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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레위기 강해(2)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레1:2 날짜 2002.12.01
오늘은 레위기 말씀을 통해 소나 양의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면서 소나 양처럼 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님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절한 이유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신 것처럼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하나님

불순종한 아담 이후로 원죄와 자범죄를 가진 죄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만이 회막 안의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제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주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누구나 성전 안에 들어가서 예배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께서 마음 안에 거하시며 지성소로 삼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신 것처럼 성령께서는 마음 가운데서 우리를 부르시며 교통하기 원하시지요.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주관하셔서 진리 가운데 살게 하시며 하나님에 대해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는 만큼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뜻을 더욱 깊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죄악들을 벗어 버리고 성결되어야 하며 성결을 이루면 성령의 음성을 점점 더 밝히 들을 수 있고 축복의 길, 응답의 길로 갈 수가 있지요.

2.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드릴지니라

본문 레위기 1:2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배를 드리면서 십일조, 감사, 건축, 구제 등 여러 예물을 드리는데 하나님께서는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곧 살아 있는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으므로 오늘날은 문자 그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를 깨우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생축, 곧 살아 있는 가축 중에서 예물을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여 거룩한 산 제사, 곧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에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말씀하신 대로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 중에 졸거나 잡념에 빠지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판단 속에 의심하는 예배는 영적 예배가 아닙니다. 또한 교회 밖에서는 방탕하고 정욕적으로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아가면서 예배 시간에만 경건한 모습으로 외식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실 만한 산 제사라고 할 수가 없지요.
예배 시간에 신령과 진정으로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배할 뿐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도 항상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예배와 모든 예물이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지며 영적 예배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리게 하셨을까요? 이는 소와 양이 모든 짐승들 중에서도 인류의 죄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님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절한 짐승이기 때문입니다.

3.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리게 하신 영적인 의미

생축 중에서 소나 양이 예수님을 나타내기에 적절한 짐승인 까닭은 무엇일까요? 먼저 소가 예수님과 닮은 면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소는 사람의 짐을 대신 져 줍니다.
소가 사람의 짐을 지는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의 죄짐을 대신 져 주셨지요. 마태복음 11:28을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사람마다 세상의 썩어질 부귀 영화, 지식과 명예, 그 밖의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고 애쓰며 살아가는지요. 이렇게 여러 가지 짐을 질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죄의 짐을 지고 여러 가지 시험 환난, 고통을 당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셔서 속죄의 피를 흘려 주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생의 모든 수고와 짐들을 대신 져 주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는 이제 모든 수고와 죄짐을 내려놓고 마음에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소는 사람에게 아무 해도 끼치지 않으며 오직 유익만 줍니다.
소는 사람에게 순종하여 노동력을 제공하고 젖과 고기와 가죽을 주며 머리에서 꼬리까지 버릴 것이 없지요. 우리 예수님께서도 오직 사람에게 유익만 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증거하심으로 위로와 소망을 주시며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시고 질병과 연약함을 치료해 주셨지요. 주무시거나 잡수시지 못하면서도 어찌하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에 힘쓰셨으며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죄인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셋째로, 소는 고기를 주어 우리 사람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살과 피를 주어 양식삼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53-54을 보면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삼아 그대로 지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음식을 먹고 마셔야 살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양식삼아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지요.

넷째로, 소는 땅을 갈아 비옥한 토양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예수님도 사람의 마음밭을 갈아 주십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좋은 밭 등 사람의 마음을 네 가지 밭으로 비유한 말씀이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오늘날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능력을 주심으로 우리의 마음이 좋은 밭으로 변화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죄와 악을 사하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기도하고 열심히 진리대로 순종해 나갈 때 옥토와 같이 기름지고 좋은 밭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는 것마다 30배, 60배, 100배로 거두며 영육간에 축복받아 가는 것이지요.

다음으로는 양이 예수님과 닮은 면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양은 온유합니다.
세상에서도 온유한 사람을 비유하여 순한 양 같다는 표현을 쓰는데 사람 중에서 세상 누구보다 온유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사야 42:3을 보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하셨지요. 소망이 없는 악하고 패역한 영혼들에 대해서라도, 회개하고도 거듭거듭 범죄하는 인생들에 대해서도 그가 돌이키도록 끝까지 참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능히 모든 사람을 멸하실 수도 있는 권세가 있으시지만 악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도 그들에 대하여 참으셨고 사랑하셨습니다.

둘째로, 양은 순종합니다.
양은 목자가 몰고 가는 대로 순종하여 따라가며 털을 깎으면 깎는 대로 가만히 있지요. 고린도후서 1:19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말씀한 대로 예수님께서도 자기의 뜻을 내세우지 않으시고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만 하셨습니다. 평생토록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 원하시는 장소에 가셨으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다가올 십자가의 고난을 잘 아셨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기를 원하심으로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셨지요.

셋째로, 양은 깨끗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양은 깨끗하고 하얀 양으로 아직 교미하지 않은 일 년 된 숫양을 말합니다(출 12:5). 사람으로 비유하면 청년기의 사랑스럽고 순결한 때로서 바로 흠도 점도 없이 순결하신 우리 예수님에 비유할 수 있지요.
또 양은 털과 고기와 모든 것을 제공해 주며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유익만 줍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께서도 살과 피를 주셨고 마지막 생명까지도 다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 뜻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의 담을 헐어 주셨지요. 그리고 오늘날도 우리의 마음을 개간하여 정결하고 기름진 옥토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소와 양으로 사람의 죄를 대속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이 되셨는지 밝히 깨달아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에 늘 감사하며 사도 바울이 주를 본받는 자 되었다 한 것처럼 주를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하셨으니 정녕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았다면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빛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모든 죄악을 벗어 버리고 항상 빛 가운데 거함으로 장차 천국에서도 주님과 함께 가장 빛나고 영화로운 자리에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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