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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레위기 강해(11)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레2:13-16 날짜 2003.06.08
오늘은 구약의 제사법 중 소제에 대한 마지막 시간으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물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번제를 온전케하는 소제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법은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서도 영적으로 온전히 적용되어야 하는 말씀입니다(마 5:17). 구약의 제사법 중에 하나인 번제는 오늘날 하나님 앞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주일 예배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제를 통해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 길을 인도받고 축복받은 것처럼 오늘날은 주일을 온전히 지키며 예배드리고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소제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의미를 담아 곡식으로써 드리는 제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한 주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소제를 드림으로 번제가 온전케 되는 것이고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며 감사하고 찬송할 때 행함과 진실함으로, 또한 물질로 헌신하여 드림으로 온전한 주일 성수가 되는 것이지요. 지난 시간까지 곡식으로 소제를 드릴 때는 고운 가루로 갈아서 드리며 기름과 유향을 넣어 향기로운 제물이 되게 하되 누룩과 꿀을 넣어서 가루의 순수함을 변질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2. 예물에 소금을 드리는 영적인 의미

이어 본문 레위기 2:13을 보면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소제 곧 감사 예물을 드릴 때에는 반드시 소금을 쳐야 하는데 이에 대한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1) 화평 가운데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소금은 음식에 녹아 들어가 음식의 간을 맞춰 줍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들에 소금을 전혀 넣지 않는다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소금으로 음식의 간을 맞춘다는 것은 영적으로 "화평하게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소금이 음식의 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자신이 녹아져야 하듯이 화평케 하는 소금의 기능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죽어지는 희생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는 것은 먼저 우리가 자신을 희생하여 화평을 이루는 가운데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하나님과 화평한 상태에서 드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죄악을 짐짓 범하고 있는 사람이, 이것을 회개하지는 않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다면 이미 하나님과의 화평이 깨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예물을 기쁨으로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66:18에 보면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했지요.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예물을 드릴 때도 먼저 죄 가운데서 떠남으로 하나님과 화목한 후에 예물을 드려야 그 예물을 기뻐 받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죽어지는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고 죄 가운데 살던 옛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세상에서 범하던 죄악이나 끊기 어려운 세상 정욕과 옛사람의 구습도 피 흘리기까지 싸워서 벗어 버려야 하지요.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한 것처럼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죽어지는 노력이 있을 때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게 되는 것이며, 그런 속에서 드려지는 예물이라야 하나님께서도 기뻐 열납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믿음의 형제와 서로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23-24에 보면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말씀했습니다. 형제에게 악을 행하여 상대에게 고통을 주고 있으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예물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그 예물을 기뻐 받으시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들은 형제에게 자기 유익을 좇아서 빚을 지거나 보증을 서게 하여 큰짐을 지우고 그것을 갚지 않으므로 고통받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는 열심히 예물을 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형제간에 결코 금전 거래를 하거나 보증을 서지 말라 하셨습니다. 만약 형제에게 돈을 빌리거나 보증을 서게 하고 이를 갚지 않아서 원망을 듣게 된다면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릴 때도 심히 민망한 일이며 진리 가운데 행치 않으면서 드리는 것이니 참된 믿음의 예물이라 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니 형제에게 이런 짐을 지운 분들이 있다면 속히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형제와의 사이에서도 행함으로 돌이켜야 하는 것이지요.
이와 반대로 자신에게 악을 행한 형제가 있다 해도 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그를 용서하여 마음에 화평을 이룰 때라야 하나님께서도 그 예물을 열납하실 수 있습니다. 꼭 물질의 문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이유로든지 형제와 불목하여 서로 시비와 원망이 있거나 상처를 주며 걸림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또한 형제와 화평을 이루고 자신의 마음에서도 성령이 충만하므로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릴 때 이것이 바로 소금을 친 소제가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변함없는 언약에 의지하여 온전한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다음으로 소금은 언제나 그 맛을 잃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문 레위기 2:13에 보니 예물에 치는 소금을 일컬어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라 했습니다. "언약의 소금"이란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변함없는 믿음을 말합니다.
소금은 대체로 바다에서, 곧 물에서 나오지요. 물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신실하며 결코 변개함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물 드릴 때 소금을 치라는 말은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의 변함없는 언약을 믿고 온전한 믿음으로 예물을 드리라는 뜻이 됩니다.
자신이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갚아주시며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축복으로 갚아 주실 줄 믿고 드려야 합니다. 물론 축복이라 해서 꼭 물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복을 비롯하여 영육간에 모든 축복을 말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꼭 축복을 바라고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드린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 앞에 나와 겸비하게 축복을 구하는 믿음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모세가 애굽의 왕자로서 귀한 자리를 버릴 때도 상 주심을 바라고 버린 것이라 했습니다. 또 히브리서 12:2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참혹한 십자가의 형벌을 당하신 것도 아버지께서 주실 영광과 인류의 구원이라는 큰 열매를 바라보심으로 모든 고난을 능히 감당하신 것입니다.
물론 상받기를 바란다는 것과 무엇을 드렸으니 그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계산적인 마음과는 전혀 다르지요. 대가를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생명까지도 드릴 마음이지만 축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므로 겸비하게 축복을 구할 때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며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 약속하셨으니 우리가 그 말씀을 믿으므로 예물을 심고 또 그렇게 드린 것에 대해 하나님의 약속대로 축복받기를 구하는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3. 예물을 드릴 때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더하는 영적인 의미

본문 14절에는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했습니다. 이 말씀은 '처음 익은 것을 드리라'는 12절 말씀에 이어지는 보충 설명으로서 첫 이삭을 소제로 드릴 때도 곡식 자체를 단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여 가루로 만든 후에 올려드림으로 이것이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레위기 2:15-16에는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기름의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했지요. 14절에서 첫 이삭을 소제로 드릴 때 고운 가루로 드려야 하는 영적인 의미는 중심에서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한다는 의미라 했는데 기름과 유향은 어떤 의미일까요?
여기서 기름을 붓는 것은 진액을 다해 드리는 것, 곧 우리의 생명을 다해 드리는 것을 의미하고 유향을 더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중심으로 예물을 드리며 또한 예물 드리는 우리 자신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저는 소제를 드릴 때 고운 가루로 드려야 한다거나 기름과 유향, 소금 등의 영적인 의미를 몰랐을 때도 항상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가령, 한달치의 수입이 들어오면 먼저 십일조를 제하는데 십일조라고 해서 꼭 십분의 일만 드린 것이 아닙니다. 선물이나 어떤 대접을 받는 것 등 다른 수입들이 있을 수 있기에 그런 것까지도 예상해서 넉넉하게 드리며 또한 인색하지 않고 풍성하게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 이상으로 채워 주실 줄을 믿으므로 넉넉히 드리지요.
이처럼 십일조 외에도 한달치의 감사 예물과 건축 예물을 떼고 생일이나 감사절 등의 특별한 절기가 있으면 그 절기에 해당하는 예물은 미리 별도로 준비해 둡니다. 그 밖에도 늘 감사의 제목을 찾아 드리며, 언제 특별한 감사의 제목들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별도의 예물을 예비해 둡니다. 정성과 믿음을 다해 예물을 준비하여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부족함이 없도록 항상 차고 넘치게 채우시며 해가 갈수록 하나님께 더 많이 심을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레위기 강해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며, 또한 하나님께서 흠향하시기에 향기로운 예물로 드리심으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날마다 감사의 조건이 더욱 넘치도록 축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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