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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풍성하신 하나님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왕상 17:12-16 날짜 2011.11.20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하나님의 신성이 깃든 땅에서 작은 씨앗이 싹트고 자라나 풍성한 열매를 주렁주렁 맺었습니다. 이처럼 풍성한 은혜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며 구약 성경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를 통해 축복의 비결을 살펴보겠습니다.

1. 극심한 가뭄 속에서 풍성한 축복을 받은 사르밧 과부

시돈의 사르밧이라는 지방에 살던 한 과부는 극심한 가뭄 속에서 풍성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가뭄이 끝날 때까지 가루통의 가루와 기름병의 기름이 다하지 않는 축복을 받았지요. 어느 날 여인은 성문 근처에서 땔감으로 쓸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가 그곳에 당도해서는 물을 달라 합니다. 이에 여인이 물을 가지러 가는데 엘리야는 떡도 가져오라고 청했지요. 그러자 여인은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하고 자신의 딱한 사정을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위해 떡을 만들어 오라’고 다시금 말합니다. 물론 무조건 순종하라고 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행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비가 올 때까지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않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축복을 주신다’고 알려 주었지요. 이때 여인이 만약 “제 코가 석 자입니다. 도무지 누구를 도울 처지가 못 됩니다.” 이렇게 변명하고 불순종했다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행히 여인은 두말없이 순종하였습니다. 마지막 양식을 털어 엘리야를 공궤했지요.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열왕기상 17장 15~16절에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한 대로 과부와 그의 아들은 극심한 기근 중에도 양식을 공급받았고 생명을 보전했지요.

2. 사르밧 과부가 풍성한 축복을 받은 비결

1)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나도 사르밧 과부처럼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고 자신하신다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엘리야의 말대로 마지막 양식을 내어주었다가는 자신과 아들의 죽음이 앞당겨질 것이 분명합니다. 극심한 기근으로 인해 더 이상 양식을 구할 길이 없으므로 수일 내에 굶어 죽고 말지요. 여인은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아멘’ 했습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한 번 믿어 보자.’ 하고 요행을 바란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는 믿음에서 나온 진실한 순종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순종의 모습을 보이고 계신지요? 신명기 28장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십시오. 축복받는 길이 참으로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저는 개척 후 지금까지 성경에 기록된 ‘축복받고 지킴 받고 보장받는 비결’을 단에서 끊임없이 외쳐왔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창고에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가득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라기 3장 10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셨지요. 만약 “지금은 도저히 드릴 상황이 안 됩니다.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서 형편이 좀 더 나아지면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하는 분이 계시다면 순종할 때까지 축복은 유보될 수밖에 없습니다.

축복뿐 아니라 소원을 응답받고 지킴 받는 지름길 또한 ‘순종’입니다. 올해 들어 만성 습진, 간염, 관절염 등 오랫동안 앓던 지병을 치료받았다는 간증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계명을 지키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이런 하나님 말씀에 그동안 순종하지 않다가 이제야 순종했노라고 하십니다. 즉 이제 말씀에 순종하여 계명을 하나 둘 지켜 나가며 악을 버리고 충성하며 충만히 신앙생활 하자 깨끗이 치료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분들이 “저는 워낙 악한 기를 타고 나서, 조상들이 우상을 심히 섬겨서 악을 버리기가 힘듭니다.” 또는 “너무 바빠서 기도하고 충성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계속 핑계 대는 신앙에 머물러 있었다면 결코 응답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참 믿음으로 순종하십시오. 그런 다음 “드디어 축복받았습니다. 응답받았습니다.” 하고 간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을 귀히 여겼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 사람입니다. 그 당시 엘리야를 처음 대면했지요. 그럼에도 이 여인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여인의 마음에 선(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대뜸 마지막 남은 양식을 자기에게 달라고 합니다. 그 양식은 가뭄이 끝날 때까지 생명을 부지하게 할 수도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지요. 이것을 요구한 엘리야의 행동은 상식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엘리야를 ‘염치가 없는 자다. 궁색한 과부의 양식을 요구하는 도적의 마음을 지녔다.’ 이렇게 판단 정죄하지 않았지요. 이 여인은 상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겸손함과 상대의 신실함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음에 쌓은 선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대부분 이런 선을 이뤄오셨기에, 또 하나님께서 보장하심을 보아오셨기에, 여러분을 위해 세우신 주의 종, 곧 목자를 귀히 여기십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축복의 비결을 임의로 판단하거나 소홀히 여기지 않으시지요. 이런 분들은 반드시 축복받으시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 사는 마리 테레사 성도는 시공을 초월한 기도로 백혈병을 치료받으셨습니다. 지난 8월, 감사 인사차 본 교회를 방문하셨지요. 이 성도님의 치료 역사는 따님이신 버지니아 집사의 이 제단과 저에 대한 신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테레사 성도는 이미 살 소망을 잃고 유언과 귀중품을 딸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딸 버지니아 성도는 저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능을 소개하며 “당회장님께 기도받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엄마를 살려 주실 것을 믿어요.” 하고 담대히 고백했지요. 딸은 전화로 계속 믿음을 심어 주었습니다. 테레사 성도는 딸의 이런 믿음과 정성을 힘입어 저에게 시공을 초월하여 사진에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 후 다시 검진받은 결과 치료 사실을 확인했지요.

이런 응답뿐 아니라 ‘성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제가 성도들의 구원과 성결을 위해 하나님께 매어달리는 모습을 보고 많은 성도들이 ‘목자는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를 이끌어 주시는구나.’ 이런 신뢰와 사랑이 더해졌다고 고백하십니다. 이렇게 저를 믿고 사랑하여 따라오시는 분들이 큰 힘을 얻어 영의 급물살을 타고 영과 온 영을 향해 달려가고 계시지요. 버리기 어려운 죄악도 쉽게 버리십니다. 응답과 축복의 비결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목자를 세우시고 변함없이 보장해 주고 계시지요. 이런 목자를 존중하고 신뢰하심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욕심이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마지막 남은 양식을 달라 했을 때 여인이 ‘이것만은 절대 안 됩니다. 저와 제 아들이 당장 먹을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오직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위하느라 양식을 움켜쥐고 내어주지 않았다면 결코 축복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는 순종하여 축복을 받기는 했는데 만약 “가루와 기름이 왜 이 정도밖에 안 나옵니까?” 하며 불평하거나, “양식 말고도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오히려 더 많이 얻고자 욕심냈다면 어떠했을까요? 그나마 받던 축복도 끊겨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도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마음이지요?

실제로 이런 마음을 품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들을 보곤 합니다. 예를 들어 ‘누구누구 집사님네는 축복을 많이 받아서 집도 사고, 헌금과 찬조도 많이 한다던데. 우리는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이렇게 부러워하는 데서 더 나아가 낙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욕심으로 인해 지금 받는 축복을 쉽게 잊어버림으로 생기는 마음이지요.

욕심을 품으면 이처럼 자족하지 못함은 물론 감사를 잊기 마련입니다. 감사의 샘이 마르면 더 이상 축복의 물도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자족하는 마음과 그 가운데 드리는 감사는 ‘마중물’과 같습니다. 마중물이란 수동 펌프로 물을 길을 때 펌프에 먼저 붓는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을 말합니다. 이 적은 물을 넣으면 펌프에서 훨씬 더 많은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예전에는 어렵게 사셨지만 이제 축복받아 십일조를 많이 드리는 분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축복을 받으면 자족할 줄 알고 감사를 잊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인색하지 않습니다. 어찌하든 받은 축복을 자신보다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믿음의 형제, 자매를 위해 사용하려는 마음이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찌 더 많이 부어 주시지 않겠는지요?

축복은 욕심으로 길어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떡 한 조각, 한 모금 마실 물에도 만족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나누려는 마음이 풍성한 축복을 부릅니다. 사르밧의 과부는 달리 보면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자신과 가족의 생명 같은 양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혹시 가뭄 같은 어려움에 처한 분이 계십니까? 이처럼 욕심 없는 마음을 이루어 풍성하신 하나님을 만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27장에 보면 이삭은 아들 야곱이 별미를 가져와서 축복을 구하자 그를 축복합니다. 28절에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을 대신하여 아들을 축복한 이삭의 마음도 이러할진대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풍성히 주기를 원하실까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풍성한 축복을 마음껏 내려 주실 수 있도록 별미를 올려 보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 자녀들의 마음의 향을 가장 기뻐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곧 들어갈 가나안성전과 대성전을 아름다운 마음의 향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토록 사모하시는 새 예루살렘에서 그 아름다운 향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리시기를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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