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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11:25-26 날짜 2001.04.15
오늘은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절이란 인류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우리 주님의 부활로 인해 부활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더욱 견고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1. 죽었던 나사로를 다시 살리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예수님
본문 말씀의 배경이 되는 사건은 베다니라는 동네의 나사로라 하는 사람이 죽은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을 심히 사랑하고 붙좇았던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로 그 가족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편안하게 섬겨 드렸던지 예수님께서 베다니 근방을 지나시는 길이면 이들의 집에 묵으시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시고 말씀을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마리아와 마르다가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며 예수님께 급한 전갈을 보내 왔는데 그들의 오라비 나사로가 갑자기 병이 들어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시다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말씀하시며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는 이미 나사로가 장사된 지 나흘이나 지났습니다.
슬픔에 젖어있던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으면서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나사로가 살아 있기만 한다면 아무리 중한 병이라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고쳐 주실 것을 믿었지만, 이미 죽었으므로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죽은 나사로 때문에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시며 예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보고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으로 가셔서 “돌을 옮겨 놓으라” 말씀하셨는데 이 때까지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시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 조차도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썩은 냄새가 나나이다” 말할 정도였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고 그들이 순종하여 돌을 옮겨 놓은 것을 보신 후,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하셨는데 과연 어찌 되었을까요? 천하 만물의 창조주시요 모든 것의 주재가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여 이미 썩어졌던 나사로의 육체는 순간에 회복되었고 그 영혼이 몸으로 돌아와 스스로 무덤의 입구에 나타난 것입니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으로 싸여 있으니 그 순간 숨을 죽이고 무덤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을까요? 열광과 환호는 물론 이곳저곳에서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하며 영광을 돌리는 소리와 함께 너무 기뻐 어찌할 바 모르고 서로 얼싸안기도 합니다. 혹은 달려가서 나사로의 몸에 감겨 있는 수의를 풀어 주고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나사로의 얼굴을 만져보며 팔과 다리를 만져봅니다. 누구보다도 나사로의 누이들인 마르다와 마리아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쁨으로 달려가 그를 끌어안고 예수님께로 데려와 엎드려 감사를 드리니 슬픔과 애통의 장례 자리는 분위기가 180도 변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큰 잔치로 변해버렸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살아나는 영광의 순간을 목도한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었으며 이 부활의 소식은 순식간에 유대 전역으로 전파되어 하나님께서는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2. 십자가에 죽으신 후 다시 살아나심으로 부활의 소망을 주신 예수님
이처럼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부활에는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이 있습니다. 우리 사람은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범죄로 인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여 영이 죽게 되었지만,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에게는 마음에 성령이 오심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나게 되는데 이것을 영적인 부활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주님을 믿고 죽어서 무덤에 장사된 사람들은 주님께서 공중 재림하실 때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고, 살아서 주님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육적인 부활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죽음이 없었는데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모든 사람의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롬 6:23). 그래서 아무 죄와 허물이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 주셨습니다.
로마 군병의 채찍이 온몸을 휘감을 때에도 예수님은 오직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참으셨으며 굵은 못이 손발을 관통하며 손가락 만한 가시가 날카롭게 이마를 파고들 때 그 고통 또한 우리를 위해 달게 받으신 것입니다. 이는 바로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며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며 예수님께서도 이미 이것을 아시고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드리고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는 과정이라 해도 사랑하는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마치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3:44에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했고, 마태복음 27:51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이 끊어지는 순간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졌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심한 고통을 받으심으로 그로 인해 해조차 빛을 잃고 온 땅이 캄캄해지며 지진이 일어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요한복음 11:25-26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며 주를 믿는 자는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부활의 소망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통해 부활의 모델을 보여 주셨고 또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도 부활하실 것을 여러 차례 말씀해 주셨지만, 이 말씀을 영으로 깨우치지 못했던 제자들은 수많은 기적을 보고 들었음에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깨닫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예수님이 운명하시자 예수님께 은혜를 받고 붙좇았던 여인들과 제자들은 마치 암흑 속에 갇힌 것과 같았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제자들은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거나 슬픔에 빠진 여인들은 마음 둘 곳조차 없어서 하염없이 울고 있을 뿐입니다. 날이 밝으면 예수님의 무덤에라도 가려고 기다리는데 그 밤은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게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지 사흘만에 통쾌하게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낙심하여 어깨가 늘어졌던 제자들도, 흑암과 같은 슬픔에 빠졌던 여인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로는 완전히 변화되어 참된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죽었다가 다시 사는 부활을 믿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전에 예수님께 들었던 모든 말씀들은 물론 영원한 생명, 천국의 영광을 약속하신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도 확고하게 믿을 수 있었습니다.
한 예로, 십자가를 거꾸로 질 때 베드로의 마음 속은 물론 펄펄 끓는 기름가마에 던져지는 사도 요한의 마음 속에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확실한 부활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영원한 생명과 영광의 약속으로 가득 찬 사도 바울에게는 낙심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복음이 전파된 후 오늘날까지 수많은 성도들이 배고픔과 목마름, 그리고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하면서 예수 이름 까닭에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았지만 천국을 바라보는 소망으로 인해 오직 불 같은 열정과 사자 같은 담대함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9-20에 보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을 따라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 땅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4. 참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은 가지가 되어야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어
처음 성령을 받고 구원받는 순간에는 마치 나사로가 부활하는 것을 볼 때 환호하는 마리아와 같이 기쁨이 가득 넘쳤을 것입니다. 이 기쁨을 끝까지 붙잡고 승리하여 마지막 날을 맞이할 때에는 영광스런 찬송이 온 하늘에 가득한 가운데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빛나는 형상으로 바뀌어 구름 위로 들리어 올라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수고와 눈물을 위로하시고 그 후로는 날마다 잔치를 벌이면서 금은보석으로 화려하게 지어진 천국 집에서 끝없는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부활의 소망으로 사는 사람, 다실 오실 주님을 소망하고 사는 사람이 바로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힘든 연단 속에서 정금같이 나오며 다시 오실 주님께서 상 주시리라 믿고 달려가는 사람이 바로 믿음 있는 사람이며 참포도나무이신 주님께 굳게 붙은 가지가 되어야 주렁주렁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과 재림을 바라보는 소망이 적은 사람들은 이 힘든 연단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므로 세상으로 달아나 버리거나 혹은 다른 길을 궁리하여 연단을 피해보려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길을 포기해 버리거나 성결되는 연단을 거부해 버린다면 더 이상 참포도나무이신 주님과 연결되지 못하고 포도나무의 원줄기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가 말라버리는 것처럼 부활의 소망은 물론 재림의 소망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오직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며 죽음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영적 장수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앞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고 십자가의 수치를 감내하시므로 부활하신 후에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는 이름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소망을 가졌다면 우리도 주님의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합니다(롬 6:5, 갈 2:20). 죄 가운데 거하던 옛사람과 자아가 다 깨어지고 정과 욕심을 다 십자가에 못박아 버림으로(갈 5:24) 주와 함께 죽은 사람이라야 또한 주님과 함께 부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것을 바라보지 말고 위에 것을 바라보며 부활의 소망 가운데 항상 승리하여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는 축복이 넘쳐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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