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바로가기복사 PDF
제목 레위기 강해(8)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레1:14-17 날짜 2003.02.02
오늘은 소와 양, 염소의 번제에 이어 새의 번제에 대하여 증거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새의 번제에 대한 방법과 절차 그리고 영적인 의미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삼을 것이요

레위기 1:14을 보면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삼을 것이요" 했습니다. 번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반드시 드려야 하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부유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도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번제의 제물을 빈부의 차이에 따라 드리게 했던 것입니다.
원래 번제의 제물로서 가장 합당한 짐승은 흠 없는 수송아지인데 이를 구할 형편이 되지 않는 백성들은 양이나 염소를, 너무나 가난해서 양과 염소조차 드릴 수 없을 때는 새를 드릴 수 있도록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형편과 상황을 아시므로 각자의 믿음의 따라 인도해 가십니다. 예를 들면, 이제 막 구원받아 젖먹는 믿음일 때에는 다만 주일예배에 나와 참석만 해도 한 주간을 지켜 주시고 은혜를 체험하게 해 주시지요.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온전한 영적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 해도 부족하다고 외면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배뿐만 아니라 예물이나 충성, 기도 등 신앙생활의 모든 면에서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형편 가운데서 사랑과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 예물을 드리며 바쁜 생활 속에서도 시간이 나는 대로 어찌하든 기도하고 심방하고 전도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예물이 적다 하거나 그 충성과 열심이 부족하다 하지 않으시지요.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형편과 처지를 이해하시고 자신의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마음의 향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2. 그 머리를 비틀어 끊고 단 위에 불사르고 피는 단 곁에 흘릴 것이며

새의 번제는 그 방법에 있어서 소나 양과 염소 등 다른 짐승들과 여러 가지로 차이가 있는데 레위기 1:15을 보면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머리를 비틀어 끊고 단 위에 불사르고 피는 단 곁에 흘릴 것이며" 했습니다.
이처럼 새를 번제로 드리는 방법이 소나 양, 염소를 드릴 때와 차이가 나는 가장 큰 이유는 제물의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입니다. 제물을 잡을 때에도 소나 양은 칼로 잡아야 하지만 조그만 비둘기를 죽이는 것은 손으로 목을 비틀어 끊기만 하면 되지요. 작은 비둘기 새끼를 소나 양처럼 큰 짐승을 잡는 칼로 죽인다면 격에 맞지 않고 모양새도 우습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의 번제는 제사장이 머리를 비틀어 죽이는 것이고 동시에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의미를 겸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짐승들은 단 북편에서 잡아서 그 피를 단으로 가져와 단 사면에 뿌리게 되어 있지만 비둘기는 곧바로 단에 가져와 단에서 잡습니다. 이 또한 제물에서 나오는 피의 양이 너무 적어 북편에서부터 단까지 가지고 오면 이미 피가 다 쏟아져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에서 잡는 것이고 원래는 단 사면에 피를 뿌려야 하지만 적은 양의 피를 그저 단 곁에 흘려주는 것만으로 속죄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새의 번제를 드리는 벙법이 짐승으로 드리는 것과 또 다른 것은 부위별로 자르지 않고 통째로 드린다는 점입니다. 소나 양과 염소는 잡아서 가죽을 벗기며 부위별로 각을 떠서 드리지만 조그만 비둘기 새끼를 껍질을 벗기며 부위별로 각을 뜬다면 너무나 볼품없고 제물로서의 가치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비둘기를 제물로 드릴 때 각을 뜨지 않고 통째로 불에 태워 드리게 하셨지요.

3. 멱통과 더러운 것은 제하여 단 동편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

새의 제물을 불에 태워 번제로 드리기 전에 먼저 제거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레위기 1:16에 나오는 대로 멱통과 더러운 것 곧 내장이지요. 송아지나 양, 염소를 잡을 때에는 내장도 버리지 않고 깨끗하게 씻은 후에 전부 다 불태웠지만 비둘기 새끼는 가느다란 멱통이나 내장을 씻기가 어려우므로 통째로 꺼내어 버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제물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행위는 소나 양의 더러운 부위를 씻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입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림으로 이전에 죄악 가운데 더러웠던 마음과 행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씻는 것을 나타내지요.
새의 멱통과 내장은 단 동편의 재 버리는 곳에 버려야 하는데 이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2:8을 보면 하나님께서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셨다 했습니다. 이때 동방이라는 말의 영적인 의미는 바로 빛으로 둘린 공간이라 했지요.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도 동편은 해가 뜨는 방향이고 해가 떠서 빛이 임하면 밤의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둘째 하늘에 에덴동산을 창설하실 때도 어둠의 영역과 반대되는 빛의 공간인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만드셨지요.
그러면 비둘기 새끼의 멱통과 더러운 것을 단 동편에 버리게 하신 데에는 어떤 영적인 의미가 있을까요? 이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림으로 모든 죄악의 더러움을 벗어 버리고 빛이신 주님께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두운 데서는 잘 보이지 않던 더러움이라도 밝은 빛 가운데로 나오면 뚜렷이 보이는 것처럼 주님께 나와 진리의 말씀에 자신을 비춰 보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많은 죄악을 발견하게 됩니다.
에베소서 5:13에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말씀한 대로 주님의 빛 가운데 나옴으로써 발견된 죄악의 더러운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다 벗어 버리고 이제는 어둠에 속한 죄의 종이 아니라 빛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물의 더러운 것을 제거하여 동편에 버리는 것은 영적으로 더러운 죄악을 가지고 어둠에 거하였던 우리가 죄악을 벗어 버리고 빛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4. 날개 자리에서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나무 위에 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또한 레위기 1:17을 보면 "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했습니다. 비둘기 새끼는 너무 작기 때문에 각을 뜨지 않는데 날개를 찢을 때에도 아주 찢지 않고 날개를 찢는 의미만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날개를 찢는 것은 영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새의 날개는 생명과 같은 것이므로 날개를 찢는다는 것은 바로 제물 드리는 사람이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여 하나님 앞에 생명까지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죄와 악을 벗어 버릴 뿐 아니라 자기적인 의, 육신의 생각을 주장하지 않는 온전한 헌신과 복종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고린도전서 15:31에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한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든 죄악과 비진리 가운데 거하던 옛사람이 날마다 죽어져야 합니다.
이처럼 날개를 찢은 제물을 단 윗 불 위의 나무에 불살라 드리면 이 또한 다른 제물들과 마찬가지로 화제요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됩니다. 부유한 사람이 드리는 소의 번제든지 혹은 양과 염소의 번제든지 또한 지극히 가난한 사람이 드리는 새의 번제든지 각각의 제물과 드리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번제를 드리는 중심에는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온 힘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향기로운 중심이 열납될 수 있는 화제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 4:24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말씀한 대로 자신의 상황과 형편 속에서 정녕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하며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불의 제사, 산 제사로 하나님 앞에 올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마다 이와 같이 불의 제사를 드리고 있는지요? 흠 없는 제물을 가져와 정성껏 드리는 것처럼 세상의 근심과 염려 없이 기쁨과 감사함이 가득한 마음으로 예배하십니까? 경건하고 거룩한 심령으로 예배를 준비하며 졸거나 어떤 잡념을 가지는 일이 없이 성령의 감동함 속에서 말씀을 들으십니까? 말씀을 듣는 대로 마음에 양식삼아 맑은 물에 더러움을 씻는 것처럼 죄와 악을 날마다 버리기 위해 불같이 기도해 나가시는지요?
만약 여러분이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이렇게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드렸다 하면 반드시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가정, 일터, 사업터에서 시험 환난이 사라지고 믿음으로 간구하는 마음의 소원마다 응답받으며 무엇보다도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신속하게 진리의 사람,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지요. 혹여 온전한 영적 예배로 드려지기에 합당하지 않은 분야가 발견되었다면 이제는 변화되어 영적인 예배를 드림으로 언제나 불의 응답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번제를 명하신 까닭은 백성들이 항상 번제를 드리면서 매일 매 순간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뿐만 아니라 1년 365일을 항상 하나님 안에 거하며 아름다운 마음의 향을 올려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기억하시며 발길이 닿는 곳마다 형통함과 축복으로 간섭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번제를 드리며 매 순간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이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랫글 : 레위기 강해(9)
윗글 : 레위기 강해(7)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