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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117)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 8:6-14 날짜 2014.08.08
창세기 7장 11절 이하를 보면 대홍수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에 시작되어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물이 150일 동안 온 땅을 뒤덮어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셨습니다.
창세기 8장에는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있는 생물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바람이 불게 하시니 물이 감하여 7월 17일에는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지요. 10월 1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으며 그날로부터 40일 후 노아는 새를 방주 밖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오늘은 노아가 새를 방주 밖으로 날려 보낸 목적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노아가 수위(水位)를 알기 위해 새를 날려 보낸 일이 주는 교훈

첫째는, 믿음에는 행함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노아는 대홍수 심판 전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그 당시 노아의 순종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신 상황 속에서 그대로 순종하는 차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방주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짐승들을 방주에 태우는 일도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홍수 심판 이후부터는 인간 경작이 새롭게 시작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대홍수 심판이 마무리되는 상황에서 노아가 스스로 ‘행함’을 보일 수 있도록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노아가 각 상황에 맞게 스스로가 행할 바를 주관받아 행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이끄시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홍해를 건널 때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건넜습니다. 하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요단강을 건널 때는 믿음의 행함을 내보여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믿음이 성장한 만큼 그에 맞는 행함을 내보일 수 있도록 이끌어 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면서 권능을 베푸실 때에도 상대가 최소한의 믿음을 내보이도록 이끄시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태어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이 눈을 떠서 볼 수 있게 하실 때에도 그러셨지요. 믿음을 갖도록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라 주시고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그냥 말씀만으로는 소경의 눈을 고치실 수가 없기 때문일까요? 실로암 못에 눈을 뜨게 하는 특효 성분이 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소경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행함을 내보이도록 그 길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수 있고, 영생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행할 바를 행할 때에, 또는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순종할 때에 그것을 믿음으로 인정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자라며, 믿음의 결국인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성도님들도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예전만큼 응답이 척척 오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 원인이 물론 죄의 담 때문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돌아보아 죄의 담이 없다면 그만큼 하나님을 신뢰함이 더해졌는지를 보시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갓난아이를 키울 때에 혼자 걷지 못할 때는 안아 주고 업어 줍니다. 그러나 아이가 이제 혼자 걸어야 할 때는 자꾸 넘어져서 아파하고 운다 해도 무조건 안아 주지는 않습니다. 우는 것이 안쓰러워 늘 부모가 안아만 준다면 그 아이는 영영 혼자 걷지 못하는 아이가 될 것입니다.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우리를 키우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연단을 받는 중에 마치 혼자 있는 것 같다 느껴질 때면 이 말씀을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깊은 사랑을 깨우침으로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대홍수 이후로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 더 쉽지 않게 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는 대홍수 전까지는 아버지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많은 것을 듣고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홍수가 시작된 후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근본의 빛이 대홍수가 시작되면서 이 땅에서 완전히 거두어지자 이 땅에는 육의 기운이 더 왕성해졌습니다.
천지창조 첫째 날,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을 때 근본의 빛이 이 땅을 둘렀다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 왔을 때부터 근본의 빛은 거둬지기 시작했지요. 이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도 그때부터 근본의 빛이 거둬지는 만큼 육의 근본 속성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쉽게 이해하려면 불같이 기도해서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을 입어 보십시오. 마음이 온유해지며, 미움이나 시기, 질투도 눈 녹듯이 사라져 오히려 상대가 사랑스러워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같이 기도하지 않으면 원수 마귀 사단의 미혹을 받아 죄를 짓고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근본의 빛이 거둬지는 만큼 죄로 물들어서 육의 속성이 드러났다 해도 근본의 빛의 강도가 더 강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에 지장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홍수 후에는 근본의 빛이 남김없이 거둬짐으로 인해 육의 근본 속성이 더 왕성해진 것입니다.
여러분도 성령의 감동함과 충만함을 잃어 가면 그만큼 은혜도, 믿음도 떨어져 세상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들이 틈타 세상 것이 들어오게 되지요. 그러니 우리 주님께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대홍수 후 육의 근본의 속성이 더 왕성해짐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려면 이전과는 다른 더 많은 노력과 행함이 있어야 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쉽게 교통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만큼 힘쓰고 애써야 영계를 뚫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물며 죄악으로 더욱 관영해진 이 마지막 때에는 어떻겠습니까. 영계를 뚫고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기도와 금식을 쌓아야 합니다.
다행히 지금은 구약 시대와 달리 성령이 하나님의 자녀들 마음에 내주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은 항상 쉬지 말고 성령 안에서 깨어 기도하십시오.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밝히 받아 영적으로 캄캄한 이 세상에서 항상 밝은 빛으로 인도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 노아가 새를 방주 밖으로 날려 보낸 목적

노아는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할 때, 까마귀와 비둘기를 택했습니다. 본문 창세기 8장 7절에 “까마귀를 내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했습니다. 까마귀는 이처럼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음에도 끝내 노아가 원하는 답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까마귀는 노아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은 것입니다. 노아가 원하는 답을 가지고 온 새는 까마귀가 아니라 비둘기였습니다.
노아가 새를 방주 밖으로 날려 보낸 목적은 무엇입니까? ‘물이 빠지고 땅이 말라서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얻는 것입니다. 까마귀는 그 소식을 가져오지 않았으나 비둘기는 노아가 원하는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노아는 까마귀가 아닌 비둘기를 통해서 방주 밖의 세상에 대해 알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까마귀’와 같은 일꾼인가요? ‘비둘기’와 같은 일꾼인가요? 조직의 질서 가운데 어떤 일을 지시받았을 때에 나는 어떻게 했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지시받은 대로만 해내는 사람이었는가, 지시받은 것도 안 하는 사람이었는가, 아니면 지시받은 것 이상으로 해내는 사람이었는가. 이 세 부류 중 윗사람의 마음에 만족을 주는 사람은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지시받은 것 이상으로 해내는 사람이지요. 이것은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세상 어느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에서 인정받고 성공하려면 자신이 맡은 역할 이상을 해내야 합니다. 그런데 직장 생활이 힘들다고 하는 대부분의 경우를 보면, 자신이 맡은 역할조차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능력이 부족하면 부단히 노력해서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여기에 마음 그릇을 넓혀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명한 것을 그대로 순종함은 물론 그 이상을 이뤄내는 자녀를 보실 때에 감동을 받으시고 사랑의 표현을 해 주시지요. 잠언 25장 13절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린다면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지요. 그런데 까마귀와 비둘기의 행함이 달랐던 데는 마음 그릇의 차이, 토질의 차이도 있었습니다. 한 종류의 씨앗이라도 어떤 토질에 심느냐에 따라 열매의 맛이나 성질이 다른 것을 봅니다. 예를 들어 고구마도 어떤 토질에 심느냐에 따라서 밤고구마나 물고구마가 됩니다. 즉 밤고구마를 캐려면 척박한 땅의 토질에, 물고구마를 캐려면 옥토 같은 땅에 심어야 하지요.
이처럼 동일한 ‘말씀’의 씨앗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떨어져도 각 사람의 마음 밭에 따라 반응이 다릅니다. 심은 대로 딱 그만큼만 열매를 내는가 하면 평균 이하의 열매를 내기도 하고, 반대로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각 사람의 마음 밭의 상태에 따라서, 또한 동일한 마음 밭이라도 그 크기에 따라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님들은 마음 밭을 옥토로 부지런히 개간하는 동시에 자기적인 의와 틀을 깨뜨려서 마음 그릇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때그때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서 아버지 하나님 마음에 맞게 딱딱 맞춰드린다면 얼마나 그 마음이 시원하시겠는지요? 더 나아가 그 이상도 이뤄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감동을 받으시고 “내가 무엇을 줄꼬?” 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사자와 같은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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