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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00)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 6:5-10 날짜 2013.05.31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 아들들의 후손들과 하나님께서 둘째 부류에 속한 이들에게 경고하신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심판이 왜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에게까지 임했는지와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공의 가운데 정확히 이뤄지는 하나님의 심판

창세기 6장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급기야 대홍수 심판을 결정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5~6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말씀한 대로 사람의 죄악이 관영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이 땅으로 쫓겨온 지 약 1600년이 된 시점에 하나님께서 이 땅을 보시니 사람의 악한 행동이 크게 퍼져 있었습니다. 마음에 품는 것이나 생각이 언제나 악할 뿐이었지요. 그런데 유독 아담의 정통 계보인 셋의 후손들만이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랑했으며, 그 은혜 가운데 살았습니다. 셋으로부터 노아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대물림되었지요.

당시 이 땅에는 셋의 후손뿐만 아니라 가인 계통의 후손들과 아담의 또 다른 아들들의 후손 등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UN(유엔)이 사용하는 인구 성장율 계산식에 의하면 아담부터 노아까지 한 세대 당 아들 셋, 딸 셋씩을 낳았다고 가정한다면 노아 시대엔 인구가 약 2억 명 이상이 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오직 셋의 후손들만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잊고 그저 육의 욕구를 채우기에 급급한 삶을 살았지요. 개인의 정욕과 유익만을 구하기에 바빴고 자기 부족과 부락의 이익을 위해 싸움도 불사했습니다. 싸움이 없고 평안한 상태가 되면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니 죄악이 매우 빠르게 번져서 그 당시의 죄악이 지금 이 마지막 때와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인간 경작의 초기에 벌써 이처럼 심히도 변질되고 말았지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실 때에 절로 한탄이 나오고 근심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120년의 유예 기간을 주심으로 1차 경고를 하셨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에 결국 대홍수 심판을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는 정확한 공의 가운데 이루십니다. 더구나 전 인류를 멸하는 심판을 결정하실 때 얼마나 재고 또 재셨겠는지요. 그럼에도 심판이 임했다는 것은 이 땅에 죄악이 심히도 관영했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2.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쓸어버린 이유

7절에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뿐만 아니라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지면에서 쓸어버리겠다”고 하셨을까요?

1)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가 인간의 타락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갖가지 재료로 동물의 형상을 본떠 우상을 만들고 섬겼습니다. 집 안을 장식하거나 몸을 치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다가 노아 시대에 이르러서는 극에 달했지요. 이에 하나님께서는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멸하려 하셨습니다. 우상이 얼마나 헛되며 동물들도 한낱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나타내려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물에 사는 동물들은 홍수 심판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왜 빠진 것일까요? 앞서 설명한 이유와 같습니다. 물에 사는 동물들은 우상의 대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시는 사람들이 바다로 대거 진출하거나 많은 활동을 하기 전이므로 바다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육지와 하늘의 동물들을 본떠서 우상의 형상을 쉽게 만들었지만 바다의 동물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지요. 이에 물에 사는 동물은 심판에서 제외되고 육지의 동물들과 공중의 새들은 심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2)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가 사람들에게 속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동물을 우상으로 만들어 섬기고 소유물로 삼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육축을 가졌느냐가 부의 척도가 되어 이로 인한 많은 범죄가 일어났습니다. 남의 것을 훔치거나 강탈하는 사람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대표적인 소유물인 ‘육축’들이 죄를 범하지는 않았지만 사람에게 속했기에 함께 심판을 받게 되었지요.

사람과 함께 육축들이 심판받는 예는 성경 곳곳에 나옵니다. 예를 들어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에 명심해야 할 바를 말씀하셨습니다(신 13:12~15). 만일 다른 신을 섬기면 그 성읍 거민을 모두 죽일 뿐만 아니라 그중에 거하는 생축도 진멸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 명하실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지요(삼상 15:3). 이와 마찬가지로 홍수 대심판 때도 사람은 물론이요 동물들에게까지 심판이 임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대심판을 결정하셨지만 인간 경작을 시작한 자체를 후회하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을 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마음 아프셨지요. 또한 에덴동산의 사람들 중에서도 일부가 이 땅을 오가면서 육에 물들어 정욕대로 사는 것을 보시자 크게 상심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고자 계획을 품고 대심판을 결정하신 것입니다. 바로 ‘노아’와 그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멸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3.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이유

이어지는 8~10절을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사람들이 타락할 것을 인간 경작의 시작 전부터 아셨습니다. 또한 때가 이르면 심판이 불가피한 지경에 이를 것도 아셨지요. 만일 그 심판으로 모든 인류가 멸망받는다면 하나님의 인간 경작은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면 안 되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때를 대비하여 아담의 자녀들 중에 셋 계보의 후손들에게 대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죄악에 물들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악이 관영하여 심판이 임하는 시대에 ‘노아’가 태어나게 섭리하셔서 정당하게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왜 노아만 심판에서 제외시키는가?라고 송사할 수 없게 하셨지요.
그러면 노아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을까요?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이며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라 했지요. 어떻게 이런 인물이 나올 수 있었는지 노아의 탄생 시점으로 가보겠습니다.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앞으로 될 일을 대략 감지했습니다(창 5:28~29). 아담의 범죄로 이 땅이 저주를 받았기에 세상은 죄악으로 관영할 것이며 마침내 심판이 임할 것을 예견했지요. 그런데 아들 노아가 그 심판 가운데서도 살아남아 인간 경작의 새로운 시작점이 될 것을 안 것입니다. 이에 다가올 심판으로 인해 불안해하지 않고 마음에 안위를 받게 되었지요. 라멕이 이처럼 앞일을 예견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고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이는 그만큼 하나님 앞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라멕의 할아버지가 바로 ‘에녹’입니다.

노아는 에녹이 승천한 이후에 태어났지만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에녹과 함께 살았지요. 한 집에 같이 살지 않았어도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300년 중, 후반 100년 정도의 시간을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니 라멕도 하나님을 경외했고 자녀들도 어찌하든 진리로 양육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노아의 할아버지이자 에녹의 아들인 므두셀라는 대홍수 심판 직전까지 살았습니다. 노아의 아버지보다 더 오래 살았지요.
노아는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가르침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노아는 이런 환경에서 나고 자랐기에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도 구분된 삶을 살았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태어났다 해서 스스로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을 지키며 살았고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기를 원했지요.

창세기 5장 32절은 노아의 이런 마음을 단편적으로나마 알게 해 줍니다. 바로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했습니다. 전에 아담의 계보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대를 이은 아들이 첫 자녀가 아닌 경우가 있다 했지요. 예를 들어 아담의 대를 이은 셋도 첫 아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노아의 대를 이은 셈은 노아의 첫 아들로 500세에 낳았다 했습니다. 이는 당시 기준으로 볼 때도 상당히 늦은 나이에 자녀를 낳은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는 왜 이처럼 나이가 많이 들어 자녀를 낳은 것일까요?

노아는 당시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하자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기 원해 결혼도 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의로운 심령을 가졌기에 사람들의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한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의를 전파하기를 힘썼습니다(벧후 2:5). 이런 노아가 오백 세가 다 된 나이에 결혼하고 자녀를 낳았지요. 이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장차 대심판이 있을 것과 이후에 자신을 통해 새롭게 인간 경작이 시작될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홍수의 심판을 100년 앞둔 그가 오백 세가 된 후에야 비로소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지요. 노아는 당시의 사람들처럼 정욕을 좇아 결혼한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도구로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이처럼 노아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과 밝히 교통할 수도 있었고, 마침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지요.

이처럼 노아가 의로운 삶의 본을 보였기에 그의 아내와 세 아들과 며느리들도 심판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노아에게 속해 있었다는 사실이 심판을 면한 가장 큰 이유이지만 그들 역시 노아의 말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려고 했지요. 아무리 노아의 가족이었다 해도 그들이 노아가 전하는 진리를 따르지 않고 세상을 사랑했다면 이런 구원의 은혜를 입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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