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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순종
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삼상15:22 날짜 2009.03.08
이 시간은 “순종”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2009년도 남선교회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드릴 때 큰 능력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기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기쁨과 만족을 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순종의 4가지 유형

“순종”의 사전적 의미는 “순순히 따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순순히 따르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종에는 여러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억지로 순종하는 경우입니다. 순종하지 않을 때 즉각 징계가 임한다면 사람들은 징계가 두려워서라도 순종합니다. 독재자의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독재자는 자기에게 협조하지 않는 저항 세력들을 억압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재자의 명령이 옳지 않아도 그대로 순종합니다.

둘째는, 자신의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에만 순종하는 경우입니다. 지시나 명령이 자기 생각에 맞을 때에만 순종하는 것도 이에 해당합니다. 자기가 순종할 수 있을 때에만 순종하며,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 맞지 않을 때에는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무조건적인 순종입니다. 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가, 자기 생각에 맞는가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아멘” 하는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니 무조건 아멘하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던 아브람의 행함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베드로 역시 이렇게 무조건 순종한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넷째는, 명령하시는 의도를 마음으로 깨달아 기꺼이 순종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순종하면 왜 그처럼 명하시는지를 마음으로 깨닫게 되고, 순종할 때 이뤄질 일의 결과도 대략 마음에 그려집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에도 온전히 순종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행함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었기에 그대로 순종할 수 있었고, 순종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도 이미 마음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려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순종의 행함을 보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을 마칠 즈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두로라는 곳에서 만난 제자들도 성령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권했고, 가이사랴에서 만난 선지자 아가보도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인들에게 결박당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1장 13절에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거듭된 만류에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그 인도하심에 온전히 순종했던 것입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알려주신 대로 예루살렘에서 붙잡혔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로마의 총독들과 유대 왕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고, 또한 로마에도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사도 바울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크게 확장되었던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온전히 순종하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의 모습은 네 번째 유형, 즉 하나님의 뜻을 마음으로 깨달아서 기꺼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못해도 세 번째 유형, 즉 무조건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되어야 하나님께서도 마음껏 쓰실 수 있습니다. 억지로 순종하거나, 자기가 순종할 수 있는 일에만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1) 사심(私心)이 없어야 하며, 정도(正道)를 걸어야 합니다
사심이 있으면 정도를 걸을 수 없고,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사심(私心)이란 사사롭게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입니다. 내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요, 내가 더 갖고자 하는 마음이며, 내가 더 육적으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런 사심이 있는 만큼, 정도인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정도에서 벗어났다면, 죄인의 길로 들어섰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의 경우, 물질의 욕심을 버리고 정도를 걷는다면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은 사심으로 인해 정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만 원을 버는 사람은 그중에서 3천 원을 세금으로 내라고 국가에서 정했다면,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정도를 걷는 것입니다. 3천 원을 떼고 7천 원만 갖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작은 사업터를 일굴 때부터 사심 없이 정도를 좇는 마음이 굳게 자리 잡혀야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사심을 가지고 탈세를 감행합니다. 당연히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수입이 1백만 원일 때는 탈세를 한다 해도 그 금액이 적습니다. 그런데 수입이 1천만 원일 때는 3백만 원을, 수입이 1억 원일 때는 3천만 원이라는 큰 금액을 탈세하게 됩니다. 사심으로 인해 법을 어긴다면, 당장의 이익은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정도에서 벗어난 길을 간다면, 나중에는 스스로도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결국은 그것이 올무가 되어 큰 시험을 당하며, 불법으로 얻었던 수입보다 더 큰 벌금과 대가를 지불하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했습니다. 사심이 있으면 당장 눈앞의 이익에 눈이 가려지므로 정도에서 벗어난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세금을 예로 들었지만,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정도를 걷는 것이 탄탄한 성공의 길임을 반드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명예욕으로 인해 정도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에서는 연말 선거 때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일꾼의 자격에 가장 합당한 사람을 뽑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전 선거운동을 일절 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꾼이 되고 싶은 마음이 과하여 돈이나 선물을 나눠 주거나 식사 대접을 한다면, 명예욕이라는 사심으로 인해 정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혹여 이러한 사람이 뽑혔을 때에는 뽑힌 사람도, 그 해당 기관이나 선교회도 연단을 받게 됩니다. 사단에게 시험받을 수 있는 올무거리를 줬기 때문입니다.

일꾼들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룰 때도 사심이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많은 열매를 내고 싶은 마음이 과하여 인간적인 방법들을 동원하게 되면, 정도를 벗어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서로 간의 화평을 깨기도 합니다. 성령의 주관과 인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 가운데 일을 계획하고 추진한다면, 이는 하나님보다 내가 앞선 것입니다. 그러면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낼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손해를 끼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일꾼들은 내 의와 틀까지도 온전히 버리고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길로 가는 것이 바로 정도를 걷는 것임을 반드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음 또한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심 하나만 버려도 온전히 정도를 걸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보장하시고 축복의 열매를 딸 수 있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사심이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무리 정도를 알려 줘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뿐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얻고자 하고, 갖고자 하는 것을 위해 어떤 방법이든지 동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비춰 볼 때 불순종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 남선교회 성도님들은 오직 순종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열매만 맺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해야 합니다
사심을 좇는다는 것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사심을 버리고 정도인 하나님의 뜻을 좇는다면, 이는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렇게 아버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것은 온전한 순종을 위한 조건이 됩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던 믿음의 선진들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의 목숨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기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목숨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기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렇게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아무 생각도 동원하지 않고, 미세한 성령의 음성에도 바로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명하시며,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대로 순종할 때 축복을 주십니다. 더욱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더욱 믿음이 성장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다시금 더 큰 일도 명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순종과 축복이 반복되면서, 그는 점점 더 축복을 받으며 믿음도 성장하게 됩니다. 반면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려고 어떤 것을 명하셔도 순종하지 않으니 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안 주는 것이 아니라, 주려 해도 본인이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무조건 순종하며 더 큰 축복을 계속 받아 나가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사무엘하 23장에 보면, 다윗을 위해 목숨을 걸고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온 세 용사가 나옵니다. 다윗은 그들에게 무엇을 명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세 용사는 다윗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다윗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고자 생명을 건 행함을 보였습니다. 우리 남선교회 성도님들과 모든 성도님들도 이러한 온전한 순종의 행함으로 아버지 하나님 앞에 기쁨이요 자랑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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