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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의 도(5)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2:16-17 날짜 2005.04.17
1.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기까지의 과정

맨 처음 아담이 지음받았을 때, 아담의 외모는 장성한 어른의 형상이었지만 지식적으로는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은 상태였습니다. 마치 새로 사온 컴퓨터 안에 어떤 데이터도 입력하지 않은 것과도 같았지요. 이런 상태에서 아담은 하나님께로부터 여러 가지 지식을 배워나갔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영의 세계에 대해, 진리와 선과 빛에 대해 많은 영의 지식들을 배웠고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지식들도 배웠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것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릴만한 자격을 갖추게 되었으며 창세기 1:28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말씀하신 대로 많은 자녀들을 낳으며 번성해 갔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살면서 자녀를 낳았다는 사실은 성경을 통해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16을 보면 범죄하여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나는 하와에게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지요.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신다”는 것은 이전에도 잉태하는 고통이 조금은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만 저주받기 이전에는 그 고통이 적었는데 이후로는 그 고통이 커질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질병이나 늙음, 사망이 없는 에덴 동산에서 사람으로서는 계산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인간경작의 역사가 육천 년이라고 할 때, 이는 아담이 창조된 때부터의 세월이 아니라 아담이 범죄하여 이 땅으로 쫓겨난 후부터의 세월입니다. 아담이 창조된 후부터 범죄하기까지는 무수한 세월이 흘렀던 것입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아담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큰 권세를 누리며 아무런 부족함 없이 살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금하신 것이 단 한 가지 있었습니다. 창세기 2:16-17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지요. 처음에는 아담과 하와가 이 명령을 잘 지켰으나 무수한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차 하나님의 명령을 명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순종하도록 지음받은 천사와는 달리 사람에게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순종할 수도 있고 순종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경고를 명심하지 못하고 자유의지 가운데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까지는 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요. 원수 마귀 사단이 뱀을 사주하여 하와를 미혹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뱀을 소름끼치도록 싫어하고 징그럽게 여기는데 이는 뱀으로 인해 인류가 사망으로 가게 되었기 때문에 깊은 본성 속에서부터 싫어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의 뱀의 모습은 하와를 미혹한 뒤로 저주받아 변질된 모습이며 사실, 저주받기 전의 뱀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생물들이 그랬듯이 사랑스럽고 보기에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일 뿐 아니라 성경에 간교한 짐승이라 한 대로 뱀은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지혜가 있었지요. 이처럼 뱀은 간교하여 하와를 기쁘게 하고 그 마음을 살 수 있었기에 뱀이 미혹할 때 하와가 방심하기가 더 쉬웠습니다.

뱀이 어느 날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물었지요. 이에 여자는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고 함으로 죽을 수도 있고 안 죽을 수도 있는 것처럼 변질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변질시켜 버리면 그다음에는 더 쉽게 사단의 미혹을 받게 되지요.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들은 순종해도 되고 안 해도 상관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순종하면 생명을 얻지만 순종하지 않으면 사망으로 가는 것이지요.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는 것을 보자 뱀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듭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한 것입니다.

하와가 뱀의 미혹을 받아들이니 선악과를 볼 때, 전과는 달리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동하므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게 보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었을 뿐 아니라 아담에게까지 주어 먹게 했지요.

이렇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결과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임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신 영계의 법칙대로 죄의 값을 치르게 된 것입니다. 물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당장 호흡이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때 “정녕 죽으리라” 하신 것은 육의 죽음만이 아닌 더 근본적인 죽음, 곧 사람의 영이 죽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사람의 몸, 곧 육은 영혼을 담고 있는 껍질에 불과한 것이며, 사람에게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몸 안에 담겨 있는 영과 혼이지요. 사람의 영은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아야 살 수 있는데 아담이 범죄하여 죄인이 된 후에는 더 이상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단절된 사람을 원수 마귀 사단이 자기 것으로 삼아서 범죄하게 하고 마침내는 지옥으로 끌고 가게 되었지요. 사람의 몸이 죽어서 썩어 없어진다 해도 사람의 영혼은 소멸되지 않으므로 결국 지옥으로 들어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담과 하나님과의 사이에 교통이 끊어진 것을 곧 아담의 영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아담의 범죄로 인해 아담 자신만 저주받은 것이 아니라 이후로 태어난 모든 아담의 후손까지도 아담과 같은 죄인이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담의 주관 아래 있던 이 땅의 만물도 다 같이 저주를 받게 되었지요.

창세기 3:17에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하신 대로 이제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도 고생을 해야 합니다. 전에는 풍성하게 열린 과실을 따먹기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므로 아담이 직접 수고하고 땀을 흘려서 경작을 해야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저주받은 만물 중에서도 뱀은 더욱 큰 저주를 받았지요. 창세기 3:14에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뱀”은 영적으로 원수 마귀 사단을 의미하며 “흙”이란 흙으로 지음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뱀이 흙을 먹는다는 것은 원수 마귀 사단이 죄 가운데 사는 육의 사람을 밥으로 삼아 시험, 환난, 재앙을 가져다준다는 의미이지요. 이 말씀대로 범죄하여 육으로 타락한 사람들은 원수 마귀 사단의 주관 아래서 온갖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신 이유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지 않으셨으면 아담이 따먹지 않았을 것이고 사망의 형벌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줄 아셨고 아담을 너무나 사랑하셨는데도 선악과를 두셨는데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는 바로 아담에게 참된 행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아담이 살던 에덴 동산은 너무나 아름답고 평안하며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에덴에서 살던 아담은 참된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질병이나 죽음, 슬픔, 고통 등 행복의 반대가 되는 불행을 체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것의 참된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그와 반대되는 것을 체험하여 상대성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태어나서 병에 걸린 적이 한 번도 없다면 병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이 어떤 것인지 느끼기가 어렵고 그만큼 건강에 대해서도 감사하기 어렵지요. 굶주림으로 고생해 본 사람이라야 풍성한 음식에 중심에서 감사할 수 있고 악이 있어야 선이 얼마나 좋으며 어둠이 있어야 빛이 얼마나 소중한지 압니다. 가난이 없으면 부요함에 감사할 줄 모르며 미움이 없으면 사랑이 좋은 줄 모르지요.

그러니 불행이 전혀 없는 에덴 동산에 살던 아담은 자신의 행복을 깨달을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을 본 일이 없기에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셔도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가 없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사랑하여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지만 아담은 진정 마음 중심에서 감사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저주받은 세상에서 배고픔, 추위와 더위, 죽음, 이별 그리고 죄악으로 인한 슬픔과 고통들을 경험하면서 에덴 동산에서 살 때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참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편안하게 산다 해도 그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비록 잠깐 동안 고생을 한다 해도 그 고생을 통해 행복을 깨달으며 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이라 할 수 있지요.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시고 이를 통해 불행과 고통을 겪어봄으로 상대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담이 범죄하도록 하나님께서 유도하셨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아담이 자유의지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뿐이지요. 아담은 결국 자유의지에 따라 선악과를 따먹었고 인류는 추위와 더위, 질병과 가난, 배고픔, 이별, 죽음 등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 땅에서 고통받은 경작의 과정을 겪어 본 후에 우리가 장차 천국에 가면 천국의 삶이 얼마나 좋은지를 깨닫게 되고 그런 천국을 주신 하나님께 중심에서 감사하며 세세토록 기쁨과 즐거움 속에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에덴에 살던 아담과 달리 상대성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천국이 얼마나 좋은지를 분명히 알므로 시간이 지난다 해서 변질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과 감사가 더해지기만 하는 것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불행을 체험하게 되었고 에덴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던 것인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죄인이 되어 버린 후였습니다. 이미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되어 영이 죽어버린 상태로서 아담과 하와뿐 아니라 모든 후손들까지도 죄인으로서 사망의 형벌을 당할 처지가 되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아셨으므로 만세 전부터 죄인된 인류가 구원받을 길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러면 구원의 길은 과연 무엇인지 다음 시간부터 증거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선악과를 두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에 감탄하며 영원한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깊은 감사가 절로 나오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천국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산다 할지라도 오직 감사와 기쁨만 있게 되지요.

고린도후서 4:17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말씀한 대로 이 땅에서 잠시 슬픔과 고난을 당한다 해도 이 후에는 지극히 영화로운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행복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날마다 기쁨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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