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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의 도(16)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19:26-27,마27:46 날짜 2005.08.07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가상칠언 중에서 제 3, 4언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제 3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요한복음 19:26-27을 보면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아들이란 예수님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곁에 선 제자 요한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마리아에게 요한을 아들처럼 여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에게는 동정녀 마리아를 “네 어머니라” 말씀하시니 요한은 그때부터 동정녀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시고 어머니처럼 섬기며 살았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자여” 하고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26절에 모친이라고 한 것은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모친이라 부르셨다는 말씀이 아니라 제자 요한이 자신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이지요.

성경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신 기록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2장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때도 마리아를 향해 “여자여” 하고 부르셨습니다. 이는 동정녀 마리아가 결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시며 삼위일체 하나님 중 한분이시지요. 창조주 하나님께는 어머니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스스로 계신 분으로(출 3:14) 누군가 하나님을 낳은 것도 아니요, 하나님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피조물인 마리아에게 “어머니”라 부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전적으로도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잉태될 때는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결합하게 되는데 예수님의 경우는 마리아의 난자를 통해 잉태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어 나셨을 뿐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셨지요. 만일 아기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랐다고 해서 인큐베이터가 아기의 부모가 될 수는 없는 것과 같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스스로 계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만을 섬기고 경배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0:3-4에 보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말씀하셨으니 스스로 계신 하나님 외에는 어떤 피조물도 그 형상을 만들어 경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말씀하신 것은 마리아를 위로하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는 것을 볼 때, 마리아는 마치 칼로 마음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이니 자상하신 예수님께서 이런 마리아를 기억하심으로 마지막 순간까지도 마리아를 위로하시며, 제자 요한을 친아들처럼 의지하게 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 말씀하시며 마리아를 어머니처럼 섬기도록 당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동정녀로서 예수님을 낳은 후, 남편인 요셉과의 사이에 여러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자녀들에게 부탁하지 않으시고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참된 소속이 어디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3:20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말씀한 대로 구원받은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천국 백성입니다. 주님을 영접함으로 이름이 천국의 생명책에 기록된 우리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참된 형제자매는 주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는 것입니까? 이는 우리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을 낳은 것은 육의 부모이지만 근본적으로 부모의 정자와 난자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요.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 이렇게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우리 모두의 조상은 아담입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지요. 하나님께서 친히 아담의 몸을 만드시고 그 안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으니 근본적으로 우리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또한 사람이 결혼하여 자녀를 낳는다고는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생명을 잉태할 수가 없고 잉태된 아이에게 영혼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소관이지요.

오늘날 발달된 과학으로 인한 인간 복제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유전 공학이 발달한다 해도 영원히, 사람의 영혼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설령 사람의 육은 복제할 수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 안에 영을 주시지 않으니, 그 복제된 형상은 짐승과 다름이 없으며 참된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잉태된 자녀의 성별이나 성품, 외모도 부모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오직 한분 하나님만이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본교회에서는 잉태하지 못하던 부부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한 사례가 아주 많습니다. 결혼한 지 3년, 5년, 7년, 심지어 10년 이상씩 잉태하지 못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아이를 갖지 못했던 분들이 저에게 믿음으로 나와서 기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역사로 잉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영혼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이런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 정욕을 따라 살아간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마귀가 미혹하는 대로 범죄하며 살다가 세상 끝날에는 지옥불에 던져지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성도들은 영원히 천국에서 삽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는 서로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이라 해도 주님을 믿지 않는 가족들은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2:50에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여 주를 믿는 성도들이야말로 장차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게 될 참된 가족임을 알려 주셨지요. 그렇다고 이 말이 육의 부모 형제를 사랑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육의 가족을 당연히 사랑하고 섬기되, 그 사랑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영적인 사랑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가족들이 하나님을 훼방하고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게 행하도록 한다면, 이럴 때는 가족에게 맞춰주는 것이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나 형제가 “교회에 가지 말라” 하거나 “함께 범죄하자” 하면 따라줄 수 있겠는지요? 이는 사랑이 아니라 함께 사망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육의 부모, 형제도 사랑해야 하지만, 반드시 진리 안에서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또한 육의 가족들을 사랑한다면 무엇보다도 그들도 함께 구원받고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전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진정한 가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상칠언의 세 번째 말씀에는 애통하는 마리아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사랑이 담겨 있으며, 또한 구원받은 우리의 소속은 천국에 있으며 우리의 참된 가족은 주 안에서의 형제자매인 것을 알려 주고 계십니다.

2. 제 4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태복음 27:46을 보면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했습니다. 마가복음 15:25에는 “때가 제 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하였으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혹독한 고통을 받으며 여섯 시간 째 매달려 계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혹자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신 말씀을 ‘예수님께서 심한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시는가 보다’ 하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원망하시거나 고통으로 인해 탄식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이미 앞으로 되어질 일을 다 아셨고 십자가의 고통에 대해서도 다 아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지요. 더구나 모든 고통이 끝날 때가 되었는데, 이제 와서 하나님을 원망하실 리가 없습니다.

이 말씀에는 중요한 영적인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먼저, 이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크게 소리 질러” 말씀하셨다 했지요. 예수님께서는 밤새 끌려 다니며 심문을 받으셨고 심한 채찍질을 당하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여섯 시간을 피 흘리며 매달려 계셨습니다. 이처럼 소리 지르실 만한 기운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인데도 힘을 다해 큰 소리로 말씀하신 것은 모든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버림받으셔야만 했는지”, “왜 참혹한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만 했는지” 깨닫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께서는 저주받은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으신 상태입니다. 이는 죄인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함입니다. 율법의 저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 운명이었기에 예수님께서 대신 저주를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신 것입니다.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여 천국에 인도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신 것이지요. 바로 이런 의미를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는 온 힘을 다해 외치셨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부르실 때 항상 친근하게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유독 본문에서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신 이유는 바로 저주받은 죄인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부르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저주를 대신 지시고 죄인의 신분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으니 거룩하신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를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죄 가운데 살 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도 않고 하나님의 대적, 원수 마귀 사단이 미혹하는 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담대하게 “아버지”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 하늘의 모든 영광을 다 버리고 죄인들과 같이 버림받으신 이유를 깨닫게 하시고자 예수님께서는 힘을 다해 큰 소리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버리신 줄 아느냐? 내가 이처럼 버림받은 것은 바로 너희를 사랑하여 너희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라”고 모든 사람에게 알리기 원하신 것이지요.

또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 주셨건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세상과 짝하여 사망의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모든 영혼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를 알아서 구세주로 영접하고 생명을 얻기 원하여 큰 소리로 외치신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인해 버림받으셨고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셨음을 마음 중심에 믿는다면 더 이상 죄 가운데 거하지 말고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도를 세상에 열심히 전파하여 진리를 알지 못하고 사망으로 가는 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상칠언의 영적인 의미를 깨닫고 마음에 깊이 새겨 날마다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삶을 살 뿐만 아니라 장차 천국에서도 가장 영광스러운 처소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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