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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13)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 7:16-24 날짜 2014.06.2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세기 강해 일백십삼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대홍수 심판 시 지형의 변화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지구를 뒤덮은 홍수의 수압으로 인해 지층에는 융기 및 침강 현상이 일어났지요. 또한 인력의 영향을 받아 지구를 휩쓸고 도는 물의 힘에 의해 짧은 기간 동안에도 지표면에는 여러 겹의 퇴적층이 생겨났다 했습니다. 그 결과 지구의 지형은 홍수 이전과 매우 다른 형태로 변형됐습니다.

그러면 대홍수 심판 시 죽은 무수한 사람들의 시신과 짐승들의 사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부터는 이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담이 이 땅에 내려와 정착한 곳은 지금의 이스라엘 땅입니다. 인류는 이곳을 중심으로 번성했고,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갔지요. (※자료 화면5 – 중동 지도)

오늘날로 말하자면 중동 지역이 초기 인류의 주된 근거지가 됐던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집트가 위치한 북아프리카 지역으로도 이주해 갔습니다. 다시 말해 중동 지역과 북아프리카 지역은 당시 인구 밀집 지역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혹 오늘날 그 지역의 기후를 아시는 분은 ‘어떻게 그런 곳에 사람이 그렇게 많이 살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지요. 대홍수 심판 전에는 전 지구적으로 기후가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극지방이라도 지금처럼 춥지 않았고, 적도 지방이라도 지금처럼 덥지 않았지요.

따라서 중동과 북아프리카도 지금과 달리 사람이 살기에 훨씬 좋은 기후였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수목과 초원도 무성했습니다. 당시에는 인구가 밀집되어 살기에 적합한 곳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사람에게 딸린 수많은 가축까지 고려하면 대홍수 심판으로 인해 이 지역에서는 엄청난 사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 수많은 사체는 대홍수로 인해 지형의 변화가 생기면서 지층 속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지층이 내려앉거나 솟아오르는 과정에서 사체들이 지층 사이에 묻힌 것입니다.

이것은 육적으로는 단순히 땅속에 묻힌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민 16:31-33에 보면 출애굽한 백성 중에 모세를 대적했던 무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저주를 받아 멸망했는지가 잘 나와 있지요.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 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대홍수 심판을 이루실 때도 일차적으로는 사람과 짐승들이 수장되게 하셨고 다음으로 그들의 사체는 땅을 열어 삼키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단순히 지층 변화에 의한 매장이 아니라 영적으로는 ‘음부’를 의미하는 땅을 열어 그 속으로 던져 버리셨던 것이지요.

이렇게 매장된 사람과 짐승의 사체로 인해 오늘날 중동 지역에서 석유가 많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중동 지역은 세계 석유 매장량의 75%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자료 화면6 – 석유매장량 표시 지도)

‘석유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오늘날 여러 가지 이론이 있는데 가장 일반적인 주장은 생물체의 퇴적에 의해 생성됐다는 것이지요. 동물의 사체와 함께 엄청난 양의 식물이 퇴적된 것입니다.

이는 성경을 풀어 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그러면 중동 지역에 석유가 많이 매장돼 있으니 그 지역을 축복의 땅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당장은 축복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축복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그 지역이 얼마나 많은 전쟁과 테러의 무대가 되어가고 있습니까? 오히려 석유 자원으로 인해 외세로부터 많은 침략을 당하고 있지요. 물질적인 당장의 유익을 제외하고는 지금 그 지역은 축복의 땅이 아닌 저주의 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16절 후반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이 표현에는 다소 강권적인 느낌이 담겨 있지요. 그렇다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노아를 강제로 방주 안에 넣으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주관하셔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방주 안에 들어간 짐승들을 붙드시고 지키셨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강권적인 지키심과 보호하심이 있었기에 방주 안에 탄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어떠한 요동함도 없이 지낼 수가 있었지요.

우리도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붙드시고 지켜 주시면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설령 연단을 받는다 해도 축복 가운데 연단해 가시지요.

아브라함도 연단의 과정 중에도 항상 축복이 임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내를 빼앗기는 시험이 있었지만 아버지 하나님께서 강권하여 주관해 가시니 오히려 축복으로 갚아졌지요.

요셉도 연단 중에 항상 축복이 임했고 범사에 형통했습니다. 창 39:3에 요셉이 종으로 팔린 상황에서는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했지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창 39:23에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나 요셉은 어떻게 연단 중에도 이처럼 축복을 받아갈 수가 있었을까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연단을 받을 때에 축복을 전혀 받지 못하면서 어려움만 겪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순종할 마음이 되어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에서 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정금같은 믿음으로 나와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참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연단이 필요합니다. 이때 연단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변화되는 사람은 축복 속에 연단을 받게 되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연단을 받으면서 자신을 발견하여 변화되기보다는 원망하고 불평하며 탄식합니다. 환경과 사람을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며 심지어 교회와 하나님에 대해서까지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더 나아가 죄로 인해 시험 환란이 오면 이때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변명과 핑계를 대려고 합니다. 계속해서 이런 마음과 태도를 갖는다면 연단 중에 결코 축복이 올 수 없지요.

물론 때에 따라 물질로 연단하시는 동안은 물질의 축복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먹이시고 입히시며 인도해 가시지요. 물질의 연단 동안에는 비록 넉넉한 물질의 축복은 없다 해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채워 주시므로 결국 형통하게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연단 중에 어려움을 겪는 분이 있다면 ‘나는 과연 순종할 마음 자세가 되어 있는가?’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순종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은 왜 연단이 왔는지를 발견해서 그 원인을 신속히 해결해 나갑니다.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원인을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발견해도 변화되려 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브라함, 요셉, 노아처럼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항상 아버지 하나님의 강권적인 지킴을 받고 더불어 복도 받아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아의 나이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에 내리기 시작한 비는 40일 동안 계속됐습니다. 이로 인해 해수면이 점차 올라갔지요. 처음엔 노아의 방주가 땅에서 물 위로 떠오를 정도가 되었습니다. 점점 더 수위가 올라가자 방주는 물 위를 떠다니게 되었지요. 급기야 높은 산들도 모두 물에 잠길 정도로 수위가 올랐습니다.

그런데 본문 20절에 보니 수위가 이렇게 모든 산이 다 덮일 정도에서 다시 15규빗이 더 올랐다는 것입니다. 15규빗은 오늘날의 단위로 환산하면 약 7.5미터입니다. 이는 노아 방주의 높이 30규빗의 딱 절반입니다.

따라서 대홍수 시 수위가 모든 산을 다 덮을 정도에서 다시 15규빗이 더 올랐다는 것은 방주가 어떤 것에도 걸리지 않고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지요. 배가 물 위에 떠 있을 때에 보통 아랫부분은 물속으로 가라앉습니다. 배가 사람이나 화물로 채워질수록 그 무게만큼 더 가라앉게 되지요. 노아의 방주는 동물들과 양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방주 높이의 반 정도만큼 수위가 더 오른다면 방주가 안전하게 떠다닐 수가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여유가 없었다면 자칫 물 위를 떠다니던 방주의 바닥이 높은 산의 봉우리에 걸릴 수도 있지요. 그러면 배가 암초에 걸려 사고를 당하듯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대홍수 심판 때, 물은 높은 산보다 15규빗이나 더 높게 차올랐습니다. 그 결과 본문 21-23절 말씀처럼 땅 위에 움직이던 생물들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서 기던 것들과 사람들까지 다 죽었습니다. 새는 날 수 있다 해도 높은 산까지 물로 덮여서 내려앉을 곳이 없게 되자 결국은 다 물에 빠져 죽게 된 것입니다. 육지에 있는 모든 것 가운데 코로 숨을 쉬던 모든 생물이 다 죽은 것입니다. 방주 안에 타지 못한 사람이나 짐승은 그 어느 것도 피할 수 없었던 완전한 심판이었지요.

앞으로 있을 백보좌 대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날에는 창세 이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지요. (단,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이 네 명은 예외입니다. 이분들은 영의 서열 최상위에 계신 분들로 대심판 시 삼위일체 하나님을 보좌하십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예외 없이 대 심판 때 영원한 사망의 판결을 받아 지옥의 불못이나 유황못으로 떨어지게 되지요. 고후 5:10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24절에 “물이 일백오십 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 노아 600세 되던 해 2월 17일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40일 동안 계속됐지요. 그로 인해 7월 17일까지 150일 동안 물이 온 땅을 뒤덮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천하의 높은 산까지 물로 덮인 상태는 초기 지구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바로 창 1:2에 보면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했습니다. 본격적인 6일 창조 역사가 시작되기 전 지구는 온통 물에 덮여 있었지요.

그런데 대홍수 심판 시 그 당시 상황이 재현됐던 것입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전 지구가 150일 동안 물에 잠겨 있었다는 이 기록은 참이요, 사실입니다. 노아의 대홍수는 신화나 전설이 아니요, 실제 있었던 엄청난 사건이지요. 이를 증명하는 증거들은 많습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증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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