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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온전한 믿음
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히 10:22 날짜 2010.03.07
이 예배는 2010년 남선교회 헌신예배입니다. 이 헌신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축복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헌신 예배를 준비하신 모든 헌신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여러분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 가족들의 삶을 책임지는 머리입니다. 가장에게 중한 질병 같은 어려움이 생기면 마치 집의 기둥이 흔들리는 것처럼 온 가족이 함께 고통을 받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이나 아내 되신 여 성도님들은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만큼이나 간절하게 가장을 위해 항상 간구하지요. 가정에서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남선교회가 큰 힘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기둥같이 든든한 영적 장수들이 되어 여러분이 "으쌰" 하고 한번 힘을 모으면 큰 일들도 거뜬히 이뤄낼 수 있어야 하지요. 어떤 문제 앞에서도 "우리 남선교회가 능히 감당할 수 있나이다" 하고 담대하게 나설 수 있어야 하구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 수없이 설명했고, 강조하며 또 강조해 온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했지요. 열매를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악을 벗어 버리고 성결되어서 영적인 권세를 받아야 한다 했구요. 물론 지금까지 여러분은 열심히 믿음을 키워왔고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노력하고 있다는 것과 영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여러분이 영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영육 간에 모든 분야에서 열매가 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모든 시험 환난이 떠나고 여러분이 축복의 간증만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오늘 헌신 예배의 제목도 온전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냥 큰 믿음, 좋은 믿음 정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온전한 믿음을 이루기 원하시지요. 오늘 말씀을 들을 때 듣고 은혜받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여러분의 마음을 참마음으로, 여러분의 믿음을 온전한 믿음으로 변화시키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 축복의 간증이 넘치며 천국에서도 존귀한 자리에 이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했습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세 가지를 말씀드릴 때 자신을 잘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이 여러분 안에 진정 얼마나 맺혔는지 깨우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양심의 악을 깨닫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양심의 악을 깨닫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과정입니다. 자신의 악을 발견해야 버릴 수 있고, 버리는 만큼 온전한 믿음에 다가갈 수가 있지요. 오늘날 악에 악이 더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악한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나는 죄짓지 않고 산다, 나름대로 선하게 산다 할 사람들도 많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성령의 역사 속에 말씀으로 자신을 조명함으로 양심의 악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죄라, 악이라 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 보면 죄와 악인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도 자신의 악을 잘 깨닫지 못한다면 그만큼 믿음의 성장이 더딥니다. 또 깨달은 것을 버리기 위한 노력이 없어도 믿음이 성장할 수가 없지요. 아무리 많은 말씀을 듣고 안다 해도 자신의 악을 버리지 않으면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지금부터 대표적인 악의 속성 중 세 가지를 설명할 때 각자 양심의 악을 얼마나 깨닫고 버렸는가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사심과 욕심에 대한 분야입니다.
여기에는 물질적인 것은 물론 명예와 권세에 대한 욕심도 다 포함되지요. 자존심, 자신이 높임 받고 인정받으려는 마음, 자기 의견과 취향을 고집하는 마음, 내 것, 내 가족 등을 더 중요시하는 마음 이런 사사로운 마음도 다 포함이 됩니다.
사심과 욕심이 있으면 여기서 많은 악이 파생되어 나오지요. 욕심을 채우려고 하다 보면 남을 속이기도 하고 자기 유익만 취하기도 합니다. 원하는 대로 욕심을 다 채우지 못하면 그로 인해 시기, 질투가 나오고 미움과 살인, 분냄과 다툼도 나오지요.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4~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욕심과 사심을 얼마나 버렸는지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노력 없이 취하려는 마음은 없는지 남들이 좋은 것을 누리는 모습을 볼 때 저것이 내 것이 되면 좋겠다 하는 마음은 없는지 하나님의 나라보다 나 자신과 내 가족, 내 유익을 앞세우지 않는지,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보다 자신의 유익을 먼저 구하지는 않는지 이런 것들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정과 욕심이 없는 깨끗하고 청결한 마음을 이루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음으로 간음과 정욕에 대한 분야입니다.
간음은 하나님께서 너무나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물론 남자도 포함됩니다. 간음하는 남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즉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 광고나 화보를 통해서 민망할 정도로 몸을 드러낸 모습을 너무나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정숙하고 깨끗한 것을 추구하지 않고 정욕을 자극하면서 그것이 자랑스럽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세대이지요.
그러면 성결의 복음을 들은 여러분은 이런 것들을 접할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감찰하시며 사람에게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나 눈빛 하나에 담긴 마음도 아십니다. 여러분은 그런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과 행실에 부끄러울 만한 것이 없다" 고 담대히 말할 수 있으신지요? 물론 믿음의 3단계만 되어도 행함으로 간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행위적으로만 범죄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28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마음에 음욕을 품지도 않는 것은 물론 정욕의 근본 뿌리까지 벗어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런 죄성들을 발견할 때 그 죄성을 벗어 버리기 위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했습니까? 또 실제로 얼마나 벗어 버렸는지요? 디모데전서 5장 2절에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이성을 대할 때 어떤 정욕도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대표적인 악의 속성 중에는 변개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 왕이 다윗을 투기하므로 다윗을 죽이려고 집요하게 추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무 죄 없이 쫓겨 다니던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은 사울을 해칠 마음이 없다 하며 사울에게 감동적인 고백을 합니다. 사울도 그런 고백을 들을 때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지요.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미움과 시기가 불일 듯 일어나므로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닙니다. 선한 것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선을 행하겠다는 결단도 하지만 그 마음을 지키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성도들도 아직 영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이런 모습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제 육이 무익한 것을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영으로 들어가기로 결단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면 그 결단이 사라집니다. "작정해서 기도한다, 금식한다" 해 놓고도 곧 마음이 변해서 그만둡니다. 뜨거운 마음에 서원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내가 왜 그런 서원을 했나 고민하는 사람도 있구요.
사람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겠다 해 놓고 얼마 지나면 그 약속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립니다. 이런 변개함이 결국은 다 악에서 나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악이 요동하므로 선을 이루기 원하는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변개함이 많으면 성결을 이루는 데에도 많은 지장이 있습니다. 들은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며 육을 좇으려는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므로 영으로 속히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잠 4:23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여러분이 마음에 정하고 입으로 낸 것은 그대로 지키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음을 지킬 수 있고, 영의 마음을 속히 이룰 수 있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욕심과 사심, 간음과 정욕, 변개하는 마음 이렇게 세 분야를 설명했습니다. 이 세 가지 분야만 점검해 보아도 자기 안에 악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이 세 가지만 버린다 해도 다른 많은 죄악들을 벗어 버릴 수가 있지요.
나무를 뽑을 때, 큰 뿌리를 뽑으면 무수한 잔뿌리들도 함께 뽑힙니다. 이런 것처럼 욕심과 간음, 변개함을 버리면 이와 연결된 많은 죄성들을 함께 버릴 수가 있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부지런히 자신을 점검하고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악을 벗고 온전한 믿음을 가졌나이다" 하고 하나님 앞에 고백할 수 있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본문에 보니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했습니다.

몸을 맑은 물로 씻는 것은 물,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함으로 자신의 악을 벗어 버리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분량이 커지는 과정은 결국 계속해서 양심의 악을 깨닫고 계속해서 물로 씻어가는 과정이지요.
마침내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자신을 씻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 해서 모두가 몸을 맑은 물로 씻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도 "사람이 성결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이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지 죄의 속성 자체를 벗을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성경에 보면 거룩하라, 성결하라 이런 구절들이 곳곳에 있지만 이런 말씀들을 그냥 흘려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교회 다닌다 하면서도 세상 사람과 다름없이 죄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이 성결의 복음을 듣고 권능을 체험할 수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날이 갈수록 세상이 악해질수록 하나님의 참뜻을 선포하는 곳을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아모스 8장 11절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했습니다.

이런 영적 기근 속에서도 여러분은 참된 양식과 생명수를 항상 공급받지요. 이 제단에 선포되는 성결의 복음은 깊은 마음에 숨겨진 악까지 낱낱이 조명하여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혼, 영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어 미세한 죄까지 벗어 버리게 하는 말씀이지요. 또한 여러분은 말씀을 통해 죄를 벗어 버리되 형벌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힘들게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무수한 권능을 체험하였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고 그 사랑과 천국 소망 속에서 버리지요.
육이 얼마나 헛된지를 중심에서 깨우쳐 배설물처럼 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런 진리의 말씀과 권능을 주신 하나님께 중심에서 감사하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넘치는 감사와 소망 속에서 부지런히 맑은 물로 씻고 또 씻어서 속히 온전한 믿음에 이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셋째로 본문에 보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했습니다.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으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지요.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양심의 악을 하나하나 발견해야 합니다. 또 발견하고 깨우쳤으면 불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명심하여 근신함으로 자기를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때로는 힘쓰고 애써서 어느 정도 악을 버린 것 같았는데 동일한 악의 모습이 다시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럴 때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전에도 종종 양파 껍질의 비유를 들어드렸지요. 양파 껍질을 벗기고 또 벗겨도 여전히 껍질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벗겨 나가면 결국은 다 벗길 수 있지요. 이런 것처럼 마음의 악도 버리고 또 버리면 마침내는 온전히 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믿고 자신의 악을 발견할 때마다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서 발견한 것을 벗어 버리면 성결을 향해 한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하지요. 이렇게 감사하며 온전한 믿음을 이룰 때까지 끊임없이 달려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빌립보서 3장 13~14절에 보면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옵니다. 바울은 그토록 큰 권능을 행하고 하나님과 밝히 교통했으면서도 "내가 이만큼 이루었다"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이룬 것들은 잊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단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달려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도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했으니 이제 어느 정도 영에 가깝다"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영으로 쏙 들어가기를 원하시지요.
그러면 혹시 여러분 중에는 자신이 그동안 이룬 것에 만족하여 영적인 성장이 멈춰 버린 분은 안 계신지요? 내가 전보다 믿음이 성장했다, 이제 이렇게 중한 직분을 맡은 일꾼이 되었다, 목자도 나를 아신다, 그러니까 나는 어느 정도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었다 해서는 안 되지요. 내가 이루었다고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예전에 비해 성결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이 미지근하게 식어 버린 경우도 결국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미지근한 신앙이 되면서 열심히 영으로 들어가던 걸음이 늦춰지면 금세 육의 속성이 드러납니다. 교만해져서 자기 의와 틀이 강해지고 다른 사람의 권면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예전 같으면 사명이 하나 맡겨지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쏟았을 텐데 그런 모습이 변질됩니다. 그동안 일해 온 경험이 있으니 지난번에 한 것처럼 하면 되지 하면서 적당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또 예전 같으면 듣는 말씀마다 그대로 순종하려고 최선을 다했을 텐데 이런 모습도 사라집니다.
진리를 들어도 그대로 순종하지 않으며 변명하기도 하고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요. 그러면서 내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나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에 빠져들다가 자기 유익에 안 맞는 일을 만나면 결국 변질되고 배신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의 뿌리를 뽑을 때까지, 영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을 결코 늦춰서는 안 됩니다.

오늘 헌신 예배를 통해 여러분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새롭게 하시길 바랍니다. 흠도 점도 없이 변화되어 사단이 송사할 만한 작은 틈도 주지 않는 우리 남선교회가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영육 간에 풍성한 축복을 받으며 가나안 성전을 이루는 주역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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