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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육과 영
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롬 8:6 날짜 2015.06.0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광의 해 2015년, 남여선교회 헌신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축복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에 임하신 헌신자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지난 5개월 동안 여러분은 이 흐름을 잘 타고 오셨는지요? “온 영의 흐름을 타고 있다”는 말은 결국 “여러분이 변화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진리로 변화되고 있는 사람이라야 “온 영을 이루어 가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온 영의 흐름을 잘 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지난 수년간 각자의 믿음의 분량까지 점검해 주시면서 반석으로, 영으로, 온 영으로 사모함 속에 달려갈 힘을 주셨지요.

그러나 이렇게 받은 분량의 90% 이상이 목자가 채운 공의에 의한 것이고, 나머지를 여러분이 채워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여러분도 잘 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을 점검하고, 속히 온전한 열매로 나올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온 영의 흐름을 잘 타기 위해 점검해 볼 것은 첫째, ‘나를 희생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가? 아니면 자기 유익을 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남보다 좋은 것을 갖고 싶어 하고, 그러지 못하면 불편하여 얼굴색이 변하며 다툼을 일으키기도 하지요. 예전에는 여러분도 대부분 이렇게 자기 유익을 구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모습으로 많이 변화되어 왔지요. 특히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는 아브라함의 고백을 이루고자 기도해 오신 분들도 많이 있으실 것이고요.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함께 거할 때 롯도 아브라함으로 인해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의 가축을 한 지역에서 다 수용할 수가 없을 정도였지요. 결국 서로 갈라지게 되었는데 이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좋은 땅을 먼저 선택하도록 기회를 주었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이 양보는 했지만, 사실 마땅한 도리를 생각한다면 롯이 먼저 선택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마땅히 삼촌이 먼저 선택하셔야지요.” 이렇게 양보해야 하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먼저 선택한 조카에게 일말의 불편함도 없었지요.

또 ‘내가 선하게 양보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더 큰 것을 주시겠지’ 하면서 양보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사랑하는 조카가 좋은 땅을 택했으니 그 자체로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했지요.

여러분도 범사에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진심으로 상대가 잘되는 것을 기뻐하십니까? 물론 성결의 복음을 들으신 여러분이라면 상대를 해치면서까지 내 유익을 구하는 경우는 당연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녕 아브라함과 같이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자체가 행복한지 아니면 들은 말씀이 있으니 노력은 하지만 여전히 내 유익을 구하는 마음인지 잘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남의 눈치가 보여서, 말로는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이것을 제발 상대가 고르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더 좋은 것을 갖고 싶다.’ 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상대가 먼저 좋은 것을 선택하면,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요. ‘어차피 내가 양보하겠다고는 했지만, 저분은 자기도 진리를 들어서 알면서 어떻게 먼저 좋은 것을 택할 수 있나?’ 이러면서 내가 먼저 양보했기 때문에, 그래서 손해를 감수했기 때문에 ‘나는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선한 마음”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속으로는 여전히 자기 유익을 구하고, 불편해하며 ’상대가 선하지 않다‘고 판단까지 하면서 자기 모습은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는 자기 유익을 구하면서도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포장하기도 합니다. “당신은 오른편을 택하는 것이 유익하겠기에 당신을 위해 나는 왼편을 택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실상은 자기가 좋아서 왼편을 택했으면서 말로는 상대를 위하는 척, 상대에게 양보한 척하는 것이지요.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늘 섬기고 양보만 했는데 그러다 보니 높아지는 게 아니라 내가 양보하는 걸 다들 당연하게 여기는구나, 저 집사님은 자기 유익만 구하면서 윗분들에게만 잘 섬기고 붙좇는데도 오히려 더 사랑받고 인정받는구나. 언제까지 나만 이렇게 손해를 봐야 하나?’ 하고 서글픈 마음과 불만이 쌓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입니까? 영입니까? 먼저 섬기고 양보했으니 영입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겉으로만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는’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십니다. 진정으로 온 영의 흐름을 타고자 한다면 겉으로만 진리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 진리를 이루어야 하지요. 섬기는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의 마음 자체를 이루어야 영이신 하나님을 닮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온 영의 흐름을 잘 타기 위해 점검해 볼 것은 둘째, '나는 아버지 것을 제일로 여기는가?. 아니면 내것을 먼저 생각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의 사역을 예비한 사람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구별되어 살았고 어떤 세상 즐거움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성장하자 곧 혼탁한 세상을 떠나 빈들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를 기다렸지요.

마침내 때가 되어 열정적으로 회개를 선포하고 사역을 시작하니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니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많이 옮겨갔지요. 얼마 후에는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샀고 감옥에 갇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때 요한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육의 마음이 있었다면 서글픔과 낙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일평생 좋은 것을 누리지 않고 하나님께만 온전히 헌신했는데, 이제 내게 남겨진 열매는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 나를 붙좇았던 제자들이 나를 떠나 예수님께 갔고 이 젊은 날에 감옥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니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희생했단 말인가?' 이렇게 한탄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에게는 이런 마음이 전혀 없었지요. 요 3:29에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했지요.

심지어 30절에 ‘그는(곧 예수님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까지 말합니다. 자신이 흥하든지 쇠하든지 거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이뤄지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영을 사모하는 여러분이라면 대부분이 이처럼 하나님을 제일로 여기고자 할 것입니다. 마 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자신의 소원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귀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중심을 기뻐하시므로 다른 소원들도 속히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만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어떤 경우는 영을 사모한다 하면서,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 하면서 실상은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경우가 있지요.

예를 들어, 물질과 시간을 드려 희생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 중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합니다. 집이나 교회에서, 다른 사명을 핑계 삼아 하기 싫은 일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지요.

막 7:11에 보면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했습니다. 부모에게 도리를 다하지 않으면서 '나는 하나님께 드렸기에 부모님께 드리지 않아도 된다' 하는 이들을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결국, 교회에서는 영을 사모하는 것 같지만 가정이나 직장에서는 영광 돌리지 못하고, 육으로 심어 온 열매가 드러났을 때,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느라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는 없다는 말이지요.

또 “하나님의 것을 앞세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자기의 영광과 자기만족을 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결과를 보면 압니다. 자기의 충성,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서운하고, 자기가 기대했던 열매가 없으면 낙심하지요. “나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드렸는데 결국 내게 돌아오는 대가가 이것인가?” 합니다. 사람들에게만 서운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도 은근히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요.

정녕 하나님의 것을 제일로 여기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고 절망하는 육의 모습이 없습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는 말씀대로 기쁨과 감사의 생각만 하지요. 내 영광, 내 응답, 내 축복, 이런 것보다 아버지의 일이 이뤄진 것만으로 기뻐할 수 있는 이 마음이, 바로 온전한 영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온 영의 흐름을 잘 타기 위해 점검해 볼 것은 셋째, “모든 일을 배려와 섬김으로 하는가? 의무감이나 타성으로 하는가?”입니다.

비유를 들어 보지요. 한 어머니가 집안 일을 하는데 탄식이 절로 납니다. ‘아침부터 기도회 하고 심방까지 갔다가 오면 그 다음에는 나도 좀 쉬고 싶은데, 그래야 철야 기도도 충만하게 할 텐데, 청소하고 돌아서면 아이들이 어지럽히네. 남편은 자기만 피곤한 줄 아는가? 내 입장은 생각도 안 해 주고 집안 일을 도와주기는커녕, 일거리만 더 늘려 주네. 날마다 무슨 반찬을 하나 고민해야 하고 집안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내가 하녀도 아니고, 일하는 기계도 아닌데,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이러면서 청소도 눈에 보이는 곳만 치우고 며칠째 같은 반찬과 국을 데워서 대충대충 식사 준비를 합니다. 아이들이 반찬 투정이라도 하면 “불평하려면 먹지 말아라! 옛날에는 없어서 못 먹었다” 하고 야단치지요.

반면에,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생각을 하는 어머니도 있습니다. ‘일찍부터 기도회도 충만히 했고, 아버지 은혜 가운데 심방도 행복하게 했고, 이제 집을 깨끗하게 잘 청소해 놓으면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집에 들어올 때 쾌적하고 아늑하겠지? 오늘은 어떤 반찬을 해 주면 우리 식구들이 행복하게 잘 먹을까?’

이렇게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찬양을 부르며 청소를 합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다양하게 요리하고 그릇에 담을 때도 입맛을 돋구려고 야채로 예쁘게 장식까지 합니다. 기왕이면 기분 좋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담아 일하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니, 어쩔 수 없어서 한다’거나 ‘늘 하던 일이니 빨리 해치우자’ 이런 것이 아니라 ‘어찌하면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 줄까’ 하고 가족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하지요.

여 성도님들의 예만 들었지만, 남 성도님들도 ‘내가 어떤 마음으로 가족들을 대하고, 직장 동료를 대하는지’ 적용해 보실 수 있겠지요? 집안 일이나, 직장 일이나, 하나님의 일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행사가 끝난 후 뒷정리를 할 때도 사람마다 마음의 향이 다르지요. ‘나는 매일 이렇게 봉사만 하다 보니 앉아서 마음 편히 은혜 받지도 못하는데 그런다고 누가 인정해 주는 것도 아니고 다음에는 이 사명을 안 맡아야 되겠다’ 하거나 ‘내 책임이니까 청소를 하기는 하지만, 대충 치워 놓고 얼른 쉬어야지’ 하면서 건성 건성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불평 없이 성실하게 감당하긴 하지만 ‘늘 하던 일이니까’ 하고 별 의식 없이 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앞의 사람들보다는 좀 낫지요.

그러나 사랑과 섬김으로 행하는 사람이라면 행위로만 아니라 마음의 향으로 봉사합니다. ‘아버지의 소중한 성전이고 사랑하는 성도들의 모임장소인데 내가 깨끗하게 치우고 잘 정리해 놓아야지 그러면 다음에 사용하는 성도들이 더 쾌적하고 즐겁게 사용할 수 있겠지’ 이런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영의 흐름을 타기 원하시는 여러분이라면 교회에서 큰 사명을 감당할 때만 아니라 범사에 이런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하루하루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커서 그 은혜와 사랑을 갚기 원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엡 6:6-7에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곧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했습니다. 범사에 주를 대하듯, 배려와 섬김으로 행하여 더 신속히 온 영의 흐름을 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영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시라면, 목자라면 이럴 때 어찌하실까? 내가 지금 대하는 이 사람이 주님이라면 내가 이렇게 대할까?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을 주님께서 보고 계신다면 어떻게 할까, 이런 시각으로 늘 자신을 점검하며 내가 좀 낮아지고 손해 보더라도 아버지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해서 행복하게 진리를 택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영과 온 영의 마음입니다.

오늘 들은 말씀을 명심하여 진심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하나님의 것을 제일로 여기며 범사에 섬김과 배려로 행하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 가지만 명심하여 행하신다 해도 2015년이 마무리 될 즈음에는 ‘아, 영의 길이 이렇게 쉬운 것이고 이렇게 행복한 것이었구나’ 하며 풍성한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 오실 때까지 범사에 영을 택해 나갈 뿐 아니라, 온 영과 혼과 몸을 흠 없이 보존할 수 있는 헌신자 여러분과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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