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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04)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 6:18-20 날짜 2013.11.15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홍수심판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하신 언약의 말씀에 대해 살펴보면서 언약을 받은 편에서도 합당한 공의를 채울 때라야 언약의 효력이 발휘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받기 위한 공의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공의 가운데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

창세기 6장 18절을 보면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대홍수 심판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을 통해 인간 경작의 역사를 새롭게 이루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편에서도 합당한 공의를 채울 때 언약의 효력이 발휘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에 대해 살펴보았지요.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출애굽 1세대는 그 약속을 믿지 않았습니다.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출애굽 1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요. 반면 출애굽 2세대는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을 온전히 믿었기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약속하면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편에서도 온전히 믿고, 끝까지 기도할 때에 언약하신 말씀이 실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능력과 권능의 인침을 받은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침을 받고도 믿지 않거나 하나님과 믿음의 관계가 안 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믿는 분들은 기도하면 할수록 능력이 자꾸 커지는 것을 느낍니다. 능력 인침도 이러한데 온 영으로 들어와서 권능의 인침을 받는다면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죽은 자가 살아나고 소경이 눈을 뜨며, 벙어리가 말하며 앉은뱅이가 걷고 뛰면 얼마나 크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까.



2. 능력과 권능을 받기 위한 공의

성경에 보면 영으로 들어오면 능력이 임하고, 온 영으로 들어오면 권능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 후반절에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고,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하시며 여러 가지 표적이 나타난다고 말씀하지요. 성경에는 ‘믿는 자’라고 표현됐지만 우리는 믿음에도 분량이 있음을 알지요.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영을 이뤄 믿음의 4단계가 되어야 하며, 권능을 받기 위해서는 온 영을 이뤄 믿음의 5단계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런데 영, 온 영을 이뤘다 하여 능력과 권능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아버지 하나님께 능력과 권능을 받기까지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영으로 들어가면 능력의 티켓을, 온 영으로 들어가면 권능의 티켓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불같이 뜨겁게 기도해야 점점 능력이 향상되며 더 높아집니다. 권능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있기 때문에 항상 불같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를 이뤄드리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바로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열심을 내다 보면 아버지 하나님께 더 큰 능력을 받아야 함을 확연히 느끼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이 결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되지 않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영혼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능력 받기를 간절히 구하는 사람은 결국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의 종이나 일꾼으로써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능력이 없으면 부흥도, 심령을 변화시키지도 못 합니다. 그러므로 영혼들을 사랑한다면 능력을 받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권능을 받았어도 끊임없이 기도를 합니다. 앞으로 이방인이나 악하고 믿음없는 사람들을 깨뜨리며 응답받게 하고 치료하며 재앙도 물리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보다도 몇 갑절의 더 큰 권능을 받아야 된다는 것을 절감해서이지요.



3. 능력과 권능의 차이

‘능력’의 영적인 정의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는 힘’입니다. ‘능력’을 받으면 불가능이 없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무엇이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능력을 받으려면 영으로 들어왔다 해도 불같은 기도를 무수히 쌓아야 합니다. 또한 능력의 인침을 받았다 해도 불같은 기도를 할 때에 능력 행함이 불일 듯 일 수 있습니다. 하물며 능력보다 한 차원 높은 ‘권능’을 행하려면 얼마나 많은 기도를 쌓아야 하겠는지요.


‘권능’은 ‘권세 있는 능력’입니다. 능력과 함께 권세도 따릅니다.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엄위 있고 영광스런 힘이요,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명(命)’입니다. 이 영적인 권세는 예리한 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예리한 칼을 어린아이들에게 줄 수 없듯이 영적인 권세도 아무에게나 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서 악을 뽑아 버리고 성결을 이룬 사람에게 선과 사랑을 채운 만큼 권세를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권능 받은 종들은 절대로 변개함이나 배신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연단해서 그만큼 자격이 충분히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배신하거나 죄짓지 않을 것을 아셔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권능을 입히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능을 주었다가 빼앗아가는 일은 없지요.


그러면 능력과 권세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연로한 아버지와 건장한 아들이 있을 때에 아들은 아버지보다 힘도 세고 지혜가 있지요. 능력 면을 본다면 아들이 더 큽니다. 그러나 권세는 누가 더 큰가요?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권세가 더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질서가 파괴되는 가정에서는 아버지를 우습게 여기며 아버지 말에 순종도 안 하지만 질서가 잡힌 가정이라면 아버지 권세가 절대적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옛날 왕정 시대에 대국의 사신이 왕명을 가지고 속국에 가면 왕과 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사신’이 가진 권세로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왕의 권세를 가지고 대신 갔기 때문이지요. 단 왕이 사신을 선택하여 보낼 때는 아무나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을 택하지요.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영적인 권세를 허락해 주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합당한 자격을 가진 이에게 허락하시지요. 그렇지 않으면 너나 나나 없이 받을 것입니다. 가끔 성결도 안 되고 말씀도 모르는 사람들이 은사를 받았다고 하다가 교만해져 사단의 역사를 받는 것을 봅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게 아니라 사단이 준 것입니다. 그러니 병들고 모든 하는 일이 안 되며 가정이 엉망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영의 세계는 말씀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먼저 성결을 이루어야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합당한 자에게 능력이나 권세를 주십니다.


영적인 권세와 능력을 겸한 것이 바로 ‘권능’입니다. 시편 62편 11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이 ‘권능’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곧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공의에 비춰 합당한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 권능을 허락해 주시지요. 참고로 성결되지 않았는데도 병균에 의한 질병을 고치는 역사를 베푸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영혼을 사랑하여 불같은 기도를 무수히 쌓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신유의 은사를 주신 것이지요.


신유의 은사에 대해 정확히 모르면 능력을 나타내도 신유의 은사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권능을 나타내어도 신유의 은사가 강하다는 식으로 표현을 하지요. 하지만 신유의 은사는 능력과 권능과는 다릅니다. 신유의 은사는 어떤 질병과 균에 의한 것을 치료하는 것이지만 능력과 권능은 퇴화돼 버린 뼈, 부러진 뼈, 끊어진 힘줄 등을 기도해서 치료해 주는 것이지요.


또한 신유의 은사는 간절한 사랑의 기도로 인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실 때도 있습니다. 가령 주의 종에게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성도가 간절히 믿음으로 기도를 요청하는 경우, 하나님께서 그 성도의 순수한 믿음을 보시고 역사해 주기도 하십니다. 이런 경우들은 하나님의 권능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4. 제자들이 권능을 행할 수 있도록 공의를 쌓으신 예수님

마태복음 10장 1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했습니다. 누가복음 6장 12절에는 이 사건이 예수님께서 산에서 밤이 마치도록 기도하고 내려오신 후 있었다고 기록돼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대신하여 권능을 행할 열두 제자를 택하여 세우시기 위해 먼저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를 쌓으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 제자들은 스스로 권능을 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했지요. 다만 예수님을 신뢰하여 붙좇았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대신 기도하심으로 아버지 하나님 앞에 공의를 쌓으신 것입니다. 그 결과 누가복음 9장 6절에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6장 12~13절에는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했지요.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사람을 고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제자들이 스스로 권능을 행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눠 주신 권능을 행했습니다. 그래도 그 열두 사람이 제자로 택함을 받고 예수님을 대신하여 권능을 행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지요. 그것은 오직 예수님을 신뢰하기에 자신의 삶을 뒤로 하고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중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뽑혔지요.


제자들이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오직 예수님과 함께함으로 권능을 행했다면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마가복음 16장 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2장 43절에는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 했지요.


이때도 물론 주님께서 영으로 제자들과 함께하셨지만 제자들도 믿음이 예전보다 많이 성장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은 참 믿음을 갖게 되었지요.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기사와 표적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열두 제자 모두가 권능을 행했던 것은 아니지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택하실 때 그들 모두에게 권능을 허락해 주셨다 해도 공의 가운데 합당한 자격을 갖춘 만큼 진정한 권능의 소유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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