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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의 도(14)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마27:44,눅23:39-41,요19:34 날짜 2005.07.10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 십자가의 처형에 대해 구체적으로 증거하고자 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의 대화와 예수님의 다리가 꺾이지 않으시고 창에 찔려 피와 물을 쏟으신 영적인 의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으로 모든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된 하나님의 자녀들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주셨고 나무에 달려 대신 저주를 받으셨기에, 이를 믿는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모든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질병과 연약함, 가난, 그 밖의 온갖 재앙에서 놓임을 얻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지킴을 받습니다. 만약 말씀대로 사는데도 시험 환난이 왔다면 이는 축복을 위한 시험입니다.

야고보서 1:12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말씀한 대로 이러한 시험을 만났을 때 감사함으로 승리하면 영육간에 복이 임하게 되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여 시험 환난이 온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는 즉시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키면 됩니다. 먼저 죄의 담을 헐고 나서, 믿음으로 기도할 때, 시험 환난이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범죄함으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실수로 인해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도 하나님께 의지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믿음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본교회의 성도님들은 이런 일들을 무수히 체험하고 있지요. 크고 작은 질병들을 비롯하여 사고나 재앙으로 생명이 위독한 상태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크신 권능의 역사들을 베풀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으로 간구하면 우리 죄를 사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나 응답받고 축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영접한 우리가 얻은 가장 큰 축복은 바로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에 가게 된 것입니다. 마가복음 9:48-49에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한 대로 지옥은 너무나 끔찍한 곳입니다.

예전에 저는 지옥의 영혼들이 격렬한 춤을 추는 것처럼 뛰면서 몸을 비트는 환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불못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운 유황못도 있는데 유황못은 불못의 영혼들보다 더 중한 죄를 지은 영혼들이 형벌을 받는 곳으로서 그 안에 있는 영혼들은 너무 극심한 고통에 짓눌려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소리조차 내지 못했지요.

이처럼 지옥의 영혼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한순간의 휴식도 없는 영원한 형벌의 고통을 당하는데, 여기서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성경은 범죄하지 않기 위해 손발을 잘라서라도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이 낫다 하시는 것입니다. 정녕 지옥의 무서움을 알게 된다면 손발을 자르는 고통이 지옥에 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중심에서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여 믿습니다”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무조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한 대로 빛 가운데 행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죄를 짓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마태복음 7:21에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하셨지요. 회개하여 죄에서 떠나고 다시는 범죄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나갈 때, 그래서 빛 가운데 살아갈 때라야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2.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에 대한 기록의 차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그 주변에는 많은 군중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모욕하며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양편에는 두 명의 강도가 달린 십자가도 서 있었는데, 마태복음 27:44에는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하여 양편 강도들이 군중들과 함께 예수님을 욕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달리 누가복음 23:39-43에는 강도 중 하나는 예수님을 비방했지만 다른 한 강도는 오히려 예수님을 비방하는 강도를 꾸짖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왜 성경의 기록에 이러한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이는 성경을 읽는 후세 사람이 그 장면을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게 하고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골고다 언덕 위에 세 개의 십자가가 서 있는데 그 주변에는 십자가 형벌을 구경하려는 많은 군중들이 모여서 요란하게 떠들고 있고, 로마 군병들이 창과 방패를 들고 밀려드는 군중을 막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요.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을 욕하는 강도 쪽에 서 있으면 욕하는 강도의 말은 뚜렷하게 들리지만 반대편에 있는 강도의 말은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회개한 강도가 예수님을 욕하는 강도를 향해 꾸짖는 모습이 욕하는 강도 쪽에 서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마치 그가 예수님을 향해 욕하는 모습처럼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한 강도 쪽이나 예수님 쪽에 있는 사람은 강도의 말과 예수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기록도 정확하게 남길 수 있지요.

물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기록하는 사람에게 정확한 내용을 알려주셔서 기록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에 이러한 차이가 있도록 허락하심으로 성령의 감동 속에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마치 영화 필름이 돌아가듯 생생한 현장감 속에서 당시에 전개된 상황을 더 뚜렷하게 느낄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성경을 대함에 있어서 때로 사람의 생각에 맞지 않는 분야가 있다면 육신의 생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성령의 감동 속에서 깨달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예수님의 다리가 꺾이지 않으신 섭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여러 시간 동안 모진 고통을 받으시다가 마침내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금요일이고, 그 다음날은 유대인들이 거룩하게 지키는 안식일이었지요. 거룩한 안식일에는 저주받은 시체를 나무에 달아둘 수가 없기에 유대인들은 빌라도 총독에게 십자가에 달린 죄수들을 치워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요 19:31).

그래서 군병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편에 달린 강도들의 다리를 꺾어서 시체를 치웠지만 예수님께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요. 십자가에 달린 사람의 다리를 꺾게 되면 더 이상 다리로 몸을 지탱하지 못하므로 숨이 막히고 빨리 숨이 끊어지게 되는데 군병들은 이미 예수님의 호흡이 끊어지신 것을 확인하고 다리를 꺾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편 34:19-20에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류의 죄를 지고 나무에 달려 죽으셨지만 스스로는 죄인이 아니며 흠도 점도 없는 의인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다리뼈가 꺾이지 않도록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민수기 9:12이나 출애굽기 12:46에도 출애굽 당시의 백성들에게 “어린양을 먹되 그 뼈를 꺾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어린양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상징하는 어린양의 뼈는 꺾지 말라고 명하고 계신 것이며 이러한 예언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뼈는 꺾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4. 예수님께서 피와 물을 쏟으신 영적인 의미

그런데 요한복음 19:34에 “그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말씀한 대로 한 군병이 숨이 끊어지신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가시관을 쓰시고 온몸에 채찍에 맞은 상처와 못박힌 손발에서 흘러내린 피로 예수님의 모습은 처참한 형상이셨지요. 이렇게 처참한 모습의 예수님을, 이미 호흡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도 다시 창으로 찔렀으니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악한 인생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옆구리를 창으로 찔리시고 피와 물을 쏟으신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요한복음 1:14에 보면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곧 영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모의 정자와 난자로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과 똑같은 몸을 입고 태어나셔서 사람과 같은 성장 과정을 겪으셨지요.

이렇게 사람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세주로서 합당한 자격을 갖추실 수 있었습니다. “인류의 구세주가 될 수 있는 네 가지 조건” 중 첫 번째 조건이 바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뼈와 살로 이뤄진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채찍에 맞으면 아픔을 느끼셨으며 피곤함도, 목마름도, 배고픔도 느끼셨지요(마 4:2 ; 요 4:6).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몸을 입으셨음을 확증하기 위해 창으로 찌르니 피와 물이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육신을 가진 사람도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음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온전한 분이시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고 온전하기를 원하십니다(마 5:48 ; 벧전 1:16). 베드로후서 1:4에도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말씀하셨지요.

예수님은 사람들과 같은 몸을 입으셨지만 일생동안 어떠한 죄도 범치 아니하셨고 거룩한 삶을 사셨습니다. 사람들과 같은 성정을 가지심으로 사람과 같은 감정을 느끼실 수 있었지만 오직 진리대로만 사셨지요. 그러니 우리 또한 예수님과 같이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를 믿고 불같이 기도하며 노력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죄악을 벗어 버릴 수 있지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거룩하게 사실 수 있으셨지만 나는 연약한 사람이므로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변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피와 물로 인해 참생명을 얻고 영생을 누린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원죄도 자범죄도 없으신 예수님의 피는 점도 없고 흠도 없는 보배로운 피입니다.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려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영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물은 영적으로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해나가는 만큼, 죄악이 벗어지고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쏟으신 피와 물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피와 물이며 우리를 사망에서 구원하는 생명의 피와 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창에 찔려 피와 물을 쏟으신 것은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해 죄사함을 입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받아 참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다시 한 번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친히 고난을 당하심으로 무수한 영혼들이 구원받을 것을 생각하셨기에 오직 기쁨과 감사로 고난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다른 누구 때문이 아니라 우리 죄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고난을 당하시고 물과 피를 쏟아 주셨지요.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신속하게 죄악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찾으심으로 영화로운 천국에 들어가 주님의 사랑을 마음껏 찬송하며 영생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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