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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헌신의 의미
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계 2:10 날짜 2015.03.29
오늘 ‘헌신의 의미’라는 말씀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 앞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해야 함을 당부하시기 위함입니다. 영의 마음이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아브라함, 모세, 사도 바울 등 선진들의 헌신도 결국 하나님,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 앞에 사랑이 담긴 헌신을 드리기 위해 점검해야 할 분야를 두 가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1. 내 유익에 따라 수시로 변개하는 마음이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우리가 경계해야 할 육의 속성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변개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크게 악을 행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변개함이 싹트면 결국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배신으로까지 나오게 됩니다.
가룟 유다가 그러했습니다. 그는 예수님 곁에서 생생한 기사와 표적을 수없이 보았지요.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명하시니 죽은 자가 살아나고 날 때부터 소경 된 자가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이러한 예수님을 보면서 자신도 언젠가는 예수님으로 인해 특권을 누리고 영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자기 유익에 따라 예수님을 붙좇은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지요. 사람들이 모함하고 핍박하는가 하면, 당시 이스라엘의 권력자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입지가 불리한 상황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게 되니 가룟 유다의 마음이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없을 것 같으니 결국은 사단의 사주를 받아 스승을 파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지요.

이 제단에도 큰 연단의 시간들이 있었을 당시, 교회의 기둥과 같이 쓰임 받겠다던 사람들이, 생명 다해 교회와 목자를 지키겠다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연단은 하나님께서 이 제단에 허락하신 축복의 연단이었고, 이를 단에서도 여러 차례 미리 말씀드렸지요. 그런데도 육의 사람들의 눈에는 교회가 당장 해를 입는 것 같고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아 보이니 이내 마음이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심지어는 자신에게 맡겨진 양 떼들까지 버리고 떠난 주의 종들도 있었지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생명 다해 충성하겠다, 목자를 생명 다해 돕겠다 하던 그 고백을 물거품처럼 뒤로 하고 떠나가 버렸던 것입니다. 설령 교회를 훼방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입은 제단을 저버린다면 지난날의 믿음도 참이 될 수 없지요. 그때까지 쌓은 사랑도, 믿음도, 소망도 전부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변개함은 늘 점검해야 할 항목입니다. 특히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은 더 쉽게, 더 자주 변개함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내 마음, 내 취향, 내 기호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과 뜻에 안 맞는 상황도 있고 자기 유익에 반대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주의 종이라면 양 떼들에게 섬김과 존중을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양 떼들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고 내어주어야 하는 경우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때때로 자신이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자유와 권한도 포기해야 하고 내 시간, 내가 누리고 싶은 것, 내 생활, 이러한 것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레위족이라면 각자에게 할당된 업무를 한다 해도 항상 ‘하나님 나라 전체에 유익이 되는 길은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개인의 업무 실적이나 자기가 속한 부서만 칭찬받기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주어지지 않으면 그 마음이 이내 달라지지요. 윗분이 자신의 성과를 인정해 주면 충만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열정이 식어져 버립니다. 자기가 바라는 대로 충족이 되지 않으면 이내 낙심하고, 지쳐 버리지요. 드러나고 인정받는 사명은 열심히 감당하다가도 다른 사명이 더 인정받는 것 같아 보이면 자신의 사명을 소홀히 한 채 다른 사명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됩니다.
2013년 3개월의 유예기간 동안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보내셨는지 이 시간 잠시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지난날을 철저히 통회자복하며 다시 주신 기회에 감사한 마음으로 반드시 변화되리라 다짐하고 결단했습니다. 그런데 혹여 낮추어진 자신의 위치와 입장에 낙심하고 한탄한 분은 없었습니까? 그것이 영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주신 기회임에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로 가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의 헌신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방 선교를 다니며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많은 양 무리를 낳았습니다. 편히 먹고, 입고, 쉬면서 누군가의 든든한 후원을 받으며 선교한 것이 아니었지요. 양 떼들에게 공궤를 받기보다 천막을 지어 자비량으로 선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핍박과 고난은 또 얼마나 많이 받았습니까?
사도행전 20장 22~24절에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백했지요. 매를 맞으며 감옥에 갈 줄 알면서도,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 뜻이라면 아멘 하며 갔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을 때도 자신의 안위를 먼저 구하기보다는 두고 온 교회와 양 떼들의 형편을 걱정했지요.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처음 직분을 받고 사명을 받았을 때 오직 주를 위해, 교회와 영혼들을 위해, 목자의 힘이 되기 위해 내 한 몸 기꺼이 바치리라는 각오였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주님 오실 때까지, 목자와 하나 되어 많은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겠습니다.” “내게 주신 달란트로 하나님 나라에 힘이 되겠습니다.” 고백했지요.
그런데 이제 내 유익에 맞지 않는다 해서, 내 힘듦과 내 연단만을 생각하여 변개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지난날의 헌신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목자 앞에 드렸던 그 고백이 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도 동일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정한 마음을 변치 마시고 내 유익을 구하기보다는 하나님 나라와 영혼들을 먼저 생각하는 참된 헌신의 주인공들이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2. 헌신한다 하면서 내 조건과 상황에만 맞추려 하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아야

때로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이나 자기 능력 이상의 일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능력이 부족하다.” 핑계 대며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만 해서는 안 됩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힘은 세상 지식이나, 육적인 달란트, 물질 등에서 오는 것이 아니지요.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마음 중심에서 구해 간다면 큰 능력의 일꾼으로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주의 종은 알곡의 영혼들도 살피지만 오히려 상한 심령, 연약한 심령, 강퍅한 심령들을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그런데 만약 나를 좋아하고 맞춰 주는 양 떼, 심방하기 편하고 순종하는 양 떼만 살피고 가까이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잘 따르지 않고 부딪혀 오는 양 떼와는 여전히 화평을 이루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또한 주의 종은 자신의 환경과 조건을 보고 거기에 맞는 일만 찾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어느 오지에 가라 해도 오직 아멘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직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령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이 맡겨졌다 해도 ‘나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이나 형편, 꿈과 비전, 능력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지시, 명령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 형편과 비전, 이런 것보다 가장 좋은 것 주기 원하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바를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예전에 주변 일꾼 분들에게 이런 부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관, 선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섬겨라.” “기관장도, 선교회장의 사명도 침노해라.” 했지요. 제가 이런 부탁을 했던 이유는 단지 “더 많은 사명을 감당해라. 온 집에 충성해라.” 하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영혼을 관리하는 사명을 감당할 때 목자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고, 교회와 영혼들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의 축복이 임하기 때문이었지요. 또 이러한 공력이 쌓이다 보면 결국은 자신의 업무와 사역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야 분야 더 마음을 넓히지 않고 여전히 자기 한계 안에만 머물러 있다면 이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데 있어 더 큰 몫은 감당하지 않겠다.” 고집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모습이 화려하게 돋보이는 무대가 있는 반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감당해야 할 사명도 있습니다. 남들이 알아 주지 않는 궂은일을 감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드러나는 공은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도 여러분은 여전히 동일한 마음으로 헌신할 수 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원하던 것과 다른 일이 주어질 수도 있고 내가 사모하며 기도하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인도받을 수도 있지요. 나는 열심히 충성한다고 했는데 애매한 말을 듣거나 낮은 데 처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라도 오직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헌신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인간 경작의 세월 동안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참고 인내해 주시는 하나님의 헌신도 결국은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의 연약함을 아셨기에 인생들에게 배신당할 것도 아셨습니다. 그들이 죄로 물들어 갈 것도 아셨고 그로 인해 마음 아프실 줄도 아셨지요. 그러나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 참아 기회를 주고 또 주시면서 한 영혼도 포기하지 않기 원하십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인생들도 외면하고 심판으로 처리하신 것이 아니라 어찌하든 기회를 주며 살리려고 하셨지요.
때로는 공의 가운데 결국 재앙이 임할 때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인생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인생들의 반복되는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책임지며 이끌어 감이라.” 하시며 참 자녀로 나오기까지 모든 것을 감수하시지요.
끝내는 사랑하는 아들을 죄의 대속물로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써 그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증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을 깨달아 참된 사랑의 마음으로 헌신을 드리십시오. 이런 참된 헌신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정녕 기둥같이 쓰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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