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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양
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사 43:21 날짜 2009.06.28
2009년 예능위원회 헌신예배를 맞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찬양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어떤 찬양을 기쁘게 받으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은 찬송을 지극히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을 지으신 것도 사랑하는 자녀들의 진정한 찬송을 받으시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찬송을 기쁘게 받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찬송이라야 기쁘게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찬양의 향은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때 나옵니다. 물론 여러분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찬양의 사명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했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이와 같은 영적인 사랑입니까? 이 말씀에 비추어 걸림이 없다면 여러분의 찬양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큰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랑장의 말씀을 다 이룬다는 것이 너무 큰 과제로 여겨진다면, 여러분의 사랑이 변함없는 진실한 사랑인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좋을 때는 찬양하기를 사모한다고 하다가, 충만함이 떨어지면 찬양 사역을 놓고자 합니다. “내 전부가 되시는 아버지만, 주님만 생명 다해 찬양하겠습니다.” 눈물로 고백했지만, 어느 순간 세상의 좋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므로 마음이 변질되기도 합니다. 이런 육적인 사랑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진실하게 새겨진 사랑,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지는 사랑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사도 바울과 실라는 심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바울은 매를 맞아 온몸이 피로 물들었어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아프다” 말하는 것조차 민망한 마음이었습니다. 또 많은 사람 앞에서 수치와 멸시를 당해도, 낙심한 것이 아니라 주를 핍박하던 자신을 용서하신 은혜를 생각하며 담대했습니다. 처음 주님을 만난 순간부터 참수터를 향해 걸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바울의 사랑은 더욱 진해지기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도 이런 사랑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찬양이 언제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향으로 하나님 앞에 열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앞에 금으로 만든 그릇을 예물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릇의 재료는 순금일 수도 있고, 금 함량이 낮은 그릇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값싼 금속이나 토기 위에 얇게 도금한 그릇일 수도 있습니다. 모두 금 그릇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그 순도에 따라 가치는 크게 달라집니다. 여러분은 어떤 예물을 드리고 싶으십니까? 순금으로 드리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은 예배 생활과 기도 생활 등 외적인 신앙생활은 어느 정도 충실하게 하실 것입니다. 말씀도 많이 들어서 진리와 비진리를 구별할 줄도 알므로, 겉으로 볼 때는 믿음의 3단계 이상 들어온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믿음의 2단계에 있거나, 때로는 2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은 초신자와 비슷한 수준이면서도, 들어서 아는 것이 많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이 크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현저한 육체의 일을 행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작은지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저한 육체의 일을 범하지 않는다 해서 믿음이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더 인정받고 칭찬받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무겁습니다. 시기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찌르는 말을 하면서, 선한 의도로 권면하는 것처럼 포장합니다. 윗사람이 권면을 하면 안색이 변하고, “아랫사람을 힘들게 한다”며 불평합니다. 자기 의와 틀 속에서 남의 험담을 하면서, “사실을 말한 것뿐”이라고 합니다. 단에서는 충만한 얼굴과 모습이지만, 평소에는 감정에 따라 표정과 말과 행동이 바뀌기도 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게 일이 진행되면, 서운해하며 마음을 모아 주지도 않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들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음식점, 경치 좋은 곳, 새로 나온 영화, 외모를 꾸미고 가꾸는 일, 세상 오락 프로그램,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 마음에 드는 이성, 떠도는 소문, 유행어 등과 같은 육적인 대화가 대부분인 사람도 있습니다. 또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대할 때는 차가운 태도로 상대를 외면하기도 합니다. 약속을 쉽게 어기며, 자기 스스로 마음에 정한 것이 있다 해도 유익에 따라 수시로 변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역이나 기관의 구성원들에게 여러분이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쁘게 찬양 사역을 하면서도, 할 수만 있으면 최선을 다해 자리를 지키며 간증과 대화 속에 은혜를 나누는 사람이다.’, ‘겸손한 모습으로 마음 다해 섬기는 사랑스러운 일꾼이다.’ 할지, 아니면 ‘한 해 동안 몇 번 만나기도 어려우니 명단에 있으나 마나 별 의미가 없다’, ‘어떤 일에 마음을 모아 달라고 요청하기가 어렵고 눈치 보이는 사람이다.’ 할지는 여러분 스스로가 잘 아실 것입니다.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내가 믿음 있다’ 하기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아무리 고운 소리로 찬양을 드린다 해도, 믿음 없이 하는 것이라면 그 찬양의 향은 너무나 초라합니다. 성경의 구절을 그대로 따서 찬양을 하거나 천사의 춤을 그대로 따라 한다 해도, 질이 낮은 은을 입힌 토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힘써 순종해 나아갈 때라야 비로소 믿음 있는 찬양의 향으로 올려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연예인을 지망합니다. 재물과 인기를 얻을 수 있기도 하고, 자신의 재능을 자랑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찬양 사역자가 된 이유는 물질이나 유명세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재능과 용모를 자랑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소망이 진실로 여러분의 안에 가득하다면, 여러분은 천국을 늘 마음에 그릴 것입니다. 천국의 빛깔, 천국의 분위기, 천국의 향, 거룩하고 신령한 것, 맑고 깨끗한 것 등을 늘 마음에 품고 사모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얼굴빛이나 입술의 말에서, 몸가짐과 머리 모양, 화장이나 옷차림에서 천국의 향이 배어 나게 됩니다. 찬양을 통해 여러분 안에 가득한 천국 소망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각자의 기량을 높이기 위해 세상 음악의 기술적인 면이나 뛰어난 분야들을 배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단에 서기 위해서도 본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니 외모도 정성을 다해 단장해야 합니다. 또 세상 사람과 비교할 때 뒤처지지 않도록 실력도 뛰어나게 갖춰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문화 속에서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결코 세상 것에 물들어서는 안 됩니다. 필요한 분야들을 취한다 해도, 그때 자신의 자세와 중심이 어떠한가를 늘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칫 깨어 있지 못하면, ‘찬양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실제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육을 취하는 분위기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세상의 풍조에 만연한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을 받아들이면서도, “더 뛰어난 찬양 사역을 위한 것”이라고 자신을 정당화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 찬양하며 하나님께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정결한 마음으로 단장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려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자신의 중심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천국 소망이 가득하면, 육적인 기량을 열심히 연마하는 것은 물론 신령한 것을 무엇보다 더욱 사모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 속에서 신령한 것과 영적으로 어둡고 혼탁한 것을 분별할 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세상에서 배운 창법이나 연주 기법을 찬양에 적용하고자 할 때, 기도하는 사람, 천국에 소망이 있는 사람의 마음에는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이런 방식으로 소리를 내면 하나님 앞에 맑고 아름다운 향이 되는지, 정욕적이고 자극적인 육의 것이 되는지 성령의 주관 속에서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신의 감정에 맞으면 눈물을 흘리며 노래하기도 하고 열정적으로 박수 치며 춤추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음색이나 곡조가 진정 성령의 감동을 입게 하는 것인지, 혹은 육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율동할 때의 손동작 하나라도 아버지 앞에서 맑고 깨끗한 향으로 드려지는지, 세상적인 느낌은 아닌지 분별해야 합니다.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 화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세련되고 매력적인 모습이라 해도, 천사들은 눈살을 찌푸릴 수 있습니다. 또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게 찬양한 것 같은데, 그 중심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마음보다 자기 재능에 대한 자부심이 더 많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안에 천국의 소망이 가득하여, 세상과 구별된 맑고 깨끗한 마음을 이루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맑고 빛나는 천국의 향으로만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유다 왕 여호사밧은 큰 적군을 맞아 싸울 때 선두에 칼과 방패로 무장한 특공대가 아니라, 성가대를 세웠습니다. 살기등등한 적군 앞으로 행진하며 찬양하는 것은 제사를 드릴 때 성전 안에서 찬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더구나 전투에서 선봉에 세워진다면, 아무리 잘 훈련을 받고 무장한 군대라 해도 전사할 것을 각오해야만 합니다. 이럴 때 여러분이라면 어떠한 향을 올리시겠습니까?

여호사밧이 앞세운 성가대는 생명을 걸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선지자를 통해 승리를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찬양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역대하 20장 22절에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한 대로, 찬송이 시작될 때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가 움직이므로 전쟁의 승패가 순간에 결정된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장면입니까?

여러분의 찬양이 바로 이러한 찬양이 되기를 원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이 땅의 모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선봉장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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