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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 6:53-55 날짜 2016.03.2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천여 년 전 어느 새벽 미명 무거운 걸음으로 무덤을 찾아가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여인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분이 장사되어 있었지요. 여인에게 가장 소중한 분, 살아가는 소망이었고 전부였던 분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여인에게는 더 이상 소망이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사는 심정이었고, 겨우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분의 무덤을 찾아가는 것뿐이었지요.

그런데 처참한 심정으로 무덤에 이른 여인은 상상도 못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바로 죽어서 자기 곁을 떠난 그분이 다시 살아나 눈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 여인은 여러분도 짐작하시는 대로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지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마리아의 기쁨은 단순히 주님을 만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장차 자신도 부활하여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는 천국의 소망까지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의 기쁨은 대예배를 통해 들으신 것처럼 오늘날 저와 여러분도 누릴 수 있게 되었지요. 이 시간 부활의 의미를 세 분야로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을 통해 부활의 기쁨을 더욱 풍성히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부활은 첫째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경작을 시작하신 후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아픔을 겪으셨습니다. 경작을 이루신 이유는 참된 자녀를 얻어 영원히 사랑을 나누면서 살기 위해서였지요. 그런데 인생들은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어둠과 죄악의 길로, 사망의 길로 빗나가 버렸습니다. 말 1:2에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한다고 하나님께서 탄식을 하시지요.

이런 인생들의 눈앞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을 다시 보여 주시고자 큰일을 계획하십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롬 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녀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아비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독생자의 모습을 아버지는 홀로 애통하며 견디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 끝에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진정 죄가 없으시다는 증거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불의한 자들의 손으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곧 예수님을 사망 권세 아래에 가두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계의 법칙에 의해 죄인들에게는 사망의 형벌이 임합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에게는 사망의 권세가 미칠 수 없었지요. 예수님은 오히려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부활하신 것입니다.

곧 주님의 부활은 이렇게 아무 죄도 없으신 주님께서 우리 죄를 인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뚜렷이 나타내 보이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 죽음은 바로 죄인 되었던 저와 여러분을 용서하시기 위함이며 사망의 형벌에서 건지시기 위함이지요. 이처럼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사랑과 나를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아버지의 사랑을 더욱 깊이 새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의미는 둘째 우리에게 주신 소망입니다.

마리아가 만난 부활의 주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와 너무도 다른 모습이셨습니다. 빛난 영광으로 입혀지셨기에 처음에는 누구신지 알아볼 수도 없었지요,
우리도 부활 때는 그렇게 변화됩니다. 신령한 부활체의 몸으로 변화되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최고의 처소에 들어가 고통도 슬픔도 없는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선물입니다.

이 땅에서는 가족이나 주변 환경 때문에 자신의 간절히 바라는 것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가난해서, 배움이 적어서, 몸이 연약해서 자신의 꿈을 가질 수조차 없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부활의 날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 주를 위해 살아간 사람은 그 소망을 주님께서 이뤄 주십니다. 천국 설교 때도 소개해 드렸지만 운동을 좋아하던 사람이 주의 일을 위해 운동을 포기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여유 시간조차 주를 위해 헌신하며 내어드렸을 때 주님께서는 하나하나 기억하여 천국에서 갚아 주신다 했지요.

여러분은 어떤 집을 원하십니까?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으신지요?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 그 이상의 것을 천국에서는 마음껏 가지고, 마음껏 누릴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의미는 셋째 신앙생활을 기쁘게 할 수 있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진리 가운데 살 때는 들어와도 나가도 복주시고 꼬리 되는 것이 아니라 머리 되게 하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지요.

그러나 온전해지기까지는 변화되기 위해 여러 가지 연단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에게 잘못이 없는데도 주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아담에게 땀 흘려 토지를 갈아야 소산을 먹을 수 있다 하신 말씀대로 어차피 경작 받는 동안 이 땅의 삶은 수고와 고난의 일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또 육의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는 힘들고 어렵게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요. 남들은 쉬고, 일하며 자기를 위해 투자할 때 여러분은 휴일에도 예배드리며 봉사합니다. 날마다 두세 시간씩 힘쓰고 애써 기도하지요. 열심히 벌어서 자기가 누리며 쓰기보다 아버지 앞에 드리기를 즐겨하고요.

적당히 타협하고 살면 편할 것 같은데 그러지 않고 진리를 지키다가 고난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고전 15:19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했겠습니까.

그러나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이 땅의 날들을 힘들다. 어렵다. 하지 않습니다. 롬 8:18에 말씀한 대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일 매 순간 그 영광을 바라며 살아갑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우리를 데리러 오실 그날을 기다리지요. 그때는 우리가 이 땅에서 주를 위해 수고하고 희생한 모든 것이 위로와 상급으로 갚아질 것이고, 이후로 우리는 해처럼 밝은 영광 중에 주와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

바로 이 마음이 기다림이라는 찬양의 가사에 잘 표현되어 있지요. “내 마음에 소망 있어 주를 다시 뵈는 소망 그날을 마음에 새기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요. 내 마음에 기다림 있어 주님 나를 데리러 오실 기다림 그날을 마음에 그리며 오늘 내일을 살아가요. 참된 사랑 기다리는 기쁨 누구도 빼앗지 못해요. 주님을 마음에 그리며 오늘 하루도 살아가요. 내 기다림 결코 길지 않아요. 내 소망도 결코 변치 않아요. 내게 주신 주 향한 그리움 내가 살아가는 이유”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이런 기다림 속에 행복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부활은 첫째 아버지의 사랑이고, 둘째 우리에게 주신 소망이며, 셋째 기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힘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이 있는 우리가 이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인자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 6:53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54절에는 그렇게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시는 사람이라야 마지막 때 부활에 동참할 수 있음을 알려 주셨지요.

인자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곧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는 것입니다.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말씀을 부지런히 행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도 수분을 섭취해야 영양분이 흡수되고 노폐물은 배설됩니다.

그런 것처럼 부지런히 말씀을 배우고 익히며 배운 대로 행할 때 그 안에서 비진리가 빠져나가고 진리가 채워집니다. 혈기가 빠지고 온유함이 채워지며 미움이 빠지고 사랑이 채워집니다. 교만이 빠지고 겸손과 섬김이 채워지지요.

이렇게 말씀을 양식 삼아 나가고 행해 나갈 때 성령으로 거듭나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마지막 때 부활에도 동참할 수 있고요. 이 사실을 기억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제정해 주신 것이 바로 성찬예식입니다.

오늘도 떡과 포도즙을 대하실 때 금요철야 때 들으신 예수님의 고난을 더욱 깊이 상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정녕히 참된 자녀의 형상을 찾아 주님의 그 은혜를 보답하겠다고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다짐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해처럼 빛나는 영광으로 부활의 날에 동참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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