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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계시록 강해(76)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계18:1-7 날짜 2008.09.19
7년 환난의 마지막이 되면, 이 땅에도 하나님의 준엄한 공의의 심판이 있습니다. 7년 환난 동안 이 땅에서 권세를 잡고 있던 적그리스도 세력에 대한 심판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받은 천사가 하늘로부터 이 땅으로 내려오는데, 본문 1절 후반에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할 정도로 그 천사의 권세와 영광은 대단합니다.
2절에는 이 천사가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하고 외치는데 큰 성 바벨론, 즉 이 땅에 권세 잡고 있던 연합정부가 무너질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합니다. 이는 연합정부의 실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연합정부는 귀신의 처소이며,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영들의 사주를 받는 더러운 영의 소굴이며, 세상을 어지럽히고 죄악 가운데로 이끄는 온갖 더러운 영들이 모인 곳입니다. 새들 중에는 죽은 사람이나 짐승의 고기를 먹고 사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새들은 먹잇감을 찾아 더러운 곳에 모여듭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더러운 곳에는 그 어둠을 먹고사는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연합정부는 영적으로 더러운 곳이기에, 온갖 더럽고 가증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비진리와 악을 행했고,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많이 행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더럽고 가증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둠이 있는 곳에 어둠이 모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조직이나 모임이 영적으로 잠들어 있거나 영적으로 더러운 영의 영향을 받을 때, 그곳에는 반드시 육의 모습이 생겨납니다. 육을 추구하고 정욕을 좇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반면에 영적으로 깨어 있고 늘 진리 안에 거하는 조직이나 모임은 육을 좇으려는 사람이 왔다 해도 물들지 않고 오히려 그를 변화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분이 속한 모든 조직과 모임이 영적으로 힘이 있고 권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세상을 빛으로 변화시키는 힘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능력입니다.

1. 음행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경계의 말씀

1) 연합정부와 그들에게 동조한 무리에 대한 심판의 말씀
3절에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했습니다. 진노의 포도주는 공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연합정부와 그들에게 동조했던 무리는 하나님 앞에 음행을 행한 사람들이므로, 그 음행에 대한 공의의 심판이 임합니다. 이 심판으로 인해 연합정부가 무너지면, 그 하부에 있던 조직들도 연쇄적으로 무너집니다.
먼저 땅의 왕들이란 연합정부를 도왔던 나라와 그 나라의 머리들을 의미합니다. 연합정부에 동조하여 권세를 잡고 악을 행하던 무리들도 결국 자신들이 행한 대로 그 값을 치릅니다. 그런데 연합정부를 적극적으로 도와서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들만 공의의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로 더불어 음행한 사람들도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음행은 영적인 의미의 음행인데 이는 인간이 발달된 과학문명을 믿으므로 하나님을 인정치 않고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음행은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 두 마음을 품는 것을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나 아내가 배우자를 두고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다면, 이는 마음으로 음행했다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28절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했습니다. 비록 행함으로는 음행하지 않았다 해도, 영적으로는 배우자를 두고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는 것 자체가 이미 음행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랑이 되시는 주님을 두고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이는 영적으로 주님 앞에 음행한 것이 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여전히 세상에 마음을 두는 것이 영적인 음행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의심을 품고 있는 것도 영적인 음행에 해당됩니다. 뜨겁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때는 기쁘고 감사하지만, 시험 환난이 오면 금방 은혜를 잊고 의심합니다. 이전에 체험했던 하나님의 역사까지도 우연의 일치로 돌려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에 여전히 의심을 가지고서 믿지 못하여 갈팡질팡하는 것도 영적인 음행입니다. 물론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때로는 의심이 들거나 충만함이 떨어져서 은혜를 잊을 때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증거들을 보았고 체험했으며 그만큼 진리의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여전히 두 마음을 품고 의심한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 음행하는 죄가 됩니다. 이것은 결코 작은 죄라 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땅의 상고들은 연합정부에 붙어서 부당하게 부(富)를 축적해 온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부정부패로 재물을 모은 고위층의 권세자들과 부당한 거래를 하여 자신들의 부를 쌓아온 사람들입니다. 겉으로는 세계의 평화와 질서 그리고 자원과 식량의 공정한 분배를 외치던 연합정부였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부당하게 부를 쌓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연합정부에 붙어서 자신들의 유익만을 구하고 부를 축적해 온 무리는 연합정부의 붕괴와 함께 결국 망하게 됩니다.

2)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당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의 말씀
4절에는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이 땅에 남은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그래서 선민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끝까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7년 환난 때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이스라엘 민족, 다시 말해 유대인들의 엄청난 부(富)에 눈독을 들입니다. 또한 전 세계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세계경제를 쥐고 있는 유대인들부터 먼저 포섭해야 합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오랜 소원인 성전을 지어주겠다는 그럴듯한 약속을 미끼로 던집니다. 유대인들은 이 약속을 믿고 적그리스도에게 협조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을 이용하다가 때가 되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속은 것을 알게 된 유대인들은 그때서야 회개하고 돌이킵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아직 건재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원하는 것을 해 줄 것이라는 기대로 여전히 그들에게 미혹당하는 유대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7년 환난 막바지에 이르면,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붕괴 위기를 맞으며 그들의 정체, 즉 연합정부의 정체도 온 천하에 밝히 드러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땅에 남아있던 사람들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지막 외침이 바로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參預)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적그리스도 세력의 최후를 보게 된 지금이나마 정신을 차려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경계의 말씀입니다. 이때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짐승의 표를 받았고, 신앙을 지키던 사람들도 대부분 순교한 후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적그리스도 세력에게 미혹 당하고 있던 사람들 중에서도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에 이를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그들을 위해 간절히 외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꼭 그들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동일하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7년 환난이 시작되기 전까지 그의 사람들을 통해 "거기서(즉, 어둠과 죄악 가운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외치고 또 외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1)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공의
5절에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이 땅에서 행한 악은 하늘에 사무칠 정도입니다.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주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며 비참하게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행한 모든 불의한 일을 모두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 날, 그들이 행한 그대로 갚아 주십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선한 행함을 기억하여 축복과 상급으로 갚아주시지만, 악한 행함도 기억하고 갚아 주십니다. 물론 회개하고 돌이켰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기억조차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것은 심판 날에 반드시 심문을 받게 됩니다. 마태복음 12장 36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했습니다. 이어지는 6절부터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더욱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는 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절 23에는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했고,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는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5장 29절에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했으며, 마태복음 16장 27절에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했습니다.

2) 공의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했는데 왜 나는 열심히 심는데도 많이 거두지 못할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스스로는 열심을 내어 많이 심는다 생각하지만, 바라는 것만큼 거두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가장 큰 축복은 바로 영혼이 잘되는 축복입니다. 영혼이 잘되어 진리 위에 굳게 서고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축복입니다. 썩어질 이 땅의 것을 위해 살지 않고, 영원한 천국에 상급을 쌓으며 사는 삶이 진정으로 가치 있고 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영혼이 잘된 후에, 그 영혼이 성장하는 만큼 물질의 축복도 주셔서 그 영혼이 참된 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아직 물질의 축복을 받을 만큼 영혼이 잘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축복의 때를 늦추십니다. 만약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기 전에 물질의 축복을 먼저 주면, 그것이 도리어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점점 세상을 취하다가 사망으로 가는 것을 경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혼이 잘되기 전까지는 축복을 받지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육의 법칙에 의해서도 열심히 심고 노력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능력 안에서 축복이 옵니다. 다만, 그것이 참된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진정 영혼이 잘되는 축복과 더불어 물질의 축복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하나님의 나라와 영혼들을 위해 값지고 아름답게 쓸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죄에 빠진 자녀라도 그가 회개하여 돌이키기를 원하시고, 어찌하든 죄를 용서해 주고자 하십니다. 그렇지만 무조건 용서하고 용납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작은 죄를 지었을 때 무조건 용납해 주면 자칫 더 큰 죄를 짓게 만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어도 용서해 주고, 또 죄를 지어도 용서해 주는 과정을 계속하다 보면 나중에는 죄를 스스로 다스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점점 마음이 무뎌져서 죄를 지어도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죄인 줄 알고 행하면서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없어지게 됩니다. 또한 이런 사람 하나로 인해 주변이 함께 죄로 물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5장 6절 후반에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죄를 낳는 경우는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작은 육의 것을 하나씩 용납하다 보면, 그것이 나중에는 더 큰 육을 낳게 됩니다. 지금은 마음 안에서 하나라도 더 세상을 버려나가기에 급한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 오히려 세상의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면, 나는 영으로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

7절에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그들에게 동조했던 자들은 스스로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치했습니다. 그들이 겉으로 내세웠던 정의와 평화는 단지 빛 좋은 허울에 불과하여, 속으로는 자기들의 영광과 유익만을 구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믿음이 있는 성도는 결코 이 땅에 자신의 부귀영화를 쌓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마음껏 취했다면 장차 하늘나라에서는 받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4장 32절에는 천국 소망으로 가득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에 대해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물질에 대한 욕심과 사심을 다 벗어내야 진정 천국에 소망이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무수히 핍박하며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하십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루시퍼의 주관을 받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얼마나 교만의 극치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했는데 루시퍼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킬 때도 스스로 높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습니다. 이사야 14장 12-14절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루시퍼의 주관을 받는 적그리스도 역시 자신들을 신성화 시키며 영광을 받고자 합니다. 스스로를 여황으로 앉은 자로 여기면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과부는 불쌍하고 힘든 처지를 의미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붕괴의 길로 접어들어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든 상황이 되었음에도, 자신들은 결코 "과부가 아니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회개하고 돌이킬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교만하여 스스로 높아지고 하나님을 대적했던 사람들에게 어떤 심판이 임하는지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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