어떤 행사나 일정을 진행함에 있어서도 성도나 일꾼들의 입장과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좋게 여기는 대로 일을 진행합니다. 이럴 때는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 되기 쉽지 않고 그 열매도 육의 열매가 납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고집하면서 자기 사심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교회나 교구의 각종 예배 시 설교를 할 때의 마음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종이라면 항상 설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말씀 무장이 되어 있어야 하고 언제든지 성령의 주관을 받아 증거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어떤 경우는 들레는 마음에서 설교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양 떼의 문제를 내가 더 잘 알고 내가 말씀을 더 잘 증거할 수 있다’ 생각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설교 후에는 양 떼가 은혜 받았다고 고백하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리지요.

또 양 떼가 축복받은 간증을 전하면서 은근히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기도해 줬고 내가 이렇게 심방해 줬고 내가 이렇게 목자께 인도해 줘서 축복받았다”고 슬쩍 생색을 내는 것입니다.

때로 어떤 사람은 ‘나는 주의 종이니까 양 떼가 나를 이렇게 섬기는 것은 마땅하고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고요.

예를 들어 주의 종에게 경조사가 났을 때 어떤 일꾼들이 주의 종을 섬겼는데 어떤 일꾼들은 섬기지 않았다고 합시다. 그럴 때 주의 종은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요? 섬김 받음에 고맙고 민망한 마음이어야 하지요. 또 ‘이로 인해 양 떼가 불편하지는 않았는가? 혹 어려움을 당하지는 않았는가?’ 하고 살피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섬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주님 앞에 심히 민망한 일이지요.

하물며 자신을 섬겨 주지 않는다 해서 ‘저 양 떼는, 저 일꾼은 마땅히 할 도리도 하지 않는가?’ 하고 서운해 하거나 불편해한다면 주의 종으로서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소유를 팔아 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나를 섬기라” 강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낮은 자리에서 모두를 섬기셨고 영혼들에게 사랑과 생명과 축복만 주셨지요. 이에 은혜 받은 영혼들이 자원하는 마음과 사랑으로 섬긴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그들의 섬김을 받으신 것은 그들이 기쁨으로 섬긴다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믿음과 사랑의 행함이 더 큰 영육간의 축복으로 임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었지요.

정녕 여러분이 주님을 닮기 원한다면 ‘어찌하면 예수님처럼 사랑받고 섬김 받을까?’ 해서는 안 됩니다. ‘어찌하면 예수님처럼 은혜를 끼칠까? 어찌하면 영혼들을 더 섬기며 더 낮아질까?’를 궁구해야 하지요.

세상적인 권세나 명예, 부를 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권세와 능력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 권세와 능력은 사람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금식과 여러분의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 구해서 받아야 하는 것이고요.

여러분은 날마다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아 정결하게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일을 하거나 말 한마디를 해도 주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내 의욕이 앞서고 내 공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은 아닌지, 나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갖고자 하는 마음, 섬김 받으려는 마음, 취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사심의 작은 흔적조차 없는 주의 종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둘째, 영의 일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새신자나 초신자를 심방할 때 세상 것만 바라보고 천국을 소망하지 못하는 영혼들을 보면 얼마나 불쌍합니까? 부귀영화를 아무리 누린다 해도 육의 것들은 결국 다 헛된 것이기에 천국을 사모하고 영의 것을 사모해야 한다고 여러분이 열심히 가르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도 영의 것만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로는 영을 사모한다 하면서도 그 마음과 생각이 육으로 차 있고 그 시선이 육의 것을 향해 있는 것이지요.

만약 여러분이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을 종이에 쭉 기록할 수 있다면 어떤 내용들로 채워질까요? 어디 가까운 야외로 가면 경치도 좋고 맛있는 음식점이 있다는데 언제 날을 잡아서 한번 가볼까? 어디 좋은 곳에 가서 좀 쉬어 볼까? 어떤 옷을 입을까? 집을 어떻게 꾸밀까? 어떤 취미생활을 해 볼까? 요새 이런 TV프로가 재미있다는데,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데 언제 볼까? 혹여 이런 것들로 채워져 있지는 않습니까?

먹고 마시고 입고 쉬고 취하는 그런 육의 것들에 마음을 두면 점점 더 육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어느 정도 채워졌으니 이제 족하다 하고 절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의 것을 더 많이 추구하게 되지요. 마치 바닷물을 마시니 갈증이 더해지는 것처럼 육으로 육으로 마음이 더 쏠리고 결국 범죄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의외로 나름대로 믿음이 있다, 일꾼이다, 기도하고 예배하고 충성한다 하는 사람들이 중한 육체의 일을 범할 때가 있습니다. 이들도 처음부터 중한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큰 죄는 아니니까’ 하면서 작은 육의 것들을 허용하는 데서 문제가 시작되었지요.

마음과 생각에 육을 허용하는 만큼 성령 충만함은 사라집니다. 그러면서 사소한 죄를 짓기 시작하면 하나님과의 사이에 담이 쌓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는 귀가 둔해지고 죄를 경계하는 마음이 무뎌져서 결국은 사망에 이르는 큰 죄까지 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만나 첫사랑의 뜨거움을 체험했을 때는 온 마음과 생각을 영의 일들로 채웠을 것입니다. 또 신학교를 나와 처음 주의 종의 길로 갈 때 혹은 목사로 안수 받았을 때 그 처음의 각오는 얼마나 뜨거웠습니까? ‘육은 철저히 버리고 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리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종이 되리라’ 굳게 다짐했을 것입니다. 이전에 취하던 작은 육의 일들도 끊고 여가 시간에도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켰지요.

이런 열정이 식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이 항상 생각하고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영의 일들이지요. ‘어찌하면 내가 말씀을 더 무장할까, 어찌하면 내가 더 기도할까, 어찌하면 속히 변화되어 아버지께 기쁨을 드리고 영육 간에 좋은 열매를 낼까, 어찌하면 나도 권능을 행하여 많은 영혼들에게 생명을 전할까, 어찌하면 저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줄까, 어찌하면 저 양 떼를 충만하게 하고 믿음이 성장하게 할까’ 이런 영의 일들만 생각해야 합니다.

길을 가면서도, 잠들기 전에 누워 있는 잠깐의 시간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자신을 변화시킬 생각을 해야지요. 맡겨진 영혼들을 생각하고요. 영의 일들만 생각하며 영의 것으로 마음을 채워나가면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습니다. 동행하시며 보장하시는 주님을 늘 체험하기에 허전함이나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지요.

속히 변화되어 성결을 이룰 수도 있고, 사명감당의 분야에 있어서도 많은 열매를 낼 수 있습니다. 항상 영의 일만을 생각하여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해 나가는 주의 종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셋째,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 후반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했습니다. 순종에 대한 말씀도 주의 종 여러분은 늘 듣는 말씀입니다. 종이라면 당연히 주인의 말을 들어야지요. 주인의 말을 듣고 순종할 때 주인이 그 종을 먹이고 입히고 주인이 원하는 일에 쓰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충만할 때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처럼 가장 소중한 것도 주께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다 순종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지요.

또 “목자의 권능을 보았고 목자를 신뢰하니 오직 아멘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도 많이 들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순종하는 일꾼을 찾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브라함 같은 입장이 되면 온갖 육신의 생각들을 동원할 것입니다. ‘아니,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무서운 일을 시키시는가?’ ‘이삭을 통해 후손을 번성케 하신다 하셨는데 이제는 그 언약의 말씀을 번복하시는 것인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면 충만함이 떨어지고 그런 고민되는 일을 명하신 하나님께 원망하거나 서운한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결국은 이삭을 바칠 수도 없구요.

자기가 충만할 때만 순종하고 자기 의와 틀과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하는 것은 순종한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그대로 따를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사심을 버려야 하고 육신의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순종하겠다고 결심해도 육이 있으면 불순종이 나옵니다. 충분히 순종할 수 있는 일조차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고 이유를 대면서 순종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요.

이렇게 ‘순종하라’는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은 입술로는 “아멘” 합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얼마나 명심하고 계십니까? 정녕 ‘하라’ 하시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 하시는 것은 안 하시겠습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한계 속에서만 순종합니다. ‘나는 그래도 이 정도는 하니까, 예전보다는 낫고 누구보다는 나으니까’ 하면서 당장 결단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가령 “영의 일만 생각하라” 하면 그 순간에는 “아멘”으로 화답하고 “영의 일만 생각하게 하소서” 하고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구습대로 육의 생각이 떠올라도 당장 끊어버리지 않습니다. 계속 떠오르는 생각에 빠져들고 그 생각을 좇아 육을 취해 나가기도 하지요. 아까 들은 말씀이 있고 기도한 것이 있어서 좀 찜찜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큰 죄는 아니니까 일단 이것은 놔두고 다른 것부터 버리겠다는 식입니다.

이렇게 우유부단하게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정체된 신앙을 뚫을 수가 없습니다. 육체의 결여가 있어도 채울 수가 없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도 없지요.

여러분이 영으로 들어가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가장 빠른 길은 진리에 즉시 순종만 하는 것입니다. 이유와 핑계를 만들지 말고 진리대로 배운 대로만 행하면 됩니다. 이렇게 순종만 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도우심 속에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수 있지요.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고 인내로 자신을 다스려 나가야 함을 압니다. 성공의 길을 아무리 알아도 게으름과 정욕을 좇아 사는 사람들은 정작 그 길로 갈 수가 없지요.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종종 극적으로 변화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봅니다. 방탕하여 구제불능의 삶을 살던 사람이 큰 위험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에는 하루아침에 변화되어 반듯하고 성실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공부를 전혀 안 하고 놀기만 하던 학생이 어떤 일로 충격을 받으면 밤낮으로 공부해서 우등생이 되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을 보면 주변에서 평가하기를 “전혀 딴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완전히 달려졌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제 2011년도를 맞아 완전히 달라지시길 부탁드립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셨지요.

여러분은 이 마지막 때 심히도 할 일 많은 제단에서 수백, 수천 명 이상의 양 떼를 책임져야 할 귀한 주의 종들입니다. 가나안 시대를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영적 장수들을 더욱 급박하게 찾고 계시지요.

이제 단단한 알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육의 한계를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사심을 버리고 영의 일만 생각하며 온전한 순종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독수리가 비상하는 것처럼 힘찬 기상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전진하는 만민의 주의 종들이 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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