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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차 영·혼·육(5)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고후10:3-6 날짜 2004.02.29
오늘은 혼의 정의와 작용을 살펴보면서 혼적인 작용, 곧 생각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지난 시간까지는 육에 대해 설명했고 오늘부터는 혼의 분야로 들어갑니다. 세상 사람들도 보이는 몸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영과 혼이 별개라는 것과 영과 혼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지를 못합니다.
혼에 대한 말씀을 잘 양식삼으면 자신의 혼적인 작용, 곧 생각을 통제하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계속 떠올라 괴로워하는 경우 스스로 원치 않는다면 생각이 떠오르지 않도록 제어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미워하는 사람을 보면 미운 감정이 먼저 떠올라서 사랑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이 때에도 자신의 혼적인 작용에 대해 밝히 알면 미워하던 사람을 사랑하기가 쉬워지므로 성결을 이루는데도 혼을 알고 다스린다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1. 혼의 정의와 작용

사전을 보면 혼에 대하여 '사람의 육체 속에 깃들여 있어서 정신 작용을 다스리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 '넋, 얼, 영혼, 영 이런 것들과 동의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혼에 대한 정의는 이와 다릅니다.
사람의 머리에는 뇌가 있고 그 안에는 기억장치가 있어서 자라면서 얻게 된 지식들, 곧 보고 듣고 배우고 체험한 수많은 내용들이 저장됩니다. 이렇게 저장된 지식들, 곧 기억된 내용들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생각입니다. 이러한 머리 속의 기억장치와, 그 안에 기억된 지식들, 그리고 그것을 떠올리는 생각의 작용들을 통틀어 '혼'이라고 합니다.
또한 사람이 자라면서 얼마나 많은 자료들을 보고 듣고 입력했는가, 그 자료들을 얼마나 많이 기억할 수 있는가, 또 얼마나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가에 따라 지능지수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뇌에는 기억장치가 있어서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 그 밖에 여러 사람들과 책, 텔레비전 등 자료들을 통해서 보고 듣고 기억해 놓은 것이 있고 계속해서 그런 자료들을 떠올리고 적용하면서 수많은 생각들을 해 나가니 혼이라는 것은 심장부와 같이 중요한 것이고, 육체는 심장부에 덧입혀져 있는 옷과 같습니다. 그런데 두뇌의 기억장치 안에 어떤 자료들을 어떻게 입력해 놓았는가에 따라 혼의 작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만일 김 집사님이 박 집사님과 큰 소리로 대화하는 모습을 지나가던 세 사람이 동시에 보았다고 합시다. 이 때 한 사람은 '두 분이 참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시는구나' 생각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소리가 저렇게 높아지는 걸 보니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는가 보다' 생각하지요. 또 다른 사람은 예전에 김 집사님이 혈기내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김 집사님이 또 박 집사님에게 혈기를 내는구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음식을 남보다 탐스럽게 먹는 사람을 볼 때 이를 교양 없는 행동이라고 입력해 둔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예의 없이 탐식을 할까?' 하고 좋지 않게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은 똑같은 모습을 보고도 '참 맛있게 먹는구나, 음식이 고마운 줄을 아는 기특한 사람이구나' 하고 사랑스럽게 생각하지요. 이처럼 혼의 작용으로 사람마다 무엇을 어떻게 입력시켜 왔는가에 따라 똑같은 장면을 보고도 어떤 느낌과 생각을 갖는지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각과 느낌을 가지려면

1) 항상 선한 것만 보고 듣고 느낌으로 담아야 합니다
우리가 혼의 작용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각과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느낌을 가져야 모든 잘못된 지식과 이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모든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진리로 바꿔 나갈 수 있습니다(고후 10:5).
먼저 '무엇을 저장하는가'에 따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생각을 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보고 듣고 체험하면서 선한 것을 보고 듣고 느낌으로 담을 수도 있고 악한 것을 보고 듣고 느낌으로 담을 수도 있지요. 만약 우리가 선한 것을 담았다면 선한 생각이 떠오르며 악한 것을 담았다면 악한 생각이 떠오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두 사람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다고 합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들끼리만 소곤거리니 기분 나쁘다' 하거나, '내 험담을 하는 것 같다'고 입력을 해 놓았다면 비슷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기분이 나빠지고 속상한 생각이 들게 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주변에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될까봐 작은 소리로 얘기하는가 보다' 하거나 '작은 소리로 대화해야 할 내용이 있는가 보다'라고 입력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소곤거리는 것을 보아도 '그럴 일이 있나 보다' 하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지요.
이처럼 똑같은 장면을 보고도 좋은 것을 입력시킨 사람은 좋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나쁜 것을 입력시킨 사람은 나쁜 것을 생각하게 되므로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것을 보고 들으며 선한 느낌으로 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어떻게 저장하는가'에 따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되므로 사람이 기억을 저장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는데 4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흘려버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향에 가느라고 기차를 탔는데, 길가에 논이 펼쳐져 있고 벼가 누렇게 익어 있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부모님과 가족들이 빨리 보고 싶고, '가서 무슨 대화를 할까', '내가 준비한 선물을 드리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이런 생각에 열중해 있으면 길가에서 보았던 풍경이나 장면들을 제대로 기억할 수 없습니다.
또한 수업 시간에 어떤 학생이 책상에 앉아 '수업이 끝나면 무엇을 하고 놀까' 하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고 합시다. 이런 학생은 수업이 끝난 후 무엇을 배웠는지 물으면 답을 하지 못합니다. 분명히 수업 시간에 앉아 있었지만 선생님의 설명을 흘려버렸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담아 둔 것이 있습니다.
고향을 갈 때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분이라면 '아버지도 농사를 지으시는데, 여기도 논이 있어서 곡식이 익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논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 정도로 담아 두면 오는 길에 본 장면들이 대충은 기억이 나지만 그 이상 상세하게 기억할 수는 없고, 기억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어버리게 되지요.
또한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듣기는 들었는데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담아 두기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수업이 끝나고 "오늘 무슨 수업을 들었니?" 하면 대충 "무엇에 대해서 들었다"는 정도로는 답을 할 수 있지만 며칠 지나면 잊어버려서 그 상태로 시험을 보면 답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셋째는 심어 놓은 것이 있습니다.
만약 농사를 직접 짓는 농부라면 길을 가다가 논을 보았을 때 '농사가 잘 되었구나', '저 비닐하우스는 참 튼튼하게 지었다', '집에 돌아가면 저런 식으로 지어봐야겠다' 하면서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살펴보면 기억에 잘 심어지기 때문에 나중에 집에 가서도 본 것이 상세하게 떠오르게 됩니다.
또한 선생님께서 미리 학생들에게 "오늘 수업이 끝나면 시험을 볼 것인데 틀릴 때마다 한 대씩 매를 맞는다"고 말씀하신 후 수업을 하셨다면 학생들이 집중해서 듣고 머리에 기억으로 심게 되니 비교적 오래 기억에 남게 됩니다.
넷째는 마음과 생각에 동시에 심어 놓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일곱, 여덟 살쯤에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시는 장면을 보았다고 합시다. 이때는 머리로 기억할 뿐 아니라 그 충격과 애통이 마음에 심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과 마음에 함께 입력이 된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어지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잊으려고 노력해도 그 장면이 자꾸 떠오르고 때로는 꿈속에까지 나타나기도 하지요.
연로하신 분들은 세월이 지날수록 기억력이 없어지는데도 아주 오래 전의 일들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는 바로 마음과 생각에 강하게 입력되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기억력이 흐려지지 않은 상태라면, 마음과 생각에 동시에 심은 기억들은 뇌세포들이 파괴되지 않는 한 평생 기억으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2) 항상 상대편의 입장이 되어주며 선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알면 혼의 작용을 다스려 나가는데 큰 능력이 됩니다. 혹여 비진리의 생각을 하지 않기를 원하는데도 생각이 집요하게 떠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바로 느낌과 함께 입력하여 마음에 기억과 함께 새겨두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심히 괴롭게 하면 그 사람의 이름과 얼굴이 느낌과 함께 입력이 됩니다. 그에게서 고통받은 것으로 인해 미움이 생기게 되고 그 사람을 떠올리면 미움이라는 감정이 함께 떠오르는 것입니다. 또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그 사람이 힘들게 하는 장면이 자꾸 떠올라서 속이 상하고 괴로운 것이지요.
그런데 미움을 버리기 위해서 기도하는 과정에 계속 미운 마음이 떠올라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악한 생각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선한 것을 입력시키면 됩니다. 상대가 마음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해도 아무리 나를 괴롭혀도 '오죽하면 저럴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해 주고 선한 것으로만 입력시키면,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도 미움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미 느낌과 함께 입력된 비진리는 어떻게 할까요?
이런 경우는 기억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느낌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움'이나 '용서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바꿔서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자기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했을까' 이렇게 자꾸 상대편에서 느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상대의 사랑스러운 점이나 장점을 떠올려보고 상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지요.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네고 조그만 선물이라도 전해주는 등, 사랑으로 행하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행하는 만큼 미움이 사랑의 느낌으로 바뀌어 가니 더 이상 고통받거나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나는 과연 어떠한 느낌과 지식을 입력시켰는지, 그래서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발견하고 깨달으시므로 오직 진리의 생각만 하는 온전한 영의 사람으로 신속하게 나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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