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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99)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 6:1-4 날짜 2013.05.24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어떻게 이 땅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두 부류로 나누어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부류는 범죄한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아담을 따라서 이 땅에 내려와 정착한 이들이지요. 둘째 부류는 에덴동산에서 이 땅을 오가면서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은 이들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 땅에서 낳은 후손들과 하나님께서 둘째 부류에 속한 이들에게 경고하신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 아들들’의 후손들

첫째 부류의 후손들인 ‘네피림’은 그 외모가 매우 출중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기(氣)를 타고 태어났기에 이 땅의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네피림의 아버지들은 이 땅의 삶을 스스로 택해 내려왔다 해도 육에 깊이 물들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들이 가진 좋은 기질 곧 에덴동산 사람으로서의 뛰어난 면을 자녀들에게도 많이 전수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부류의 후손들도 기본적으로 에덴동산 사람의 기를 받고 태어났기에 이 땅의 사람들보다는 뛰어난 면이 있었지요. 그래서 그들은 어디에서나 눈에 띄었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또한 신체 조건이나 지혜 등에 탁월한 면도 있어서 그들 중에서 ‘용사’로 유명해진 이들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후손들이 대대로 탁월한 기질을 갖고 태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의 2세들도 급속히 육에 물들어 ‘육체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이 땅에서 낳은 후손들이 육의 사람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에덴동산에서는 생령이었지만 죄를 범하여 육의 사람이 된 후에는 그의 후손들도 육의 사람으로 태어났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육체의 사람이 되자 후손들도 육체의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물려받은 좋은 기질이 육의 속성과 섞이면서 상쇄돼 버린 결과이지요. 그래서 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후손들도 3대째부터는 이 땅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대대로 뛰어난 능력을 갖고 태어났더라면 아마도 이 땅은 그들의 세상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유명한 용사’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그들이 이 땅의 사람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게 되었겠지요.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수명이 다하여 죽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전설적인 인물’로 남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홍수 심판 때에 노아의 여덟 식구 외에는 구원받은 이가 없으니 이때 하나님의 아들들의 후손도 멸절되었지요.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의 열두 정탐꾼 중 열 명의 보고 내용에 “네피림 후손”이 등장합니다(민 13:33). “거기서(가나안 땅, 구체적으로 ‘기럇아르바’라고도 불리는 ‘헤브론’을 가리킴)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했지요. 이때 정탐꾼들이 보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정말 ‘네피림의 후손’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본 사람들은 헤브론에 살고 있던 아낙 자손입니다. 아낙 자손은 대장부처럼 강해 보였고 매우 두려운 존재로 여겨졌지요. 이에 열 명의 정탐꾼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서 아낙 자손을 ‘네피림’에 빗대어 묘사했던 것입니다. 가나안 땅 정탐 사건은 노아 홍수로부터 약 1천 년이 흐른 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도 ‘네피림’이란 존재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노아의 후손들로 사람이 다시 번성할 때에 구전(口傳)되었던 것이지요.



2. 하나님의 1차 경고

첫째 부류의 후손인 네피림들은 이 땅에 살 때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둘째 부류의 하나님의 아들들과 그 후손들인 용사들은 문제를 많이 일으켰습니다. 본문 2절에 기록된 대로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 등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이들은 이 땅과 에덴동산을 오가면서 이 땅의 질서는 물론, 에덴동산의 질서까지 위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이 땅의 사람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그들을 쉽게 따라하며 문란한 악행을 일삼게 되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사태가 이처럼 심각해지자 한탄하며 근심하셨습니다. 그리고 중대 결정을 내리시지요. 그 내용이 바로 본문 3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자비가 많으시기에 예고 없이 곧바로 심판하지 않고 1차적으로 경고를 하셨습니다.

1)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여기서 ‘육체가 되었다’는 말씀은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어둠 즉 죄와 악과 불법·불의 가운데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빛과 어둠이 함께할 수 없듯이 하나님은 죄악 가운데 사는 사람과 함께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원래 빛의 영역인 에덴동산에 살았던 사람들이지만 이 땅에 와 육에 물들어 죄악을 일삼음으로 이제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게 되었지요. 이 말씀은 당시 이 땅에 사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가 된 사람들과는 ‘영원히 함께하지 않겠다.’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육체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요, 자녀이지요. 그 결국은 사망이요, 지옥이기에 하나님께서 영원히 함께할 수 없게 됩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복이 임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단의 시험에 빠져 죄를 지어 환난을 당하지요(요일 1:5). 여러분 중에 혹여 ‘나는 열심히 신앙생활 하며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은데, 왜 형통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가’ 이런 생각이 드는 분이 계십니까? 오늘 말씀에서 해답을 찾기 바랍니다. 빛 가운데 거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해 주시며 축복을 주십니다. 온전해지기 위한 연단을 받는 중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가 따르지요.

2)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육체가 된 사람들에 대해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직역하면 “그들은 120년밖에는 살지 못한다.”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누구이며, ‘120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그들이란 그 당시 사람의 딸들을 보고 정욕에 이끌려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던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이들은 에덴동산과 이 땅을 왔다 갔다 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고 선포하신 이후에는 에덴동산에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더 이상 이 땅과 영계의 질서를 어그러트리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육의 사람으로 전락했습니다. 에덴동산에 살았더라면 수명이 영원했을 텐데 육의 사람이 된 후에는 한정이 되었지요.
이러한 수명의 변화는 원래 이 땅에 살았던 육의 사람들에게도 일어났습니다. 900세 이상의 수명이 단번에 120세로 단축된 것은 아니지만 노아 홍수 이후로 꾸준히 단축됐습니다.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들의 수명이 이를 증명합니다(창 11:10~25). 셈은 600세, 그다음 아르박삿은 438세, 그다음 셀라는 433세, 그다음 에벨은 464세, 그다음 벨렉은 239세, 그다음 르우는 239세, 그다음 스룩은 230세, 그다음 나홀은 148세이지요. 대홍수 심판 이전에는 평균 수명이 900세가 넘었는데, 이후에는 수명이 계속 단축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그들의 수명이 단축됐다’는 의미 외에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의 날이 110년이 될 수도 있고, 130년이 될 수도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120년이 되리라고 하셨을까요? 120에는 ‘빛의 수’인 12가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날을 120년으로 정하신 데에는 “빛과 어둠을 가르신다.”는 영적인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어둠에 속한 육체의 사람들이 빛의 영역에 다시 들어가지 못하게 선을 그으시겠다.’고 하는 뜻입니다. 바로 본문 2절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제 다시 에덴동산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와 함께 이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120년”이 심판을 받기 위한 유예기간을 의미합니다. 당시 이 땅에는 사람의 죄악이 관영했지요. 에덴동산에서 내려와 정욕을 좇아 무질서하게 행한 이들로 인해 이 땅의 사람들도 더욱 방자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 사람들의 악이 계속 더해질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를 것도 아셨지요. 이처럼 심판이 임할 때까지의 유예기간을 “120년”이라는 연수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렇다 하여 그때로부터 정확하게 120년 후에 심판이 임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심판이 이를 만큼 악이 차기까지의 유예기간이라는 상징적인 연수이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 ‘유예기간’을 예시하신 다른 예들을 성경에서 더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셨지요(창 15:16). 앞으로 아브람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생활하다가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텐데, 그때가 4대(四代) 후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당시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은 관영치 않았기 때문이라 하셨지요. 그런데 4대가 지나면 그들의 죄악이 멸망의 심판을 받을 정도로 쌓인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될 일을 정확히 아시기에 그에 맞게 섭리를 이루십니다. 심판도, 축복도, 공의 가운데 이루시지요. 본문에 나오는 “120년”도 이와 같은 경우입니다. 장차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히 이루어지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유예기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악이 차기를 기다리신 것이 아닙니다. 멸하기를 좋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어찌하든 사람들이 죄악에서 돌이켜서 구원을 얻기 바라시기에 미리 알려 주고 기회를 주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차적인 경고를 무시한 채 계속해서 죄악 가운데 살아갔습니다. 결국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을 맞게 되었지요.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철저히 회개했다면 구원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겔 18:21~23). 요나서에 나오는 니느웨 백성들처럼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욘 3: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 하나님은 인생들을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사랑 가운데 아무리 기회를 주셔도 사람이 계속 죄악을 쌓으면 공의 가운데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을 결정하셨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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