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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의 의미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 14:6 날짜 2015.04.05
기독교에서 ‘부활’이란 단순히 사람이 죽었다 살아나는 차원이 아니라 죽었다 다시 살아나 이후로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또한 믿음으로 주님의 부활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부활절을 맞아 부활의 의미를 온전히 새겨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 아름다운 열매 맺으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1. 부활에 담긴 의미

첫째로, 부활에 담긴 의미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죽으셔야 했지요. 아무리 다시 산다 해도 가시관을 쓰고 손발에 못 박힌 채 십자가의 고난을 이겨내며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다 내어주는 죽음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기꺼이 그 십자가를 지신 것은 영혼들을 향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요 3:16).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한 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 독생자 아들을 처참하게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까지 우리들을 구원하시려는 아버지 하나님의 절절한 사랑의 증거이지요.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난과 수모를 무릅쓰고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생각할 때마다 그 안에 담긴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독생자 아들의 생명과 맞바꿔 나를 구원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자신의 생명과 맞바꿔 나를 살리신 주님의 사랑을 말입니다. 주님의 이러한 사랑이 있었기에 아무 죄없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사랑이 승해지고 승해지면 두려움 없는 온전한 사랑에 이를 수 있습니다. 결국은 생명까지라도 내어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에 이르게 됩니다. 저도 지금까지 이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여러분을 향한 사랑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의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향한 사랑 때문이지요.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아서라도 내가 이렇게 공의를 채워서라도, 여러분이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천국 새 예루살렘을 소유할 수 있다면 세상의 구원받지 못할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 품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기꺼이 이 잔을 마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부활에 담긴 의미는 ‘소망’입니다.
만약에 이 땅의 삶 이후의 또 다른 삶이 없다면, 다시 말해 부활이 없고 이 땅의 삶으로 모든 것이 끝나고 만다면 부활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며 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불쌍할 것입니다(고전 15:19). 그러나 실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며, 축복받은 사람들이지요. 이 땅의 삶을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을 때 가장 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예비된 내세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일요일이면 산으로, 들로, 강으로, 바다로, 또 세상 곳곳으로 육적인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 떠납니다. 혹은 한 주간 쌓인 피로를 푼다고 하며 하루 종일 집에서 빈둥거리며 쉬거나 잠을 자기도 하지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자신을 가꾸고 꾸미며 자신의 삶에 투자합니다. 시간만 있으면 자신의 건강을 위해 투자하거나 자신의 안위와 즐거움을 위해 투자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자신의 미래를 대비해 가기도 하지요.
그런데 주님을 믿음으로 장차 부활하여 영원한 천국에서 살 것을 진정 마음 중심에서 소망하는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내 시간도, 물질도, 몸도, 마음도 모든 것을 오직 주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립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크면 클수록 이 땅이 아닌 하늘나라 내 집에 더 많이 쌓아가는 것이지요.
이러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주님의 부활 때문입니다(벧전 1:3). 만일 이 소망이 없었다면 우리도 이 땅의 삶만을 목표하여 부귀영화와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아갔겠지요. 가진 사람이든 못 가진 사람이든 조금이라도 더 갖고 누리고자 아등바등 몸부림치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많은 것을 누리고 즐겨도 결국 생명이 다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오직 자기 유익과 쾌락만 추구할 것입니다. 누가 과연 선하게 진실하게 살고자 하며 희생하며 숭고한 삶을 살고자 하겠습니까? 소망이 없이 당장의 현실만을 바라보며 마치 짐승같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소망이 없으면 현재의 삶을 성실히 쌓아갈 힘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을 통해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을 소망하게 된 우리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이 땅에서의 삶이 힘들고 버거운 것이 아니라 행복할 수 있습니다. 또 방탕하고 게으르게 사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더 반듯하게 더 아름답고 예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쌓아가는 하루하루가 장차 천국에서 내 상급으로 내 영광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죄의 종이 되어 영원한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소망이 생겼고 그래서 하루하루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셋째로, 부활에 담긴 의미는 ‘믿음’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했습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왜 우리의 믿음이 헛것입니까?
주님의 부활은 구세주로서의 완성이요, 주님을 구세주로 믿는 자들 또한 사망 권세로부터 건져낼 수 있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구원받는다고 하는 이 믿음이 헛것이 되고 만다는 말이지요. 바로 주님의 부활이 있었기에 우리의 죄가 사함 받는 구속사역이 완성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에는 바로 주님의 부활하심을 믿는다는 의미가 함께 담겨 있지요.
그래서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말씀합니다. 입술로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믿습니다.” 고백한다고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지요. 또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것을 믿습니다.” 입술로만 고백한다고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할 뿐만 아니라 주님의 부활을 마음으로 믿을 때 구원을 얻는다.”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을 마음으로 믿지 못하고 단지 입술로만 “믿습니다.” 한다면 결코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지요. 죽어도 다시 사는 것을 그리고 심판이 있고 영원한 내세가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배우고 들어도 부활이 마음에서 믿어지지 않으니 들은 말씀들을 그냥 흘려버리게 되지요.
확실한 부활의 신앙이 있을 때만이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가 있고, 그래야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려면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려면 즉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도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해야 하지요(롬 6:5~7). 즉 예수님의 죽으심에 동참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동참하는 자가 되는 길입니다. 바로 ‘자기’라는 것이 죽는 것이지요.
‘자기’란 자신 안에 있는 모든 죄악은 물론이요 내가 옳다 했던 의와 틀, 자기적인 사람의 생각과 이론 등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자기적인 것들을 죽일 때만이 내 안에 진리가 임하게 되지요. 그리고 이렇게 진리가 임해 가는 만큼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도 주어집니다.
이 믿음 즉 영적인 믿음이 부활을 마음에서 믿을 수 있게 하지요. 심판이 있음도, 부활 후에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도 믿어지는 것이며, 이 땅에서 행한 대로 갚아주시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도 다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대로 살아가게 되지요. 이렇게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 그 믿음이 여러분을 구원하여 부활에 동참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셨다 다시 사신 부활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3년 부활절은 참으로 의미 있는 날이었습니다. 3개월의 유예 기간을 마무리하며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지요. 꺼져 가는 불씨처럼 성령이 소멸되어 가던 중에 다시 생명의 불씨가 타오르게 된 분도 있었습니다. 아예 꺼져버린 불씨와 같다가 다시 그 불씨가 살아난 분도 있었지요.
주의 종으로서, 레위족으로서, 일꾼으로서, 도저히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다시금 기회를 얻어 힘을 내어 갈 수 있는 능력을 받은 분도 있었습니다. 물론 잘 달려가던 분들도 계시지만 그러한 분들 역시 그날을 통해 다시 한 번 힘을 얻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새롭게 태어난 것과 같은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부활의 역사를 맛보게 하신 것입니다.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체험, 거의 죽어가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체험, 성령의 기운으로 다시 태어난 듯 충만케 되는 체험이지요.
그런데 죽었던 영이 살아난 사람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영이 죽고 혼이 주인이 되어 원수 마귀 사단에게 주관받던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살아난 영이 다시 주인의 자리를 찾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영이 살아난 사람의 증거이지요.
영이 살아난 사람은 반드시 성령으로 영을 낳아갑니다. 삶 가운데 성령의 열매, 빛의 열매 등 진리의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히게 되지요. 그래서 바로 열매를 보면 영이 살아나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2013년 부활절 이후 2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여러분은 어떤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까? 그날의 다짐, 그날의 각오, 그날의 결단이 지금 어떠한 열매로 나오고 있는지요?
죽으셨다 다시 사셔서 구세주요,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셔서 영광의 열매로 나오신 주님처럼 여러분 모두도 아름다운 영광의 열매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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