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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09)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 7:8-12 날짜 2014.05.16
지난 시간에는 노아의 방주 안에 들어간 짐승의 종류별 수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곧 모든 동물들은 기본적으로 암수 둘씩, 그중에서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 쌍씩 종족 보존을 위해 방주에 태웠습니다. 여기에 특별한 용도를 위해 부정한 짐승은 한 쌍씩을 더 태웠고 정결한 짐승은 일곱 마리를 더 태웠지요. 오늘은 홍수 기간 동안 방주 안에서의 생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홍수 기간 동안 방주 안에서의 짐승들 생활

방주에 탄 수많은 종류의 짐승들은 1년이 넘게 어떻게 그 제한된 공간에서 함께 지낼 수 있었을까요? 힘센 짐승이 약한 짐승들을 공격하거나 서로 싸워서 해를 끼치는 일이 생긴다면 방주 안은 무질서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볼 때 방주 안에서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가 다 끝나기까지 노아의 방주만큼은 근본의 빛으로 둘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방주 안에 있는 모든 짐승들도 다 근본의 빛으로 둘러 주신 것이지요. 그러니 사나운 짐승은 없고 다 온순한 짐승들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근본의 빛으로 둘러 버리면 온유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악한 사람도 순간에 변하는 것을 봅니다. 악이 있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으로, 간음하고 음욕을 품었던 사람이 정결한 사람으로, 기도하지 않던 사람이 기도하는 사람으로, 성경 말씀을 보지 않던 사람이 성경을 보는 사람으로 순간에 변하지요.
노아는 홍수 이후에도 근본의 빛으로 둘린 공간에 살았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홍수가 마칠 때까지 근본의 빛으로 둘러 주셨습니다. 이에 짐승들이 방주에서 나올 때까지 근본의 악한 속성을 드러내지 않았고, 노아의 말에도 순순히 따랐지요. 짐승들은 자기에게 할당된 공간에서 얌전하게 지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을 입으면 여러분 마음 안에 있는 악성이 나오지 않고 온유하고 사랑과 덕이 있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노아의 방주를 근본의 빛으로 둘렀기 때문에 방주 안에 있는 모든 짐승들이 온유했습니다.

2. 노아의 방주 안에 짐승들에게 할당된 공간

하나님께서는 방주 안의 한정된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각 짐승들의 공간을 배치하셨습니다. 창세기 6장 16절에 기록된 대로 방주는 상, 중, 하, 3층으로 되어 있지요.
아래층부터 체중이 많이 나가는 순서대로 거하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면 코끼리, 하마, 사자, 호랑이처럼 덩치가 크고 체중도 많이 나가는 짐승들입니다. 이는 방주의 전체적인 안정성을 위해서 필요한 배치였습니다. 아래쪽이 무거워야 방주가 더 안정되고 균형도 잘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간층에는 그다음 크기의 짐승들이, 맨 위층에는 새들과 ‘땅에 기는 것들’과 노아의 여덟 식구가 거했습니다. 혹 ‘어떻게 노아와 그의 식구들은 새들과 땅에 기는 것들과 한 층에서 살 수 있었을까’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같은 층에 산다 해도 공간이 잘 구분되어 있어서 노아와 그의 식구들이 사는 데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이 외에도 방주 내부는 공간이 매우 효율적으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양식을 저장하는 공간이 각층마다 있었습니다. 만약 어느 한 층에만 양식 창고가 있었다면 짐승들에게 밥을 줄 때마다 오르내리는 수고가 얼마나 크겠는지요.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짐승들의 양식 창고를 각층의 가장 오른쪽 끝에 만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짐승들에게 하루에 한 번만 양식과 물을 제공하였습니다. 이는 모두가 배부르다 느낄 만큼 넉넉한 양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허기를 느낄 만큼 적은 양도 아니었지요. 방주 안은 하나님의 근본의 빛으로 둘려 있었기에 짐승들은 하루 한 번, 일정량의 섭취만으로도 살아가기에 충분했다는 사실입니다.
노아와 그의 식구들에게 있어 모든 짐승들에게 밥을 주는 일은 하루에 단 한 번 한다 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짐승들에게 밥을 주는 것보다 더 난감한 일은 그들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일이었지요. 아무리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 해도 짐승의 수가 워낙 많아서 배설물도 그 양이 사실 매우 많았을 것입니다. 노아와 가족들이 일일이 짐승의 우리에 있는 배설물을 치워야 한다면 이 얼마나 고역이겠습니까?
그러면 과연 노아와 가족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것까지 미리 아시고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에 배설물 처리 시설을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짐승들이 우리 안의 한 지점에서 배설을 하면 그 배설물이 한 곳으로 모이게 돼 있었지요. 노아와 가족들은 한 곳에 모인 배설물만 방주 밖으로 내버리면 되었습니다.

3. 고된 방주 생활 속에도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지낸 노아와 가족들

노아와 가족들은 방주 생활 내내 짐승들을 돌보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니 사실 심심할 틈도,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지요. 사실 육적으로는 상당히 고된 일을 하며 하루하루 바쁘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상황을 불평하지도, 한탄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심판에서 구원받은 것에 감사했지요. 그러니 자신들이 할 일을 억지로 한 것도 아니었고 대충대충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궂은일들이었지만 방주 생활 내내 감사와 기쁨으로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구원의 은총을 입은 여러분도 이와 같은 마음과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많은 분들이 신앙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서 그렇게 행하고 계시지요. 각종 예배와 기도도 자발적으로 하시고, 봉사할 것을 스스로 찾아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예를 들어 화장실 청소나, 성전 청소도 자원해서 하시는 분들도 꽤 많은 것을 봅니다. 더울 때나 추울 때나 변함없이 식당 봉사, 교통 봉사, 청소 봉사를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육으로 볼 때는 힘이 들고 궂은일이지만,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함으로 기꺼이 하고 계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 모든 분들께 진정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처럼 감사함으로 시작했던 봉사를 혹여 지금은 의무감에서 억지로 하는 분은 안계시겠지요? ‘내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봉사한다.’ 했던 그 마음이 결코 변해서는 안 됩니다. 혹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거나 기분 상하는 일을 당한다 해도 그로 인해 주님께 향한 마음이 변질돼서야 되겠습니까? 주님이 나를 힘들게 하신 것이 아닌데 왜 주님께 향한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운 일을 만나면 그것은 내 마음의 비진리를 발견하는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잘 붙잡아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으로 더 아름답게 변화되어야 하지요. 노아는 가족들과 함께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함으로 결코 녹록지 않은 방주 안의 삶을 묵묵히 성실함으로 지내었습니다.
‘방주’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 했습니다. 성도님들이 영적인 방주 안에서 살기 원한다면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항상 변함없어야 합니다. 이 한 가지만 끝까지 붙잡고 있어도 풍랑 이는 바다와 같은 세상 속에서 능히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지요.
이것을 꼭 기억하여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4.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인다는 말씀의 의미

본문 10절에 보면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서 4절에서도 ‘7일 후에’ 비를 내리기 시작하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7일’은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케 하는 유예기간이라 했지요. 하나님 편에서 홍수 심판을 이루실 때에 영계에 정해 놓으신 공의대로 조금의 더함이나 덜함도 없이 정확하게 이루셨음을 나타냅니다. 얼마나 심사숙고하셨는지를 알 수 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칠 일 후에 홍수 심판을 이루겠다.’고 하신 말씀에는 ‘노아와 그의 자손들을 통해 새롭게 인간 경작을 이루겠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세상에도 ‘졸업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란 말이 있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대홍수 심판으로 경작의 역사가 끝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본문에 “홍수가 땅에 덮인다.”는 말씀에도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땅’은 ‘어둠’을 뜻하며 ‘홍수’ 즉 ‘물’은 ‘말씀’을 의미하지요. 따라서 “홍수가 땅에 덮인다.”는 말씀에는 ‘어둠의 세력으로 인해 물든 이 땅을 하나님의 말씀인 물로 심판하여 새롭게 평정하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사람의 마음에 어둠 곧 악을 심음으로써 이 땅에 그들의 세계를 구축하려 하였지요. 오늘날도 여러분은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 원수 마귀 사단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속에 간음, 음욕, 시기, 질투, 미움, 판단, 정죄, 서운함 등 온갖 비진리와 악들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여서 행하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속에 심겨지게 됩니다. 이렇게 한 달, 두 달, 석 달이 되면 이제 자신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없는 마음이 되어 버립니다. 왜 그럴까요? 사단이 그 마음과 생각을 불어넣어 주고, 사단이 주관하기 때문에 그때는 자신의 마음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그들의 세계를 구축하려 하고, 어찌하든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속에 비진리와 악을 심어 주어 그들의 세계로 이끌어가려는 것입니다. 아주 무서운 일입니다.
세상 것을 취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사로잡힐 수 있고, 한두 번 따라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물들어 버립니다. 이런 것들을 지속하면 결국 중독이 되고 늪에 빠진 것처럼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니 세상 것은 과감히 끊어 버리고 결코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노아 홍수 때에도 세상은 온통 죄로 관영되어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계획이 거의 성공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때를 위해 당대의 의인 노아를 준비시키셨고, 하나님의 공의가 차자 물로 땅을 덮으심으로 세상을 새롭게 평정하셨던 것입니다.
이로써 인간 경작의 역사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세상의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시니 인간 경작이 끝난 것이 아니라 노아로부터 다시 인간 경작이 시작되고 있다는 말이지요. 다음 시간에는 어떻게 인간 경작이 이어져 내려가는지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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